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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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


개요

북한 노동당의 통일노선과 정책을 옹호, 관철하는 정치단체.

1949년 6월에 평양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민족전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통합하여 창립되었다.

조선로동당을 포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단체의 목적은 조선로동당의 정책, 특히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정책을 지지하며 옹호,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대한 대남 활동을 펼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지만, 현재는 정당 및 사회단체의 연합체로서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구조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는 것을 기본임무로 하며 조선노동당을 포함하여 북한의 24개 정당과 사회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대표로 조직된 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장단과 상무위원회·서기국이 있으며 조직부·선전부·국제부·재정경리부·기요실 등 5개 하부조직을 두고 있다.

산하에 각종 직능단체·종교단체·정치단체·지역친선단체 등 19개의 단체가 있다.

1999년 2월 공동의장에 윤기복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 본부 의장이 임명되면서 현재 조국전선 의장은 박성철·양형섭·김용순·류미영·렴태준·정두환·강련학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산하에 가맹원은 없이 노동당·천도교청우당·사회민주당·청년동맹·직업동맹·기자동맹·문예총 등 24개 주요단체를 포함하고 있다.

조국전선공동의장은 주요단체 대표들이 공동으로 맡고 있으며, 최근 강연학(1998.7.30.)이 공동의장에 합류했다.

서기국장은 유호준(柳好俊)이 사망(1995.10.)한 뒤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을 지낸 백남준(白南俊)이 맡고 있다.

북한은 이 단체를 통하여 남북한 정당·사회단체의 대화를 제의하는 등 평화공세를 취해왔는데, 사실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창설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기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단체를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묶어 세운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로 규정한다.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 전술의 전위를 맡고 있다.

주요 활동은 대한민국 내의 조선로동당 지지 세력을 단합시켜 조선로동당과 연계 활동을 펼치고 대한민국에 대한 성명과 담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 제의와 선전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한국 전쟁 전의 대표적인 제의로는 1950년 5월의 총선거 실시 제의가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일된 입법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총선거를 함께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조선로동당 비서를 지낸 김용순과, 여운형의 딸 여원구, 대한민국 출신인 류미영 등이 공동 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61년 창설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유사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현재는 각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여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연합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거에는 후보자가 한명밖에 입후보하지 않는다.

북한의 정치사건(사회과학출판사, 1973)은 “조선통일민주주의전선은 로동계급과 농민의 공고한 동맹에 기초한 우리의 전체혁명력량을 단결시킨 강력한 조직체”로 규정하고, 그 기본임무는 “로동계급이 영도하는 로동동맹에 기초하여 모든 혁명력량을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묶어 세우며 그이께서 제시하신 당의 로선과 정책을 옹호 관철하며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남조선 각계각층 인사 및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동일실현 고취, 노동당의 통일 및 남북대화정책 대변, 한국사회상 비난 등으로 한국의 정치정세가 변동할 때마다 성명·담화를 내는 등 평화공세를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활동 역사

남북의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과 통합 후 이 단체에 의한 첫 대남평화공세는 1950년 5월 7일 남북간에 통일된 최고입법기관을 세우기 위한 총선거를 그 해 8월 5일부터 8일까지 실시를 제의했다.

그리고 이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북제정당·사회단체협의회’를 6월 15일부터 17일까지 해주나 개성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이 이를 거부하자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이 제의에 따른 남북한 국민회의 통합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이 있은 1주일 뒤 북한공산당의 남침이 시작됨으로써, 이 제의가 위장평화공세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4·19나 5·16 후 민정 이양시기를 겨냥, 1963년 12월 10일 위장 평화통일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1973년 7월 24일 제69차확대회의에서 당시 한국의 공화당·신민당·통일당과 한국내 지하당으로 날조했던 통혁당(1985년 7월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 등의 정당·사회단체와 재외동포 단체들을 포함, 대민족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1979년 1월 19일 한국정부의 무조건 남북대화 재개 제의와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 ① ‘7·4공동성명’정신 재확인, ② 상호 비방방송 중지, ③ 휴전선상에서의 군사활동 중지, ④ 전민족회의 소집 등을 제안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연방 제안 관련 대남서신 발송공세(1980.11.12.)에 이어 민족통일 촉진대회 소집제의(1981.8.6.), 팀스피리트 훈련 비난 및 비상확대회의 개최(1983.2., 1986.2., 1987.2.,), 민족단합방안 5개 항 제의(1987.11.11.), 남북연석회의 제의(1988.1.) 및 남북 정치협상회의 제의(1989.1.)에 대한 지지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광주 민주화항쟁 10주년을 맞아 ‘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1990.5.)했으며, 범민족대회 허용을 촉구하는 비상확대회의(1992.7.)를 개최하는 등 대남 선전선동기수로서의 역학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홍명희 A는 B의 위원이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민주주의민족전선 A는 B와 통합되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남북한 국민회의 통합 A는 B를 제의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백남준 B는 A의 의장이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강연학 B는 A의 의장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김민우1.jpg


관련 영상

참고자료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WiKiDOK. 사이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이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위키백과.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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