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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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10월 근무하던 조흥은행 종로지점에서 동료들에게 전시상황을 전파했다. 그는 사이판 섬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며 사이판의 상황을 전했다.
이로 인해 '군사에 관한 조언비어'를 만들었다 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울 동대문구 성북정 177-40번지(현 성북로8길 7)에 거주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을유문화사를 창립하여 전무로 재직하다가 1952년 대표이사가 되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명예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출판인 정진숙』(정진숙,을유문화사,1983)이 있다. 정부에서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생애

1912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출생
1934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
1935년 보성전문학교를 중퇴
1936년 동일은행(현 조흥은행) 입사
1945년 해방 이후 을유문화사 창립 후 전무로 재직

1952년 을유문화사 대표이사직

1956년 한국검인정 교과서 사장, 국정교과서 사장, 문교자문위원회 위원,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한국검인정교과서 사장,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출판금고 이사 및 이사장, 독서신문사 회장, 서울시 문화위원회 위원, 대한출판문화협회 명예회장 및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82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출판저널 발행인, 제12대 한국출판금고 이사장, 제6대 한국박물관회 회장, 한국출판연구소 이사,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 한국박물관회 고문 등을 지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말 보존을 위해 록펠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45,000달러 어치의 종이를 지원받고, 1957년『우리말 큰사전』 6권을 완간한 것과 한국 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한국사』 6권을 비롯, 『조선문화총서』, 『대학총서』, 『박물관 총서』, 『한국학 대백과사전』 등을 발간.

1955년 을유문화사에 외국영업부를 신설하여 외국서적의 국내 번역과 국내 서적의 외국어 번역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7년 문교부 장관 감사장, 문교부 장관 표창장,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 표창장, 1961년 서울시문화상, 1968년 대통령 표창, 1969년 문교부장관 표창,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1년 한글반포 525돌 기념표창장,
1997년 대한출판문화협회 공로패, 동년 금관문화훈장, 제8회 간행물윤리상(공로부문), 1999년 한국출판회의 선정 20세기 한국의 출판인, 2005년 한국출판인협회 선정 아름다운 출판인, 2007년 유한재단 제7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다.

생가(집터)

정진숙 집터.jpg
출처:주거지[[1]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진숙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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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출처: 성북아카이브[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3],주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