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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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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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약칭 프랑스 (France)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걸친 서유럽의 본토와 전 세계 대양에 산재한 다수의 해외 영토로 구성된 공화국이다.

영국, 독일, 러시아와 함께 유럽의 강대국이며, 유럽에서 3위 이내 순위권에 들어가는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이다. 비옥하고 광활한 영토에서 비롯된 생산력과 인구를 바탕으로 프랑크 왕국 때는 동로마 제국과 더불어 유럽의 패권을 다투었고 분열 이후 프랑스 왕국 시절에는 신성로마제국과 유럽의 패권을 다투었으며, 영국이 18세기부터 대두한 후에는 영국과 세계 각지에서 겨루며 패권을 다투었다. 상당히 단순하게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만큼 강력했던 것은 맞다고 할 수 있다.

면적은 본토 551,695km², 해외 영토까지 합쳐 672,051km로 한반도의 3배에 달하며, 대체로 지형이 평탄하고 비옥하여 일찍이 농경이 발달했다. 유럽, 대서양, 북해, 지중해의 중심에 있고, 인접한 주변 국가들이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의 네임드 국가들이 많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파했기 때문에 문화적 영향력이 크다. 프랑스가 제국주의 정책을 취했던 19세기에는 프랑스 문화가 전세계로 뻗어나갔기 때문에 20세기 이전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시민혁명의 발상지이자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고대부터 자리잡고 있던 갈리아족(켈트족), 카이사르를 필두로 하여 로마 제국에서 올라온 라틴족, 나중에 대규모로 이주해 온 게르만족이 섞여서 이뤄졌으며,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킹 지파인 노르만족도 노르망디에 정착하면서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프랑스인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이민족들이 계속 영역으로 들어왔고, 19세기부터는 서유럽,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부터 이민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에 다민족 국가다. 과거에도 이민을 오거나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세계대전이 모두 끝나고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았을 시기에 온 것이다.

유엔 상임이사국이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국제통화기금 투표권은 세계 5위, 금보유고는 세계 4위다. 국방비는 세계 5위, 무기 수출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고 핵무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기술 보유국이다.

역사

<프랑스의 역사>
시기 내용 비고
1789년 5월 5일 프랑스 혁명
1792년 9월 22일 프랑스 제1공화국 성립
1804년 12월 2일 프랑스 제1제국 성립
1814년 4월 6일 부르봉 왕정복고
1830년 8월 9일 7월 왕정
1848년 11월 4일 프랑스 제2공화국 성립
1852년 12월 2일 프랑스 제2제국 성립
1870년 9월 4일 프랑스 제3공화국 성립
1940년 6월 25일 나치 독일의 점령
1946년 10월 27일 프랑스 제4공화국 성립
1958년 10월 4일 프랑스 제5공화국 성립

인구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서유럽 국가는 일반적으로 20세기 초반에 들어와 겪을 저출산 문제를 19세기 후반부터 겪었다. 인구가 이렇게까지 정체된 것은 인구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출산율이 다시 오르고 이런 상황이 1970년이 넘어서까지 이어지면서 인구 정체 현상을 해소한다. 이후에는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1990년 이후에는 출산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인구 증가가 빠르다. 인구 구조도 서유럽에서 안정적인 수준으로 손꼽힌다. 과거의 어떤 시기보다 프랑스가 빠른 인구 성장을 했을 정도로 많이 증가한 시기도 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는다. 그리고 이민자도 느는 추세다.

단 최근의 프랑스의 다른 선진국 대비 높은 출산율은 이민자의 매우 높은 출산율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로 유입하는 이민자의 대부분은 이슬람 나라나 아프리카 출신이다. 이들의 높은 출산율로 프랑스의 전체적인 평균 출산율도 함께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민 2세의 출산율이 하락하자 프랑스의 출산율도 덩달아 하락했다.


치안

치안이 생각보다 안 좋은 나라다. 예전부터 치안이 아주 열악해서 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의 천국으로 유명했다. 프랑스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루이 14세 시절에도 파리에 체류하던 베네치아 대사 비스콘티가 자국에 보내는 편지에다가 "파리는 살인자와 강도들의 소굴이고,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밤에는 도저히 혼자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총기 강도나 마약 밀매 또한 자주 일어나므로 심야에 길을 돌아다니거나 슬럼가를 찾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아프리카와 가까운 남부의 마르세유는 '프랑스판 할렘가'라고 불릴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예전부터 불법 이민의 관문이었고 특히 리비아, 소말리아 등 북아프리카와 불어권 서아프리카에서의 대규모 난민 유입 이후로 치안의 불안정성이 더 심각해졌다. 마르세유가 지중해에 접해 리비아에서부터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이 흔한 편이다.

