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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은 1902년에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부농인 아버지 ‘채규섭(蔡奎燮)’과 어머니 ‘조우섭(趙又燮)’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 후,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학습했다. 이후, [[임피초등학교|‘임피보통학교(현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한 1918년에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로 상경한 다음 [[중앙고등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그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와세다 대학|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한 후 예과 과정을 밟았으나, 1년 만인 1923년에 중퇴했다. 그 뒤 [[조선일보|‘조선일보(朝鮮日報)’]]사와 [[동아일보|‘동아일보(東亞日報)’]]사, 그리고 [[개벽|‘개벽(開闢)’]]사에서 기자로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이때, 잡지 [[별건곤|‘별건곤(別乾坤)’]]과 [[혜성|‘혜성(彗星)’]], 그리고 [[제일선|‘제일선(第一線)’]] 등의 편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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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 및 작가로서 등단하기 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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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작가는 1902년 06월 17일에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아버지 ‘채규섭(蔡奎燮)’과 어머니 ‘조우섭(趙又燮)’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고, ‘임피보통학교(현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한 1918년에 서울로 이사갔다. 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 졸업했다.  
  
, [[채만식]]은 1924년에 [[세길로|‘세길로’]]라는 단편 작품을 [[조선문단|‘조선문단(朝鮮文壇)’]]이라는 문예잡지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총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및 단편소설과 희곡과 평론, 그리고 수필을 집필했다. 특히 그는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많이 발표되었다. 그 예시로, 장편으로는 [[탁류|‘탁류(濁流, 1937~1938)’]],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금(金)의 정열(1939)’,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1938)’, ‘어머니(1943), ‘아름다운 새벽(1942), 그리고 ‘여인전기(1944)’ 등이 있다. 또한, 단편으로는 [[치숙|‘치숙(痴叔, 1938)’]], ‘패배자의 무덤(1939)’, [[미스터 방(소설)|‘미스터 방(方)(1946)’]], [[레디메이드 인생|‘레디메이드 인생(1934)’]], 그리고 ‘맹순사(1946)’ 등을 들 수 있다. 추가로, 희곡으로는 ‘당랑(螳螂)의 전설(1940)’과 [[제향날|‘제향날(1937)’]]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채만식]]은 1936년 이후에는 더 이상 직장을 가지지 않고 작품 활동을 위주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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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같은 해에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했으나,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져서 벌어진 학살을 피해 1년 만인 1923년에 중퇴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뒤 1924년부터 ‘개벽(開闢)’사, ‘동아일보(東亞日報)’사, 그리고 ‘조선일보(朝鮮日報)’사에서 기자로 전전했다. 이렇게 기자로 일하면서, 월간 대중잡지인 ‘별건곤(別乾坤)’과 월간종합잡지인 ‘혜성(彗星)’과 ‘제일선(第一線)’ 등의 편집을 맡았다.
  
그러다가, 1942년에 [[채만식]]은 친일문화단체인 [[조선문인협회|‘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가 주관한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했다. 이후, 월간잡지인 [[춘추|‘춘추(春秋)’]] 등에 발표한 산문 및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매일신보|‘매일신보{每日申(新)報}’]] 등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을 통해 [[일본 제국|‘일제(일본 제국, 大日本帝国)’]]가 미국을 상대로 일으킨 [[태평양 전쟁|‘태평양 전쟁(太平洋 戰爭)’]]을 위한 지원병을 선전 및 선동하면서 친일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외에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이 주관한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그리고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에 참여하는 친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후 1945년에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으로 낙향했다가 다음 해에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로 이사했고, 1950년에 결국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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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등단 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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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기자로 생활하다가, 채만식은 1924년에 ‘세길로’라는 작품을 ‘조선문단(朝鮮文壇)’이라는 문예잡지에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 등단했다. 이후 그는 1936년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직장을 가지거나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않고 작품 창작 활동을 주로 삼으면서 생활했고, 이 과정에서 총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소설 및 단편소설과 희곡, 평론, 그리고 수필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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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채만식 작가는 1930년대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칭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발표되었다. 그 예시로, 장편소설으로는 ‘탁류(濁流, 1937~1938)’,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1938)’,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그리고 ‘금(金)의 정열(1939)’ 등이 있다. 또한, 단편소설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痴叔, 1938)’, 그리고 ‘패배자의 무덤(1939)’ 등을 들 수 있다. 추가로, 희곡으로는 ‘제향날(1937)’과 ‘당랑(螳螂)의 전설(1940)’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풍자를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로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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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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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생활하다가, 1942년에 채만식은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라는 친일문화단체가 주관한 행사인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하면서 친일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新)報}’ 등의 매체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들 및 월간잡지인 ‘춘추(春秋)’ 등에 발표한 산문을 통해 ‘일제(일본 제국, 大日本帝国)’가 미국을 상대로 벌인 ‘태평양 전쟁(太平洋 戰爭)’에서 승리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해 선전 및 선동하면서 친일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외에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이라는 친일단체가 주관했던 ‘보도특별정신대’,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 그리고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같은 행사에 참여하거나 1943년에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라는 친일적인 문화 단체에 평의원으로 가담하는 친일파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때, ‘아름다운 새벽(1942)’이나 ‘여인전기(1945)’같은 친일적인 사상을 깊게 담은 소설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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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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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채만식 작가는 1945년에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다음해에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로 이사한 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 생활했다. 이때, ‘민족의 죄인(1948)’을 작품을 집필하면서 친일파였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거나, ‘이상한 선생님(1945)’, ‘논 이야기(1946)’, ‘미스터 방(方)(1946)’, 그리고 ‘맹순사(1946)’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미군정 시기의 부조리하고 혼란했던 현실을 풍자함으로서 비판했다. 하지만, 1950년 06월 11일에 결국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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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5일 (일) 00:55 판

