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진사댁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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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진사댁 경사

개요

오영진이 1943년 <국민문학> 4월호에 발표한 일문 시나리오 <맹진사댁 경사>는 1942년에 발표한 <배뱅이굿>에 이은 두 번째 창작 시나리오이다. 오영진의 의례 삼부작 <배뱅이굿>, <맹진사댁 경사>, <한네의 승천> 중 혼례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국민문학>에 발표된 다음 해인 1944년, 극단 '태양'의 김태진 연출로 첫 연극 공연이 이루어졌고, 해방 후 1946년에는 '희망악극단'이 <시집가는 날>로 제목을 바꾸고 '맹진사댁 경사' 부제를 붙여서 박시춘 작곡인 악극으로도 공연했다. 처음 발표할 당시 일본어로 쓰였으나 1949년, 오영진극협 공연을 위해 한국어 희곡으로 번역했고, 이후 극협을 이은 신협이 이 작품을 <맹진사댁 경사>, <도라지 공주>, <시집가는 날> 등 세 가지 제목으로 바꿔가면서 공연했다.

한편, <맹진사댁 경사>가 영화로 처음 제작된 것은 1956년 이병일 감독에 의해서이며,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집가는 날>로 제목을 정했고, 이 작품은 제 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희극상을 수상하며 한국 역사상 최초의 외국 영화상 수상 기록을 세웠다.


줄거리

돈으로 진사벼슬을 산 허풍과 위선의 상징, 맹진사는 세도 가문과 사돈을 맺어 위세를 부리고 싶어, 무남독녀 갑은이를 김판서 댁 미언과 혼인시키기로 약속하고 기고만장하여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과객 차림으로 찾아온 유생 김명정은 갑은이의 몸종, 이쁜이가 갑은 아가씨를 생각하며 신령님께 빌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맹진사 댁에 머물길 원한다. 맹진사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그 유생이 김판서댁 동네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둘러 맞이한다. 김명정이 갑은의 신랑이 절름발이라는 것을 귀띔하자 맹진사 댁은 발칵 뒤집혔다.

갑은이는 시집 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쁜이는 신랑이 배안에 병신이면 어떠냐며 갑은을 달래려 한다. 그 모습을 본 태량이 계략을 꾸며 갑은이를 빼돌리고 이쁜이를 타일러 시집을 보내려한다. 결국 맹진사는 이쁜이를 갑은이로 꾸며 혼례를 치르려 한다.

그런데 혼례 날 나타난 신랑이 소문과 달리 멀쩡하고 잘생긴 대장부임이 밝혀지자 맹진사는 너무 놀라 신랑을 걸어보게 하고 만져보는 등 추태를 보인다. 급히 갑은을 데려오려 하지만 신랑댁과 맹노인의 재촉으로 이쁜이와 미언의 혼례가 치러진다. 첫날 밤, 미언은 모두 자신이 꾸민 일임을 밝히고, 깨끗한 마음씨와 진심을 간직한 이쁜이를 사모하여 그리했음을 고백한다.


해설 및 비평

작품이 집필되던 당대 상황

  • 이것이 처음 쓰였던 1943년은 일제시대 말기로, 민족적 요소가 말살되어버린 시기이다. 오영진이 굳이 이러한 시기에 이와 같은 전통적 소재에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은 민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뿐만 아니라 오영진시나리오조선혼인 습속에 대한 고증을 세밀하게 시각화 하였다. 납채를 끝낸 맹진사가 사당에 제를 지내며 죽은 조상들에게 혼사를 고하는 장면은 유교적인 관습이 혼례의 한 과정 속에 녹아든 것이다. 혼례 절차 장면에서는 혼례를 장식하는 화려한 사물들이 기술되어 있어 과거의 시간을 환기시키고, 환기된 과거는 조선적인 것으로서 오래된 전통을 표상한다.
  • 그러나 그가 직설적으로 민족주의적 의식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성숙한 희극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점 또한 연극사적으로 두드러진 면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난 사회적 현상

  • 오영진은 여자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을 통해 당대의 계급적 차이를 드러내려 했다. '갑분'과 '입분/이쁜이'로 알려져 있는 이름은 저본에서 일본어 표기를 위하여 '갑은/가브니'와 '이브니'로 명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오영진이 갑분과 입분의 이름을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둘의 계급적 차이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갑분의 이름을 '갑은(甲恩)'이라는 한자를 적용해 바꾸었다고 일부 학자들은 보고 있다.
  • 신랑이 불구라는 거짓 소문에 맹진사는 신부 바꿔치기 계략을 꾸미고, 그 결과 건강한 양반 자제인 신랑은 주인의 딸로 둔갑한 하녀 '이쁜이'와 결혼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은 남성의 불구는 아무리 양반일지라도 하녀와 결혼해야 할 만큼 큰 약점이라는 사실이다. 불구라는 사실에 맹진사댁의 온 친척들이 발칵 뒤집어지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불편한 사실을 풍자한다고 볼 수 있다.
  • 미언의 거짓말은 장난이었지만, 그는 갑은이든 이쁜이든 맹진사 댁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그가 잃을 것은 없었다. 이쁜이가 갑은이로 바뀌었어도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은 이쁜이가 자신이 원하는 맑은 혼을 가진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쁜이의 맑은 혼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노예의 무력함에서 비롯된다. 이쁜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이쁜이의 무력함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몸종이었던 이쁜이의 복종적인 태도는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한 미덕이며, 그녀의 맑은 혼은 결여된 존재인 약자의 생존방식을 표상한다. 하층민 여성에 대한 이러한 표상은 이쁜이에 대한 폭력을 은폐한다.
  • 한편, 갑은이는 신랑이 절름발이라는 거짓 소문을 들었을 때도, 소문과 달리 신랑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놀림감이 될 것을 제일 먼저 걱정하는데, 이는 모두 그녀의 수치심에 기반해 있다. 이쁜이의 무력함만큼이나 갑은이의 수치심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은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무력한 존재로 표상하고 있다. 즉 <맹진사댁 경사>는 갑은이와 이쁜이를 통해 당대 여성은 스스로 주권을 획득하기에 너무나 무력한 존재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공연 정보

표1. 맹진사댁 경사(시집가는 날) 공연 정보(일부) 출처: 김윤미, <드라마와 민족표상>, 연극과 인간(2013), p.65
연도 공연형식 공연명 비고
1956 영화 시집가는 날 이병일 감독작, 제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희극상 수상
1962 영화 맹진사댁 경사 이용민 감독작
1968 연극 맹진사댁 경사 실험 극장
1974 뮤지컬 맹진사댁 경사 국립가무단 2회 공연
1977 영화 시집가는 날 김응천 감독작
1988 오페라 시집가는 날 서울 시립 오페라단 공연, 88서울올림픽 경축 전야제 행사
1993 오페라 시집가는 날 홍연택 작곡
2000 경서도 소리극 시집가는 날 국립 국악원 공연
2009 연극 맹진사댁 경사 명동극장 개관 기념작


관련 이미지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맹진사댁 경사 오영진 A는 B에 의해 집필되었다
맹진사댁 경사 이용민 A는 B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