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소개

해방전후 는 이태준이 월북과 전향의 경위를 해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생산한 텍스트로서 자주 논의되어왔다. 해방전후 는 ‘민족주의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현이라는 인물이 ‘민족주의자’로서 ‘좌우 합작’을 기치로 내 건 ‘문건’에 협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뜻이 맞던 김직원과 현의 대립으로 당시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기호는 치열한 담론투쟁의장에서 끊임없이 쟁탈 되고, 그 과정에서 의미가 끊임없이 변화했으나 ‘민족주의자’의 정체성은 좌/우의 이분법적 대립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이태준은 이러한 소급적 규정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확보하게 됨을 보여준다. [2]

줄거리

문단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소설가 현한테로 경찰서의 시달서가 날아들었다. 호출장이 위압적이라 해서 바뀐 것인데, 이를 받고 보면 미상불 불안하다. 무슨 죄가 있대서가 아니라 시국이 험한 판에 무슨 꼬투리를 잡아 책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대문서 고등계의 쓰루다 형사는 현에게 시국에 협력하지 않는 걸 지적하며 누구라도 방관적 태도는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현은 적당히 핑계 대고 물러 나와 출판사로 향했다. 일본을 위한 번역을 맡고 있는 일이 여간 꺼림칙하지 않았다. 전세는 기울어 연합국의 승리가 예견되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랬다.

궁리 끝에 솔가하여 강원도 어느 산골로 내려갔다. 믿고 찾아온 사람은 서울로 장기 출장을 가고, 그의 소개로 향교 직원인 상투 튼 노인 김직원의 배려를 입게 되었다. 징용이나 면해볼까 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될는지 모른다. 켕기는 마음으로 낚시에 소일삼으려 했으나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한가하게 낚싯대나 들고 나가는 게 순사부장 눈을 거슬렸던 것이다. 마침 서울에서 '문인보국회'명의로 궐기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장문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주재소와 방공 감시초장인 우편국장이 어서 올라가라고 채근한다. 강직한 성품의 김직원도 징용 면하려거든 뻗대지 말라는 충고가 있어 도리 없이 상경을 해야만 했다.

대회장 부민관 단상은 으리으리했다. 국민복에 예장을 단 총독부, 조선군 무슨 각하에다 일본 작가, 만주국 작가가 대거 착석해 있다. 현은 국방색 아닌 옷에 각반도 치지 않은 차림새로나마 단상에 올라 대회 순서 하나를 맡아야 했는데 그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현은 대회장을 살그머니 빠져나와 변소에 숨었다가 칼 찬 발짝 소리 때문에 질겁을 한다.

어떻든 현은, 가네무라 순사가 상경 길에 고쳐달라던 회중시계를 손보아서 시골로 내려갔다. 당국에서는 잠시 잠잠하더니 주재소 호출이 또 떨어졌다. 순사부장은 현을 경방단이나 방공 감시에도 뽑지 않는 것은 나라를 위해 글을 쓰라는 뜻이었는데 협력이 없다고 다그친다. 낚시질은 그만두라는 엄명이다.

현은 더욱 의기소침해져 김직원 영감과만 자주 왕래한다. 그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국호를 대한으로 되찾고, 영친왕으로 하여금 조선인 부인을 얻게 해 전주 이씨 왕조를 복고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그 또한 군청에서 춘천서 열리는 유생대회 참가를 종용받고 있으나 거절한다. 상투며 복색을 바꾸라는 청에도 나이든 핑계로 회피한다. 결국 읍으로 불려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김직원이 유치 당한 지 나흘째 날이 8월 15일이었다. 현은 서울 친구로부터 다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올라가는 버스 속에서 일본 패전 소식을 듣는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지만 서울 거리는 여전히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연을 맺고 있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찾아갔다.

이후 국내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갔다. 차차 미군이 진주하고, 이에 따라 망명 정객, 독립 투사들이 속속 귀국했다. 수없는 정파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에 좌우익 대립이 첨예해졌다. 전단이 난무했다. '조선문화건설'에 대립되는 좌익 문학인들의 '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이 조직되어 문인들도 두 파로 쪼개졌다.

게다가 '문협' 내에도 이탈파가 생겨 의장이나 서기장의 허락도 없이 공공연히 '조선인민공화국 절대 지지'란 플래카드가 나붙어서 현이 나서서 철거했다. 이러자 현을 아끼는 동료 문인들은 현이 이용만 당하는 꼴이니 문협을 탈퇴하라고 권유한다.

게다가 삼상회의의 조선 신탁 통치안이 선포되자 서울 거리는 찬탁과 반탁 데모로 영일이 없다. 현은 친구와 함께 반탁 강연에 나섰고 그 원고가 어느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이 견해가 국제 정세상 현명한 판단이 아님을 깨닫고는 찬탁으로 기울었다. 이것이 항간의 화젯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어느 날, 김직원이 회관으로 현을 찾아왔다. 현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어서 음식점으로 모셨다. 그때 노인은 유치 당해서 상투가 잘릴 뻔한 걸 가까스로 모면한 전말이며, 현의 식솔이 철원까지 나와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그러다가 현을 보고 공산당으로 넘어갔느냐고 힐문한다. 아니라고 했지만, 공산당이 조선 독립을 방해한다며 현의 태도를 못 미더워한다.

한동안 김직원이 소식을 끊더니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탁치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가 전날의 정리 때문에 인사를 아니할 수 없어 왔다는 말을 하며 배웅도 한사코 사양하고 분연히 떠나갔다. 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청나라의 우국지사 왕국유를 떠올려본다.

바람은 차나 부드러운 봄바람이 느껴지는 철이다. 동료들이 '프로예맹'과의 합동도 성사시켜 '전국문학자대회' 준비에 골몰해 있는 사이에 현은 담배를 꺼내 문다. [3]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해방전후 이태준 A는B의 저서이다
해방전후 1946년 A는B에 쓰여졌다
해방전후 자전적 A는B이다


해전.png

관련논문

이태준 단편소설에 나타난 크로노토프 연구

이태준의 <해방전후>에 나타난 글쓰기 전략 고찰

해방 이후 문학 장의 재편과 이태준 -「해방전후」와 「먼지」를 중심으로-

각주

  1. 이미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해방전후
  2. 김준현. (2011). 해방 이후 문학 장의 재편과 이태준 -「해방전후」와 「먼지」를 중심으로-. 어문논집, 64(0), 217-240.
  3. [네이버 지식백과] 해방 전후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작성자 및 기여자

김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