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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홍명희가 동경 유학시절 당시 썼던 필명으로, 최남선이 발간한 『소년』지에 폴란드 시인 네모에프스키의 작품 「사랑」을 비롯하여 여러 소설작품을 번역했다.

배경

1905년, 18세였던 홍명희는 중교의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인 충북 괴산으로 내려왔다. 우연히 그곳에 잠깐 머물던 일본인 부부에게 일본어를 배운 뒤로 그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1905년 여름 무렵 동경으로 간 그는 이듬해 봄 동경상업학교에 2학년으로 편입하였지만, 1907년에 다시 대성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동경상업학교와 대성중학교에서의 첫 학기 성적은 우수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독서 탐독에 빠져 학과 공부를 등한시하였다. 당시 일본은 1900년대 후반기부터 일본문학사상 근대문학의 확립기이자 자연주의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게다가 러일 전쟁이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문학 형성에 러시아 문학이 큰 영향을 끼쳤다. 홍명희 역시 그곳에 지내며 인간 내면의 일그러진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의 자연주의 작품을 탐독하였으며,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것을 목표로 일어로 번역된 톨스토이, 도예프스키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었다.

번역활동

「쿠루이로프 비유담」

14호에서는「쿠루이로프 비유담」의 제목으로 러시아 시인 이반 끄릴로프의 유명한 우화시 세 편을 소개했다.

「서적에 대하야 고인이 찬미한 말」

15호에서는 「서적에 대하야 고인이 찬미한 말」의 제목으로 여러 작가와 위인들의 독서에 관한 격언을 소개하였다. 이는 그가 학창시절 꾸준히 작성했던 독서노트에서 발췌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세익스피어와 말튼에 대해서는 각주를 통해 더 상세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사랑」

20호에는 폴란드 시인 네모에프스키의 시「사랑」번역문이 실려있다. 이 시가 그의 번역문 중에서 가장 만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유학시절 홍명희가 확립한 내면세계와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로 번역된 작품을 번역한 것이라 중역이긴 하지만, 홍명희 특유의 언어감각으로 우리말로서의 구어체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전통시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정형율에서 벗어나면서도 그 안에서의 내재율적 리듬을 고스란히 표현하였다. 이 시는 화자의 유년시절부터 장년까지의 삶의 역정을 노래하는데,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동력이 바로 '조국'이라는 구절을 통해 애국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당시 홍명희가 유학생활을 거치며 느꼈던 삶의 역정이 이 시에서 드러난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는 이 시에 대해 “나는 이것을 애독한지 수년이 되었으나 지금도 읽으면 심장이 자진마치질하듯 뛰노는 것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아니하니 무슨 일인지?”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처럼 번역시 「사랑」은 번역 문학 초기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 홍명희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깊이 고요한 언제든지 잊지 못할 저른(짧은) 노래 같이 어린 때는 지나갔네, 지금 와서 그 곡조를 잡으려 하여도 잡을 길이 바이(전혀) 없네, 다만 근심 많은 이 생애 한 모룽이(모퉁이)에서 때때로 그 곡조가 그쳤다났다 할 뿐일세. 이것을 듣고 정에 못 이겨 소리지르기를 몇 번 하였느뇨? 어린 때야말로 나와 행복이 한 몸이 되었었네, 내가 몸이면 행복은 그 몸 살리는 혼백이었에라. 그 어린 때가 지나가서 이내 몸을 비추이던 봄날 빛이 사라지고 이내 속에 감추었던 행복은 빼았겼네, 다른 사람 사이에서 다른 사람으로 자라나는 이내 몸은 여기저기 있는 소년들이 생기가 팔팔 나서 자유천지에 희희낙락히 지내는 것을 보더라도 낯에 나타내는 것은 다만 경멸 두 자, "나는 저놈들과 달라" 아아, 이러한 말로 제가 저를 위로하였네. 얼른 하여 청년 되어 사람들이 낫살(나이) 먹어 겨우 알 만한 일을 거지반 다 알았으나, 배 주리고 헐벗는 일, 한푼 없이 가난한 일, 창자를 끊는 듯한 고생, 몸을 버려 의(義)를 이룰 마음, 또 창피한 곤욕을 참는 불쌍한 일들-다 알지 않으면 좋을 일 뿐이었네, 청춘의 피는 마귀 같다, 이 세상의 고락이 나뉘는 자취를 보고 부질없이 마음을 요동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한 소리에 이 약한 마음을 물리치고 한 줄 곧은 길로 나서서 동지 여러 사람과 같이 즐겨 세상의 웃음 바탕이 되었네. 좀도적놈처럼 발자취 소리 없이 몰래 와서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은 나이라는 것이라, 어느 틈에 나도 중년이 되었네, 중년의 노성(老成)한 마음이 되어서는 제가 제 지식이 천박하던 일을 웃고 내가 내 낯에 침을 뱉어 이 몸을 백 가지 천 가지나 되는 의무란 멍에에다 매어 버렸네, 이렇게 되어서는 무슨 일이든지 결정되어 의심할 여지가 없어지고 그 대신 앞길에 희망 없고 닳고 닳은 이내 마음 냉담할 때 한껏 냉담치도 못하고 열중할 때 한껏 열중치도 못하네, 기억은 찬 재 되고 과거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없어지고 다만 당장 천근 같은 짐을 두 어깨에 짊어져서 뼈가 휘려 할 뿐이나, 무엇인지 귀에 와서 지껄이는 말이 "너는 장정이다, 참아라" 하는구나, 아아 이것이 나를 장려하는 소리냐? 나를 조소하는 소리냐? 잠 아니 오는 하룻밤을 꼭 새우고 오늘 식전에는 신기가 좋지 못하구나, 거울 보고 머리에 빗질하니 빗살에 감긴 흰 털-아아 벌써, 백발이나, 아직, 한창때에-지금부터 이래서는 늙고 보면 어찌 될까? 누구 위하여 이러한 고생? 조급한 마음에 몸을 조조(燥燥)히 굴며 얻은 것이 이 젊은 몸에 이 흰 털이로구나, 왜 왜 이리도 바삐 노인이 되려느냐? 눈을 들어 동산 보고 들을 바라보면 아아, 다, 그러나, 이것 때문이라고, 나는 이것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네, 그리하고 본즉 오래오래 잊어버린 것같이 되었던 옛날 곡조-생각나고 잊지 못할 춘풍 같은 행복이 가득히 찬 곡조가 가늘게 마음속에 들리는구나. 이 소리야말로 가 버린 몇십 년 전 어린 때의 도로 울리는 소리로구나. 그러나 어린 때에는 이같이 국토를 사랑치 아니하였네, 무슨 연고(緣故)? 지금 사랑스러운 것은 어렸을 적 그것과는 다르다, 지금 것은 행복 소리가 아니다, 말아도 마지 못할 운명으로, 마음이 화석같이 되지 아니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지르지 않고 못 배겨 지르는 소리라, 만일에 사랑스럽다는 이 소리가 곧 사형선고가 되어 머리가 몸에서 내려져서 혼백이 영(永)히 떠나간대도 누가 이 소리를 아니 지르랴?  -『소년』20호,(1910.8)


RDF구축 내역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홍명희 가인 A는 B라는 필명을 가진다
홍명희 사랑 A는 B를 번역했다
홍명희 이반끄릴로프 A는 B를 소개했다
홍명희 세익스피어 A는 B를 소개했다
홍명희 밀튼 A는 B를 소개했다
홍명희 일본 A는 B에서 유학했다

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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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연구 - 1888 ~ 1918 년의 활동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The journal of liberal arts)』,1994, 15페이지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 김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