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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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는 자본가 계급이 소멸되고,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된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무계급 사회 조직, 공동체 형성에 관한 이론, 또는 그러한 체제를 목표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정치 운동들을 일컫는다. 경제적으로는 필요에 따라 분배받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경제 구조로 대변된다. 공산주의 정치 운동은 역사적으로 억압받던 계급들의 해방을 주장하고, 그 해방된 주체들의 자유로운 공동체 조직 형성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했지만, 이러한 코뮨주의적 주장은, 19세기 후반 근대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미해지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의 유래와 발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서 공화파인 자코뱅 당지롱드 당이 프랑스 정치 권력을 공동 지배하였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했던 상 퀼로트(노동자 및 농민)가 자코뱅을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사실상 진보적인 자코뱅 당이 프랑스 정국을 주도했다. 하지만 자코뱅의 지도자였던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의 특유 급진적 정책은 자코뱅의 적들을 자극, 단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1794년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인해 자코뱅 혁명 정부는 붕괴된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주아들에 의해 우경화가 된 상태로 진행됐다. 자코뱅의 평등주의 정책이 하나씩 소멸되면서 다시 다수 노동자, 농민의 삶은 추락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자코뱅의 혁명 분위기를 되살리려 했던 정치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세력은 '급진적 자코뱅 당'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세력을 지도하던 인물은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였는데, 바뵈프는 오늘날 공산주의하면 생각나는 평등주의, 무상분배, 토지 균등분배 등을 주장했다. 그리고 바뵈프는 프랑스 근대 정치 역사에서 최초로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폭넓게 칭한 혁명가였다. 이 당시는 공산주의란 용어는 루소의 공화주의와 평등주의 이상을 혼합한 용어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의 급진적인 정치 이론은 당시 기득권 세력을 자극시켰고, 그를 따르는 급진 자코뱅 세력은 프랑스 군대에 의해 학살당한다. 또한 그도 1797년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19세기 중후반,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기존의 이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스스로 '공산주의자선언'이란 소책자를 내어 바뵈프 이후 금기시 되었던 공산주의란 용어를 다시 유럽 전역에 불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유럽 전역에서 사회당의 결성을 부채질했으나 이들 당의 정책은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이른바 "개량"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예외였다. 당내 분파인 볼셰비키가 레닌의 지도 아래에 1917년 혁명을 일으켜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국가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당은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으로 바꾸었다. 그 후부터 여러 나라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는 각 국가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농민이 주류를 이은 중화인민공화국마오쩌둥주의라는 혁명 주도 세력을 농민으로 정의한 공산주의도 생기게 되며, 폴포트주의같은 친화교적이며, 주체사상 같은 유교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더 큰 공산주의도 생기게 된다.

공산주의의 대표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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