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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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개요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조선시대의 강우량 관측기구 세트의 일부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측우기의 받침대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본래 대구에 위치한 경상감영에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전면과 후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를 통해 제작시기가 1770년(조선 영조 46년)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측우대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측우기 그 자체는 아니며, 정확하게는 측우기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지칭한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함께 세트로 있던 측우기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상세

국보지정사유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비록 측우기 실물은 함께 전해지지는 않지만, 명문이 잘 남아있어 제작연대가 명확하며 확실하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실제 유물이며 전래 및 입수 경위도 분명하여 그 가치가 높다. 또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현전하는 측우기 관련 유물(측우기, 측우대) 중 제작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명문이 남아 제작 시기가 확실한 측우기 관련 유물로는 본 측우대 외에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가 있는데, 각각 1837년(헌종 3년)과 1782년(정조 6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1770년에 제작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 이 뿐만 아니라 본 측우대는 조선시대에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로 행해진 체계적이며 표준화된 강우량 측정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실록에 남은 기록뿐만 아니라 실제 유물로써도 증명하는 귀중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한반도 과학사 연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실물예측사진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측우대만 실물이 전해지고 측우기는 안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세트로 있었을 측우기도 20세기 초까지는 함께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 행해진 조선고대관측기록보고(朝鮮古代觀測記錄報告)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본 측우대는 대구 경상감영의 선화당 건물 앞마당에 있었으며 측우기는 이와 함께 설치된 것이 남아있던 것으로 나온다.

측우대측우기.jpg

참고문헌 및 자료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작성자 및 기여자

  • 작성자 : 김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