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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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최초의 수렴청정

조선 제7대 국왕 세조의 왕비이며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둘째며느리. 덕종,예종의 어머니이자, 성종의 할머니, 소혜왕후,장순왕후,안순왕후의 시어머니다. 연산군은 정희왕후의 증손자이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조선 최초로 대왕대비의 칭호를 받았고, 또한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후이면서, 후에 문정왕후, 정순왕후, 순원왕후, 신정왕후와 더불어서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가장 강력한 정치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증손자인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는 그의 오빠 윤사분의 증손녀로 종증손녀였으며, 문정왕후와 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는 남동생 윤사흔의 후손들이었다.

그렇게하여 1469년부터 1476년까지 손자 성종 대신 섭정을 하였다.

생애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 윤번의 딸로 1418년 충청남도 홍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428년 세종의 적차남 진평대군(세조)과 혼인한 뒤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소생으로는 덕종, 예종, 의숙공주, 세희공주 가 있다. 세희공주는 금계필담의 존재하는 인물로 김종서의 손자와 혼인했다고 한다. 세조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조카의 자리를 빼앗고 유배보내자 공주의 자리를 박차고 연을 끊어 나왔다고도 전해내려왔다. 1453년 계유정난 당시 정보 누설로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왕비에 책봉되었다.

정희왕후는 여장부 기질을 가진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한 뒤 왕대비가 되었고,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갑작스레 병으로 승하하자 당일 바로 한명회와 결탁하여 둘째 손자 자을산군을 왕위에 올린 뒤 자신은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서 조선 최초의 수렴첨정을 하였다.

예종이 갑자기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원자가(제안대군) 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는 왕위를 넘겨주지 않았으며, 의경세자에게도 큰아들인 월산대군이 있었으나 자을산군을 즉위시킨 것은 정희왕후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섭정 당시에 그녀의 과단성이 있는 성격과 훌륭한 정치적 감각 덕분에 조정은 평화로워 안정기를 구가하였다고 한다. 사극에서 손주며느리인 폐비 윤씨를 옹호하는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윤씨가 불순한 행실로 정희왕후의 눈 밖에도 나 이후 성종, 인수대비와 폐출, 사사를 적극 주도했다. 1483년(성종 14년) 음력 3월 30일 온양 행궁에서 승하하였다. 능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광릉(光陵)으로, 남편 세조의 능과는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가족관계

본가 파평 윤씨

  • 조부 : 판도판서 증 영의정 윤승례(版圖判書 贈 領議政 尹承禮, ?~?)
  • 조모 : 검교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문정공 성여완(檢校 門下侍中 昌城府院君 文靖公 成汝完, 1309~1397)의 딸인 경안택주 창녕 성씨(慶安宅主 昌寧 成氏)
  • 아버지 : 판중추 증 영의정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判中樞 贈 領議政 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 1384~1448)
  • 외조부 : 참찬의정부사 공도공 이문화(參贊議政府事 恭度公 李文和, 1358∼1414) : 고려 우왕비 근비 이씨의 언니의 아들
  • 외조모 : 문하시중 양정공 최렴(門下侍中 良靖公 崔濂, ?∼1415)의 딸인 충주 최씨(忠州 崔氏)
  • 어머니 : 흥녕부대부인 인천 이씨(興寧府大夫人 仁川 李氏, 1383~1456)
  • 큰언니 : 강녕군 장간공 홍원용(江寧君 章簡公 洪元用, 1401?~1466)과 혼인 - 홍원용은 인수대비의 외숙부 : 남양 홍씨
  • 큰오빠 : 파성군 이정공 윤사분(坡城君 夷靖公 尹士昐, 1401~1471)
  • 올케언니 : 경력 장안지(經歷 張安之)의 딸 정경부인 덕수 장씨(貞敬夫人 德水 張氏)
  • 작은언니 : 정경부인 윤씨(貞敬夫人 尹氏)
  • 작은형부 : 우의정 창성부원군 양정공 성봉조(右議政 昌成府院君 襄靖公 成奉祖, 1401~1474) : 성삼문의 재종숙이자 성녕대군 부인의 사촌 : 창녕 성씨
  • 작은오빠 : 공조판서 영평군 성안공 윤사윤(工曹判書 鈴平君 成公安 尹士昀, 1409?~1461) : 중종비 장경왕후의 증조부
  • 올케언니 : 검교 호조참의 최의검(檢校 戶曹參議 崔義儉)의 딸 부산현부인 수원 최씨(釜山縣夫人 水原 崔氏)
  • 셋째 언니 : 정경부인 윤씨(貞敬夫人 尹氏)
  • 셋째 형부 : 공조참판 이연손(工曹參判 李延孫, ?∼1463)와 혼인
  • 넷째 언니 : 지중추부사 호려공 이염의(知中樞府事 胡戾公 李念義, 1409?~1492)와 혼인
  • 다섯째 언니 : 오덕기(吳慶基)와 혼인
  • 여섯째 언니 : 정경부인 안성군부인 윤씨(貞敬夫人 安城郡夫人 尹氏)
  • 여섯째 형부 : 서원부원군 문양공 한계미(西原府院君 文襄公 韓繼美, 1421~1471)와 혼인 - 한명회의 6촌이자, 성삼문의 고종사촌
  • 남동생 : 영돈녕 파천부원군 양평공 윤사흔(領敦寧 坡川府院君 襄平公 尹士昕, 1422~1485) - 중종비 문정왕후의 고조부
  • 올케 : 병정 김자온(兵正 金自溫)의 딸 계림 김씨(鷄林 金氏)

