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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5일 (금) 16:35 판


자명고


작품설명

유치진(柳致眞)이 광복 직후에 쓴 역사극. 1947년 8월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5막으로 된 이 낭만사극은 외세와 분단문제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는 미·소 양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군정을 펴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사군시대(漢四郡時代)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고, 작자는 한사군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

한나라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한 뒤 조선땅에다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사군을 두고 통치하였는데, 고구려가 일어나 한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촌락을 함락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줄거리

고구려가 사군 중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또 가장 강력하였던 낙랑을 멸망시키는 이야기로서, 낙랑의 신고(神鼓)인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비련이 골자를 이룬다.

낙랑공주가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조국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낭만극이다. 항상 사실(史實)에 충실한 작자는 이 작품도 ≪삼국사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넣었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나라의 배척과 조국통일이라는 주제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로 흘러간 느낌도 없지 않다.

왕자와 공주가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외세배척과 민족단결을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는 미·소 양국의 군정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볼 수가 있다. 그리하여 외세, 특히 소련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치기도 한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사극으로 쓴 이 작품은 광복 후의 복잡미묘하고 혼란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계몽사극이다.




작품 속의 명대사

을봉 : 그게 다 우리에게 나라가 없는 탓이야. 그래 개죽음을 했지. 우리 인준일 생각해서라두 이 기회에 우리나라를 똑바로 잡아 이 세상엔 다시 없는 자유 천지를 만들어야 헐게야.

옥분 : 나 같은 거라두 소용 있다면 같이 나서겠어.

을봉 : 정말 같이해. 응, 옥분이? 놈들이 날 병정엘 내보내는 거라구 국민학교 교정에서 여섯 달 동안이나 내게 교련을 시킬 때, 난 날의 날마다 이런 생각을 했어. 만일, 내가 왜놈이 아니구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런 훈련을 받는다면 얼마나 번듯하겠느냐구? 그때 우리가 조국을 못가진 걸 난 여간 한탄하지 않았었어. 그러던 게 이제야말루······.

옥분 : 정말, 오늘 이 때부턴 이 들! 이 숲! 저 오봉산! 저 청수천이 다아 우리 거구 우리가 그 주인이지?

을봉 : 이러구 보니 우리의 헐 일이 여간 많질 않군. 농사두 남에게 지지 않게 지어야 허구, 우리의 잃었던 성명 석 자도 찾아야 허구······.


<흔들리는 지축>의 마지막 장면이다. 을봉과 옥분이 그동안 나라를 잃었던 설움을 떠올리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대사를 나눈다. 해방 후의 민족적인 과제를 제시하며 이 작품은 계몽성을 성취하고 있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유치진 자명고 A는 B를 집필했다


참고문헌

『유치진희곡전집(柳致眞戱曲全集)』(성문각, 1971)

『한국현대희곡사』(류민영, 홍성사, 1982)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