또한 마르세유 같은 경우 과거에 프렌치 커넥션으로 유명했던 마약, 밀수의 집산지로 현재도 이 이권을 차지하려는 유니온 코르스를 비롯한 밀리유라 불리는 프랑스 갱단, 마피아간 전쟁이 매우 심각하다.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저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위험한 곳이다.기사 이러한 조직범죄는 상당히 심각해서 2020년 6월, 디종에서는 체첸계 소년이 상대편 마약조직에게 심하게 폭행 당하자 분노한 체첸계 갱단이 도심을 장악하고 마약조직에게 복수를 맹세하면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 망명객이나 난민들이 프랑스로 많이 오다 보니, 예전부터 난민간의 정치분쟁이나 연루된 암살, 테러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따라서 파리의 모든 주요시설에는 프랑스 헌병군/프랑스 국가경찰 등 경찰 및 헌병이 소지품 검사 및 신원확인을 하고 있으니, 함부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자. 이렇게 치안이 불안정한 면이 있으니 프랑스 경찰의 공권력도 무지막지하게 세다. 어찌나 센지 세계에서 최고로 공권력이 강하다는 미국 경찰 못지 않을정도. 프랑스에서 경찰 말 한번 안 들었다간 주먹이 날아는건 물론 몽둥이 찜질은 기본이다. 특히 2015년 경에 일어난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정부도 치안 소탕에 열불을 냈기 때문에 프랑스 경찰이 뭐라하거든 반항하지 말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르자. 이후 정부 차원에서 헌병을 비롯한 경찰관 수를 증가시키고 치안에 각별히 힘을 쓰는 추세라서 파리, 리옹, 니스 같은 대도시들은 지역에 따라 한밤에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자주 없을 정도로 치안이 상당히 안정화되긴 하였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치안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에서 동아시아 선진국 수준의 높은 치안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치안 불안정 때문에 슬럼가의 위생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다. 특히 파리고 지방도시고 할것없이 들끓는 소매치기는 유럽 최악으로 악명 높으며, 소매치기와 더불어 절도, 몽마르트 등지에서 벌어지는 강매, 사기 야바위 등은 없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유투브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보면 국내외 수많은 여행유투버들이 그 실상을 잘 소개해 주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동안 인파가 줄어들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동양인 차별이 심화된 부분이 있어 인종차별의 우려가 조금 더 커졌다.

이민

프랑스는 과거부터 이민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전반 내내 지속된 프랑스의 출산율 감소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의 부족을 불러왔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이것을 유럽에서의 이민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폴란드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도움에 힘입어 프랑스로 망명한 것을 시작으로,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과거 러시아 귀족 계층이 대거 망명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북부와 스페인 카탈루냐에서도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와 파리에 정착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전통적으로 이민을 받는 입장이었지 보내는 입장이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이민을 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인구 대부분을 채우고 영국계 문화를 이식했지만 프랑스계 이민자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규모있는 집단은 캐나다 퀘벡 주와 섬 식민지 정도다.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이민자들이 대거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에 퍼져나가 주 구성원이 된 것과도 대비된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무슬림 인구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전체 인구 수의 10% 가량이 무슬림이며 이들 중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이 70% 이상이다. 출신국별로 알제리 35%, 모로코 25%, 튀니지 10% 등이며 이들은 주로 파리, 릴, 리옹, 마르세유 등 대도시의 외곽에 집단을 이뤄 살고 있다. 유럽 난민 사태로 치안이 좋지 않고 내전이 계속 일어나는 서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국가 출신 난민들이 프랑스로 몰리고 있어서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라이시테로 인해 종교적인 상징을 외부에 내보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한 국가다. 2004년에는 공립학교에서의 종교와 관련된 모든 복장 착용 및 종교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고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고기로만 요리하는 패스트푸드점은 테러범들이 모일 소지가 있다며 단속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만 그런 것은 아니며, 독일 등 아랍계 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유럽연합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톨레랑스의 대명사라고 하는 프랑스가 이러한 풍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배타적이며 오늘날의 프랑스계 유대인들조차 기독교로 개종한 척하며 유대교 신앙을 적당히 숨기며 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파리 테러가 일어나기 전부터 지적된 것이다.

무슬림 아랍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출신,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 중에는 극빈층이 많아서 범죄나 일탈이 많았다. 중국인 이민자들도 현지 사회에 기여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만 열심이고 빈민가 형성을 조장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 폴란드, 스페인의 카탈루냐, 바스크에서 독재를 피해서 망명온 사람들 중에는 엘리트 계급이 많았던 것과 대비된다.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온 일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처럼 절도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아닌 척하면 처벌을 안 받을 줄 알고 프랑스인 여자들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벌여 이민자 집단 전체의 이미지를 망쳐놓았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제노포비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같은 일부 이민자들의 낮은 시민 의식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프랑스는 식민지에 고의적으로 우민화 교육을 시행해 온 국가이기에 더 호되게 당할 뿐이다.

하위 계층 이민자들이 주로 몰려 사는 열악한 환경의 프랑스 방리유 빈민가는 인종차별과 조직 범죄를 비롯한 중범죄가 들끓기로 악명높다. 아메드 쿨리발리, 쿠아치 형제를 비롯한 종교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대다수가 여기 출신이다. 2015년 11월에 수도 파리에서 테러가 벌어졌고, 2016년 7월에는 니스 테러가 일어났다. 2015년 이래 시도된 공식 테러는 12건을 넘는다. 폭탄 테러는 안 나지만 칼부림 등은 잊을 만하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프랑스가 테러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관광 수입 감소와 불안정해져가는 민심, 치안을 모두 개선해야하는 과제를 얻게 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반감과 높은 출산율로 인한 무슬림 증가로 국민전선 같은 인종차별적인 집단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지방 의회 당선자를 내는 등 힘을 키워가고, 비록 진보의 분열이 크게 작용했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인 장 마리 르 펜이 2002년 대통령 선거 2위에 올라 결선 투표를 치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아예 이슬람을 차별, 홀대하는 것은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장관 시절 여러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대통령 임기 중에는 차드에서프랑스인들이 저지른 범죄를 차드 대통령에게 먼저 연락하여 사과한 다음에 관련자들을 처벌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외치는 악질 이슬람교 선교사들을 추방한 것도 확실한 증거가 잡힌 수백명 수준이기도 했다. 프랑스 내에서 이민이 증가하면서 이민쿼터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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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낭만의 나라! 프랑스 역사 15분 총정리 l 고대,중세,현대

  • 프랑스 대혁명 문화재청, 2016. 09. 28.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 프랑스 혁명은 사상혁명으로서 시민혁명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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