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및 당시 상황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배경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는1930년대 초반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1950년대의 6.25 전쟁기에 이르는 시기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작품에서 유년기를 보낸 '박적골' 과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개성'과'현저동' 을 중심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의 박적골

박적골


주인공이자 작품의 화자인 ‘나’는 개성(송도)에서 남서쪽으로 이십 리 가량 떨어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이라는 벽촌에서 태어나 여덟살이 될 때까지 풍요로운 자연에서 성장한다.화자가 기억하는 박적골은 이십 채가 안 되는 작은 마을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동무들과 뛰놀던 소소한 일화가 있고 아련한 기억이 있는 곳이며, 소설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유년의 낙원'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다.

"거의 흉년이 들지 않는 넓은 농지" 를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가지고 있는 고장에서 이 세상에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있다는 걸 알 기회가 없이 자라난 화자는 그 곳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환희뿐 아니라 비애도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던 삶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의 개성과 현저동

현저동

화자가 박적골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도정인 농바위 고개를 넘어서 처음으로 근대 도시 개성을 실체와 대면하였을 때 그가 느낀 것은 인공적인 정연함과 정결함에 대한 탄성이었다. 황홀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상황에서 자신이 이질적인 두 세계의 경계에 있음을 느낀 화자는 마음 속에서 평화와 조화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순응하던 삶에서 투쟁하는 삶으로 가는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연과 공동체가 보장하는 평화로운 성장의 가능성을 버리고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이 스스로 자아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근대적 성장의 도정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는 주체의 자각의 여정을보여주고 있다. 이후로 오줌과 밥풀과 우거지가 한데 썩은 시궁창물면이 흐르는 현저동의 산꼭대기 초가집의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변두리도회인의 삶을 시작한 화자는 숨넘어가는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 없는산을 혼자서 매일 넘는 메마른 고독 면 속에서 박적골의 풍요로움을떠올리고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 속을 찾아 헤메지만 그는 자신이 상실한 낙원에의 동경만큼이나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기형성에 대한 욕망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 내 현저동에서 " 서울 생활 반년만에 벌써 내가 시골 아이들과는 격이 다른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활동함으로써 고향 마을 친구들과 유대를 상실한 화자는 " 개학해서 서울로 돌아올 때면 대 낮 같은 전깃불이 반가워 고향의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을 때 못지 않는 기쁨을 맛보았다" 라고 말할만큼 문명의 혜택을 향유하는 것을 인식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알 수 있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초기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화자는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쓰고, 일본말로 사물과 행동을 반복해서 교육 받게 된다.그 중 가장 먼저 배운 일본말은 호안덴이었는데,잘 가꾸어 놓은 화단 속에 있는 회색빛 작은 집이었다.교문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쪽을 향해 절을 해야 했는데,선생님한테 하는 절보다 더 많이 굽혀 몸을 직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참배 교육도 받는다. 창씨 개명을 학교에서 강요받고 화자도 창씨개명을 하면 한자를 음으로 읽지 않고 뜻으로 읽게 되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의 이름처럼 듣기 좋아진다고 여겨 하고 싶어하지만, 가족들이 말려 하지 않는 내용도 확인 할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화자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고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시국은 이미 일제 말기였다.정규 수업은 얼마 받아보지도 못하고,군수품 산업에 동원되고,방공 연습도 자주했다.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살기는 점점 더어려워졌고,궁핍이 극도로 달했다.배급 통장이 없으면 밥 한 끼 제대로얻어먹을 수 없는 상황,식량 배급마저 줄고 결국에는 시골집의 숙부가누리는 치사한 특권에 빌붙어 굶주림을 면하고 있었다.일제 말기로 갈수록 식량 문제,정신대 문제가 심각해진 당시의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후

일본은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해방의 기쁨도 잠시 고향에서 화자의 집안은 친일파로 몰려 수난을 당하게 된다. 박적골 집에 불화의 기운이 돌고 나쁜 일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안 좋아진 올케를 데리고 오빠는 서울로 갔다.우리도 남산 동 집을 팔고 서울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그 후 개성에는 미군이 주둔했다가 소련군이 주둔을 하자 세상은 갑자기 흉흉해진다.화자가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소설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제 나라 글을 알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우리 문학에 대한 최초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본격적으로 우리 문학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숙명 여고에 복학을 하였고,화자는 독서에 빠져들게 된다.우울해진 집안 분위기도 집중적으로 독서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6.25 전쟁

