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현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금수현은 작곡가이자 교사로서 젊은이들을 위한 교향악운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낙초(洛初)이며 1992년 8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출생과 사망

그는 1919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하여, 1992년 8월 31일에 생을 마감하였다.


소속


저서

  • 《표준 음악 사전》
  • 수필집 《음악의 문》


생애

대학교 진학

부산상고로 진학했으나, 저버리지 못한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악전과 『코르위 붕겐』 등을 구입해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상고를 졸업한 후 음악학교의 진학을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동양음악학교 예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과에 응시해 합격했다. 성악과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작곡 공부에 열중하였다.


가족

여류소설가 김말봉의 딸 전혜금과 1943년 결혼하여 금난새를 낳았다.


업적

1953년 경남여중 교장과 1956년 통영여고 교장을 거쳐 1957년 문교부 편수관을 지냈다. 1965년 영필하모니악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했고, 1970년 월간지 '월간음악'을 발행하였다. 1960년 녹조훈장과 1981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음악의 문거리의 심리학을 펴냈으며, 창작집으로 '가곡집 Ⅰ·Ⅱ'가 있다. 작품으로 심봉사의 슬픔, 그네, 추색, 파도 등이 있다.


내용 정리

1919년 7월 22일 ~ 1992년 8월 31일. 경상남도 김해 출생. 부산제2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일본 동경음악학교(현 동경음악대학)을 졸업하였다. 일본 쇼치쿠가극단(松竹歌劇團)에서 근무하였으며, 귀국하여 1942년동래고등여학교 교사, 1945년경남여자중학교 교감을 역임하였다.

1947년 경상남도 도립극장장 재임시 오페라 「피리와 칼」이라는 경가극 형태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전에 발표한 가곡 「그네」는 민족적인 선율에 의한 작품으로 대중성을 띠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을 지방에 보급하는 운동가로서 특히 부산과 통영 등지의 음악문화발전에 공헌하였다.

1957년 문교부 편수관으로 음악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기여하였으며, 1970년부터 음악전문지 『월간 음악』을 발간하여 음악언론의 일각을 담당하였다. 1968년 영필하모니를 창단하여 젊은이들을 위한 교향악운동을 전개하였다.

저서로는 『가곡집』 I·II, 『표준음악사전』·『음악·멋·말』 등이 있으며 많은 음악수필을 남겼다. 그의 성은 원래 김(金)씨인데 광복 이후 금씨로 바꾸었으며, 자녀들의 한글이름짓기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여 금난새·금노상·금누리 같은 이름을 남겼다. 그로 인해 제10회 외솔상을 받았다.


관련항목

전시 장소 전시 이름 연관 예술가
성북구립 미술관 정릉시대 展 박고석, 이중섭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 강정훈
기여자 : 김대은, 박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