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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후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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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토) 21:35 판


생애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출생했다. 이후 전라북도 부안에서 성장했으며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서정주는 노비의 자식으로 서럽기만 했다고 이야기를 했으며 <자화상>이라는 작품에서 "애비는 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를 부끄럽게 나타낸다.

서정주는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하고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정퇴한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라는 작품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잡지<시인부락>을 창간하는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들을 찬양하는 시를 쓰며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이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같은 해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을 낸 것으로 공개되었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방 후에는 순수 문학을 내세우며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서정주 시인은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문학적 명성과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데 친일을 한 행위로 그렇게 평가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논쟁이 심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이후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력

전라북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 수료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중퇴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 중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