왕가 전주 이씨

  • 시부 : 제4대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 재위 1418~1450)
  • 시모 :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1446)
  • 남편 : 제7대 세조대왕(世祖大王, 1417~1468, 재위 1455~1468)
  • 장남 : 추존 덕종대왕(德宗大王, 1438~1457)
  • 맏며느리 :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1504) : 인수대비(仁粹大妃)
  • 손자 : 월산대군(月山大君,1454~1488)
  • 손부 : 승평부대부인 박씨(昇平府大夫人 朴氏 1455~1506)
  • 손녀 : 명숙공주(明淑公主 1455~1482)
  • 부마 : 당양군 소이공 홍상(唐陽君 昭夷公 洪常, 1457~1513)
  • 손자 : 제9대 성종대왕(成宗大王, 1457~1494, 재위 1469~1495)
  • 차녀 : 의숙공주(懿淑公主, 1442~1477)
  • 차남 : 제8대 예종대왕(睿宗大王, 1450~1469, 재위 1468~1469)
  • 며느리 :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1461) : 장순빈(章順嬪)
  • 손자 : 인성대군(仁城大君, 1461~1463)
  • 며느리 :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1445?~1498)
  • 손녀 : 현숙공주(顯肅公主, 1464~1502)
  • 손자 :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1525)
  • 손녀 : 혜순공주(惠順公主, 1468~1469)


대중매체에서의 정희왕후

정희왕후가 등장하는 작품

방송 기간 방송사 작품명 연기자
1984년~1985년 MBC 설중매 정혜선
1990년 KBS 파천무 최란
1994년 KBS 한명회 홍세미
1998년~2000년 KBS 왕과 비 한혜숙
2007년~2008년 SBS 왕과 나 양미경
2011년 KBS 공주의 남자 김서라
2011년~2012년 JTBC 인수대비 김미숙


세조부터 성종까지의 시대가 사극에서의 자주 사용되는 소재들이며 사건들이 즐비했던 시기였던 만큼, 사극에 꽤나 등장하는 편이다. 보통 세조의 아내로서가 아닌 수렴첨정의 이미지를 인식한 결과인지 인수대비의 시어머니, 성종의 할머니 등 왕실의 최고 어른의 역할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왕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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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한 왕과 비에서의 정희왕후. 중견 탤런트 한혜숙이 열연하였다. 손자인 성종의 즉위 후 수렴청정을 하면서 야심만만한 며느리 인수대비와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치적인 모습보다는 단아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일찍 부모를 잃은 시조카 단종에게 다정했고, 남편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단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며, 두 아들을 모두 앞세우는 비극을 겪는 인물이다. 드라마 자체가 대하 사극이었던 관계로, 긴 시간동안 서서히 늙어가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왕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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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방영한 왕과 나에서는 중견 탤런트 양미경이 정희왕후 역할을 맡았다. 전체적으로 기쎈 정치인의 면모보다는 자애로운 시어머니, 할머니, 시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수렴청정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손자며느리 폐비 윤씨의 죽음을 슬퍼하다 쓰러져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진에서 정희대비라고 나오는 것과 달리 실제로 정희왕후의 대비 시절 명칭은 자성왕대비, 자성대비가 맞는 표현이다.

공주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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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한 공주의 남자에서는 중견 탤런트 김서라가 역할을 맡았다. 계유정난 전에는 자신도 남편인 수양대군 만큼이나 야심이 있어서 남편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집안을 단속하는가 하면, 딸인 세령에게도 냉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막상 남편이 왕위에 오른 후 김승유를 죽이기 위해 세령조차 노비로 강등시키고 미끼로 사용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편에게 맞서는가 하면 남편 몰래 세령과 김승유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빼돌려 조용히 살게 해준다. 결국 마지막 회에서 노년의 세조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세령 부부를 우연히 보고 정희왕후에게 그들을 살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인수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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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방영한 인수대비에서는 중견 탤런트 김미숙이 계유정난 직전의 부부인 시절부터 말년의 자성대왕대비 시절까지의 정희왕후를 열연하였다. 전체적으로 야심도 있고 정치감각도 있는 여장부의 모습을 훌륭히 그려냈으며, 특히 노년에 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맏며느리인 인수대비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으며 권력게임+고부갈등을 긴장감있게 보여주었다. 중간중간 똑똑한 인수대비에게 은근한 굴욕을 당하는 모습도 나온다. 같은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의 정희왕후가 외적으로 강단 있는 정치인의 모습보다는 단아하고 부드러운 어마니의 분위기를 많이 풍겼던 반면에, 인수대비에서의 정희왕후는 상대적으로 기가 센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특히 혜빈 양씨에 대한 태도가 다른데 왕과 비에서는 겉으로나마 혜빈 양씨를 깍듯이 대하지만 인수대비에서는 혜빈 양씨를 대놓고 무시한다.

극 초반에는 엄격한 시어머니와 정치적 내조를 통해 남편을 돕는 강인한 아내로서의 모습이 그려졌으며, 세조 사후 예종시기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왕실과 가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며느리인 인수대비 한씨가 파평 윤씨 일문의 비리가 담긴 장부를 들이밀며 정계 은퇴를 강요하면서 마지막 갈등이 폭발하고, 결국 굴복하여 은퇴한 후에는 극 초반과 같이 화해모드로 돌아서다가, 손주며느리인 폐비 윤씨의 사사 소식을 들으며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회고하며 사망하는 것으로 극에서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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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정희왕후

나무위키 정희왕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