개요

1902년 출생 1950년 사망인 일제강점기 시기의 작가이다.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대표작으로는 탁류, 인형의 집을 나와서, 금의 정열, 태평천하, 어머니, 아름다운 새벽, 치숙, 패배자의 무덤, 미스터 방, 레디메이드 인생, 제향날 이 있다.

생애

소개

성장 과정 및 작가로서 등단하기 전의 삶

채만식 작가는 1902년 06월 17일에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아버지 ‘채규섭(蔡奎燮)’과 어머니 ‘조우섭(趙又燮)’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고, ‘임피보통학교(현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에 서울로 이사갔다. 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 졸업했다.

졸업한 후 같은 해에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했으나,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져서 벌어진 학살을 피해 1년 만인 1923년에 중퇴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뒤 1924년부터 ‘개벽(開闢)’사, ‘동아일보(東亞日報)’사, 그리고 ‘조선일보(朝鮮日報)’사에서 기자로 전전했다. 이렇게 기자로 일하면서, 월간 대중잡지인 ‘별건곤(別乾坤)’과 월간종합잡지인 ‘혜성(彗星)’과 ‘제일선(第一線)’ 등의 편집을 맡았다.

작가로서의 등단 후 활동

이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기자로 생활하다가, 채만식은 1924년에 ‘세길로’라는 작품을 ‘조선문단(朝鮮文壇)’이라는 문예잡지에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 등단했다. 이후 그는 1936년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직장을 가지거나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않고 작품 창작 활동을 주로 삼으면서 생활했고, 이 과정에서 총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소설 및 단편소설과 희곡, 평론, 그리고 수필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특히 채만식 작가는 1930년대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칭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발표되었다. 그 예시로, 장편소설으로는 ‘탁류(濁流, 1937~1938)’,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1938)’,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그리고 ‘금(金)의 정열(1939)’ 등이 있다. 또한, 단편소설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痴叔, 1938)’, 그리고 ‘패배자의 무덤(1939)’ 등을 들 수 있다. 추가로, 희곡으로는 ‘제향날(1937)’과 ‘당랑(螳螂)의 전설(1940)’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풍자를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로서 거듭났다.

친일파 생활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생활하다가, 1942년에 채만식은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라는 친일문화단체가 주관한 행사인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하면서 친일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新)報}’ 등의 매체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들 및 월간잡지인 ‘춘추(春秋)’ 등에 발표한 산문을 통해 ‘일제(일본 제국, 大日本帝国)’가 미국을 상대로 벌인 ‘태평양 전쟁(太平洋 戰爭)’에서 승리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해 선전 및 선동하면서 친일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외에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이라는 친일단체가 주관했던 ‘보도특별정신대’,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 그리고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같은 행사에 참여하거나 1943년에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라는 친일적인 문화 단체에 평의원으로 가담하는 등 친일파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때, ‘아름다운 새벽(1942)’이나 ‘여인전기(1945)’같은 친일적인 사상을 깊게 담은 소설도 집필했다.

말기

이후 채만식 작가는 1945년에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다음해에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로 이사한 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 생활했다. 이때, ‘민족의 죄인(1948)’을 작품을 집필하면서 친일파였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거나, ‘이상한 선생님(1945)’, ‘논 이야기(1946)’, ‘미스터 방(方)(1946)’, 그리고 ‘맹순사(1946)’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미군정 시기의 부조리하고 혼란했던 현실을 풍자함으로서 비판했다. 하지만, 1950년 06월 11일에 결국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학력

학교 상태
채만식의 학력 정리
임피초등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 중퇴

출생지 및 사망지

출생지

지도를 불러오는 중...

사망지

작품 목록

문학사적 가치

관련 항목(온톨로지)

참고 문헌

  1. “채만식”, <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22.04.1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2837&cid=46645&categoryId=46645.
  2. 이덕화, 「채만식의 문학의식과 글쓰기 = The Literature Thougut and Writing of Chae Man Sik」, 『論文集(PYONGTAEK REVIEW)』, Vol.- No.-, 평택대학교(PYONGTAEK UNIVERSITY), 2002, 563-576쪽.

작성자 및 기여자

홍석준

최서윤

권회형

안민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