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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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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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염상섭(廉想涉) |
출생 | 1897년 8월 30일 |
사망 | 1963년 3월 14일 |
직업 | 소설가, 독립운동가 |
염상섭(1897~1963)
생애
- 1897년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부친 염규환, 모친 경주 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출생. 호는 제월(霽月), 횡보(橫步).
- 1904년
조부에게서 한문 수학.
- 1907년
관립 사범부속보통학교 입학.
- 1909년
보성소학교로 전학.
- 1910년
보성중학교 입학.
- 1911년
일본 유학.
- 1912년
도쿄 아자부 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가 중퇴하고 아오야마 학원에 입학.
- 1917년
교토 부립제이중학교로 편입.
- 1918년
게이오 대학 문과 예과에 입학. 한학기만에 병으로 자퇴.
- 1919년
황석우를 통하여 <삼광三光> 동인이 됨. 3월 18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려다가 피검, 6월 10일 석방
- 1920년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로 입사, 6월에 퇴사. 남궁벽, 황석우 등과 더불어 <폐허> 동인 결성
- 1921년
<개벽>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 발표
- 1922년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종합지 <동명> 학예부 기자로 활동. 《묘지》연재 시작.
- 1924년
첫 창작집 《견우화》와 장편 《만세전》출간.
- 1926년
재 도일. 창작 활동에 전념
- 1929년
김영옥과 결혼. 조선일보 입사, 학예부장으로 취임.
- 1931년
<조선일보>에 《삼대》연재.
- 1935년
매일신보 입사
- 1936년
만주로 이주하여 만선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취임
- 1939년
중국 안동으로 이주
- 1945년
신의주로 귀국
- 1946년
서울로 돌아와 돈암동에 거주. <경향신문> 창간과 동시에 편집국장으로 취임
- 1949년
단편집 《해방의 아들》출간
- 1950년
6·25 전쟁 당시 피난을 못 가 숨어지냄
- 1951년
해군 정훈장교로 종군.
- 1952년
<조선일보>에 《취우》연재.
-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응로 추대. 서라벌 예대 학장으로 취임.
- 1960년
단편집 《일대의 유업》출간.
- 1962년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여.
- 1963년
직장암으로 사망.
작품세계 (활동내역)
작품 및 저서
기타(수상내역 등)
관련항목
Domain(A) | Range(B) | 설명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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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 만세전 | A는 B를 저술했다. | |
염상섭 | 숙박기 | A는 B를 저술했다. | |
염상섭 | 두 파산 | A는 B를 저술했다. | |
염상섭 | 삼대 | A는 B를 저술했다. | |
염상섭 | 표본실의 청개구리 | A는 B를 저술했다. | |
염상섭 | 취우 | A는 B를 저술했다. |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
- 작성자 : 김윤희18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