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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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2011177)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18일 (목) 20: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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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4.6. ~ 1898.4.18.)는 19세기 프랑스상징주의 화가이다. 주로 역사, 신화, 종교적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생애

미국 필라델피아 쿠츠타운에서 성장한 키스 해링은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기독교가 강하게 자리잡은 보수적인 필라델피아,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과 눈에 띄는 건물이나 흥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작은 시골, 쿠츠타운은 호기심 많고 열정을 가득 찬 키스 해링이 머물기에는 더 없이 답답한 곳이었다. 이러한 주변의 환경과는 별개로 해링의 가정은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해링의 아버지 알렌은 키스처럼 늘 낙서를 하는것을 좋아했는데, 알렌은 종이에 빈 공간이 있으면, 간단한 낙서를 한 후 아이들과 함께 낙서를 덧붙여나가는 놀이를 종종 하곤했다. 어머니 조안은 이렇게 남편과 아이들이 그린 낙서를 냉장고에 붙여서 감상하곤 하였는데, 이렇듯 키스는 자유롭게 낙서를 하는 환경에서 자라면서 성장함에따라, 이후에도 낙서에 깊이 매료되게된다. 이외에도 TV에서 방영하는 닥터 수스월트 디즈니 등 다양한 만화 영화를 즐겨 보며 키스는 그림에대한 열정을 키워나간다.

1976년 피츠버그의 아이비전문예술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1978년 뉴욕으로 옮겨 시각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해링은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보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 다운타운의 활기찬 에너지와 신선한 기운 속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의 벽은 이제 그의 캔버스가 되었고 지나가는 평범한 행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즉, 그만의 예술 언어로 도시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번번히 공공기물 훼손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해링의 독특한 이미지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픽토그램같은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 재치유머가 넘치는 표현이 특징이다. 참고로 키스 해링의 이 특징을 단번에 알아본 토니 샤프라치(Tony Shafrazi)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키스 해링의 개인전을 기획하였고 키스 해링은 이 전시를 계기로 스타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위 문화로 낙인 찍힌 낙서화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해낸 그의 그림은 뉴욕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0년 2월 16일, 31세의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해 일찍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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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세계

작품에 대하여

해링은 다른 낙서화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을 거리지하철에서 벗어나 티셔츠장난감, 공익광고포스터, 벽화 등으로 제작하였고 상업화하였다. 그는 탄생죽음, 사랑, 전쟁평화 등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활동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표현하고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교육,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의 사회문제를 그림 속에서 다루었으며 상위예술과 하위예술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노력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주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