6.25전쟁


일제 치하가 끝난 시기에는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화자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가정환경도 그러했고 시국도 그랬다.좌․우익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학교에는 자치회라는 게 생겨 전교생이 ‘누구누구 절대반대’라는 정치적 구호와 시위를 매일같이 하게 된다.1950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은 화자를 둘러싼 사회의 기와 배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일어난 전쟁은 두 갈래로 갈라진 사회를 끝까지 되돌려 놓지 못했다.이데올로기의 반목과혼란 속에 희망과 절망 그리고 현상과 본질 사이에 분열이란 성장소설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으며 성장의 완성은 성장을 가로막는 사회적 규범이나 이데올로기를 높은 자리에서 넘어설 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인간의 사회화를 담당하는 기존의 모든 제도에 대해 와해 내지급박한 변화를 초래하였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이데올로기와 다른 이데올로기가 생성,충돌하면서 인간은 정신적 공황내지 왜곡된 성장을경험하게 되는 것이다.한국 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되어 겪었던 체험은 크나큰 충격이 되어 화자의 기억에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그 기억은 증언과 기록에 대한 소명 의식을갖게 하였다.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성북구의 배경

돈암동

돈암동


...한번은 형사가 신문로 집에 그런 친구 중의 한 사람을 찾아온 사건을 기화로 엄마는 갑자기 그 집을 팔기로 결심을 했다. 오빠가 생활을 돌보지 않아 숙부의 도움으로 살림을 꾸릴 때라 집을 줄여 돈암동으로 이사를 했다. 마침 돈암동 전찻길 가에 살림집이 딸린 큰 가게 터가 하나 나왔는데 숙부가 그걸 사고 싶어하던 중이었다. 이것저것 브로커 노릇을 하던 숙부가 세상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과 발을 맞추어 안전한 장사를 해보려는 것 같았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11쪽


...결국 우리는 돈암동 집에서도 안정을 못 하고 6.25가 날 때까지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신문로 집에서처럼 우리집이 불온한 모의의 아지트가 됐다고 판단되는 즉시 엄마는 치를 떨며 발작적으로 이사를 결심했고, 어떤 때는 집에 있는 세간살이를 그냥 놔둔 채 야반도주를 해서 숙부네와 합쳐서 산 적도 있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12쪽

삼선교

삼선교


...6·25 전까지 돈암동에서만 세 번 이사를 다녔는데 아마 삼선교 근처에 살 때가 오빠가 가장 깊숙히 좌익운동에 투신했을 때가 아닌가 싶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시대적으로도 남로당이 가장 활발하게 지하운동을 조종할 때였고 오빠의 태도도 그때는 도무지 우리 식구 같지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완전히 딴 데 사로잡혀 있었다. 밤에 누가 찾아오면 도망갈 길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16-217쪽

...삼선교 집에 남아 있던 문간방 식구들도 시골의 시가로 내려가서 집을 비워 놓으니까 필리는 게 더디다고 근심들을 했다. 그래도 그 집이 팔리고 새로 돈암동 종점 쪽으로 이사할 동안이 오빠가 그 여자하고 충분히 교제할 수 있는 기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숙부네를 나와 이사하면서 새 식구를 맞아들였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19쪽


미아리 고개

미아리고개


...다음 날 오빠는 새벽같이 학교로 출근했고, 나는 동숭동 문리대로 등교했다. 등교하면서 가로수를 꺾어서 철모와 군용차를 시퍼렇게 위장하고 미아리고개 쪽으로 이동하는 국군을 보고 비로소 섬뜩한 전쟁의 현장감을 느꼈으나 남들이 하는 대로 씩씩하게 박수도 치고 만세도 불렀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43쪽

...그러나 하학길은 아침과 좀 달랐다. 여전히 미아리고개 쪽으로 군대가 이동하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용감해 보이기보다는 비장해 보였고 환송하는 시민의 태도 또한 불안하고 어설퍼 보였다. 그날 밤새도록 엄마가 구시렁대면서 이럴 때는 식구가 같이 있어야 하는건데 하는 소리를 하고 또 했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44쪽

...다음 날 아침에는 포 소리가 미아리고개너머에서 쏘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다. 그러나 긴급 뉴스는 국군이 인민군을 거의 다 섬멸한 것처럼 말하면서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기를 당부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학교로 향했다. 미아리고개로 뻗은 돈암동 전찻길로 달구지에 가재도구를 실은 피난민이 꾸역꾸역 넘어오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들에게 시민들이 뭔가를 물어보려는 걸 순경이 말리는 광경도 눈에 띄었다...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44쪽

출처

논문:

부유훼,莫言 『붉은 수수밭』과 朴婉緖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비교,연구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16.

단행본:

박완서, 2012, (박완서 장편소설 1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웹페이지:

성북마을 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1130.do)

네이버 지식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96397&cid=58583&categoryId=59315)

지역N문화 웹페이지(https://ncms.nculture.org/korean-war/story/4196)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nake6862/222639824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