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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수) 19:14 판

인물

생애

년도 내용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시 향현(香峴)묘지송(墓地頌)을 발표함.
1946년 시집 청록집[공저] 간행.
1949년 시집 간행.
1956년 시집 박두진 시선 간행.
1959년 수상집 시인의 고향 간행.
1961년 시집 거미와 성좌 간행.
1967년 시집 청록집 이후 발간(박목월,조지훈과 공저)
1973년 시집 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 간행.
1981년 시집 박두진 전집 10권 간행.
1991년 산문전집 햇살,햇볕,햇빛 간행.
1996년 산문전집 박두진 문학정신 7권 간행.
1998년 9월 16일 사망.

일대기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 전국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6·25 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 고려대학교 민족 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추진. 유교적 도덕주의의 격조높은 자연 인식 및 삶의 융합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종랴의 청록집등에서 나타난 시세계와는 달리 현실에 대응하는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표작

거미와 성좌 시(時). 시집 《거미와 성좌》에 수록된 시. 현실과 오늘의 상황이 이 시의 주제가 된다. 사상적 현실주의와 시적 리얼리티의 동시적인 천착이며 가난하고 어두운, 그리고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는 현실 대결의 직투사(職投射)는 이 작가 개인 것이면서 동시에 동시대 사람들의 공통된 장(章)이다. 거미는 현대적 생리의 상징이며 시인 자신에 대한 상징이다.

현대의 생리와 현대의 죄성(罪性)과 현대의 존재형태가 「거미」를 통해서 구상화하고 「나」를 통해서 이념화해 있는 동시에 「거미」는 거미대로의 생리와 형상성(形象性)과 거미대로의 순수한 대상으로 시화되어 있다. 그리고 생리 · 현상 · 생태와 그 구성상을 빌어 여러가지 이미지를 시도한다.

가령 「여덟개의 발끝으로 하는 어덟 차례의 간음(姦淫)」이란 성적 이미지가 나오고, 추녀끝에서 벚나무 가지까지 점착성(黏着性) 포망(捕網)을 치며 일하는 노동과 생산의 이미지까지 나온다. 현실 대결의 시를 소박한 내셔널리즘으로 이해하는 감상주의가 굳어가고 있는 오늘 시적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이 시가 보여주는 현실대결의 직투사는 높은 차원이 아닐 수 없다.

문학정신

일제 말기 한국인의 겨레 인식과 저항적 자세를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화하고 있다.일제에 의해 민족주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인식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저항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해방 후에도 시대의 부정적 가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고 이념적으로는 절대적 가치의 추구를 멈추지 않는 등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출판하고는 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