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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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인들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이다." 

인물

요약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네덜란드 태생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자, 철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이다.

생애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최대의 인문주의자이자 철학자로서, 수도사제가 된 후 신학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1494년 파리로 유학 갔다. 그는 수도생활로 돌아가지 않고,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수많은 고대 문헌을 처음으로 활자화했다. 이러한 학구적 성과에 있어 당대 사회, 문화의 왜곡을 비판하는데 적극적이었으며,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 스위스 바젤에서 사망했다. 바젤은 시대를 비판한 지식인들이 쉴 수 있는 도시임과 동시에 새로운 사상을 꿈꿀 수 있었던 도시로, 프리드리히 니체, 바르트, 야스퍼스 등 많은 학자들이 바젤 대학의 교수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어린 시절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 인문학을 접하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데벤터에 있는 공동생활 형제단이 운영했던 성 레빈 문법학교에서 공부했다. 이에 더해 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했던 인문주의자 헤지우스의 강의를 듣고, 같은 해 인문주의자 아그리콜라의 강연을 들으며 인문학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다. 1487년, 친구들과 후견인의 권유로 아우구스티노 의전수도회에 입회하는데, 입회하게 된 이유는 그 나라에서 가장 휼륭한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에라스무스는 그곳에서 원하는 만큼 읽고, 연구하고, 글을 썼다. 하지만 다른 수도자들은 그의 고전 연구 작업을 이해하지 못해 많은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그는 이교적 학문을 연구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는 『야만인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한다. 그는 이 책으로 그리스도교가 이교적 고전문학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본격적으로 인문주의자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신학

그는 1516년 기존의 불가타 성경에 존재하던 오역을 교정해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우는 헬라어 성경을 만들어냈다. 그가 완성한 헬라어 성경은 이후 마틴 루터가 성경 연구할 때 큰 도움을 줄 정도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철학'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제공했다. 이는 종교개혁을 위한 기독교의 인문주의적 접근 방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당시 교회는 개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으나,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에라스무스는 교육만이 유일하다는 판단 하에, 올바르게 '아는 것'에 대한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에라스무스는 성경 원전 공부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문주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기독교 지식 확장으로 종교개혁에 기여하고자 했던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다.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을 앞장섰던 사람이자 현재까지도 많은 철학자의 스승이 된 자다. 실제로, 르네 지라르를 보면, 그는 인류학적 차원에서 신학과 대화하며 기독교를 변증했다는 점에서, 에라스무스를 잇는 인문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인 점을 알 수 있다.


저서

년도 도서 제목
1500년 격언집
1500년 Adagia
1503년 handbook of a christian knight
1511년 우신예찬
1512년 copia: foundations of the abundant style
1516년 the education of a christian prince
1517년 die klage des friedens
1518년 colloquia

동영상

  • [5분 역사]에라스뮈스 우신예찬,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 북유럽 르네상스 / 인문주의자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아하 종교개혁] 4강 "종교개혁의 선구자 Ⅲ. 개혁은 스무스하게, 에라스무스"


작성자 : 박희진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