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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종 때 이조판서로 있었던 인물로 성락원을 별장으로 사용하였던 인물임. | + | [[철종]] 때 [[이조판서]]로 있었던 인물로 [[성락원]]을 별장으로 사용하였던 인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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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 | ==출전== |
− | 「신묘식생원진사방(辛卯式生員進士榜)」(『조선시대(朝鮮時代) 생진시방목(生進試榜目)』 27) | + | 「신묘식생원진사방(辛卯式生員進士榜)」(『[[조선시대]](朝鮮時代) 생진시방목(生進試榜目)』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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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처== | | ==소장처== |
− | 『조선시대(朝鮮時代) 생진시방목(生進試榜目)』 27
| + | 『[[조선시대]](朝鮮時代) 생진시방목(生進試榜目)』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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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조판서== | + | ==참고문헌== |
− | ===정의===
| + | [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91_038418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
− | 고려시대에는 1389년(공양왕 1) 전리사(典理司)를 이조로 고치고 그 장관으로 정3품 판서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여 역시 정3품의 이조전서(吏曹典書)를 두었으나 1405년(태종 5) 육조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전서가 정2품 판서로 바뀌어, 이후 이조판서는 육조의 수석장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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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육판서(六判書) 중의 하나이고, 이조(吏曹)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아래로 이조참판(吏曹參判: 從二品), 이조참의(吏曹參議: 正三品 堂上) 각 1원과 이조정랑(吏曹正郞: 正五品), 이조좌랑(吏曹佐郞: 正六品) 각 2원이 있다.
| + | ==작성자 및 기여자== |
| + | [[류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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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92년(태조 1)에 정삼품의 전서(典書) 2원을 두었으나, 1403년(태종 3)에 1명을 감하고 1405년(태종 5)에 판서로 고쳐 정이품으로 올렸다. 이후 이조판서는 육조의 수석장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조판서는 다른 육조의 판서와 함께 1894년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 + | [[분류:조선시대]] |
− | | + | [[분류:성락원]] |
− | 이조판서는 천관(天官: 吏曹)의 정경(正卿)으로서 이조를 총괄하고 이조에 소속된 문선사(文選司)·고훈사(考勳司)·고공사(考功司) 등의 속사(屬司)와 충익부(忠翊府)·종부시(宗簿寺)·상서원(尙瑞院)·내시부(內侍府)·사옹원(司饔院)·내수사(內需司) 등 속아문(屬衙門)의 제조(提調)가 되어 이를 지휘하였다. 또 비변사(備邊司) 등에도 제조로 참여하였다.
| + | [[분류:인물]] |
2018년 6월 18일 (월) 13:58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