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승자총통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소소승자총통

(小小勝字銃筒)

소개

이름 소소승자총통
지정유형 보물
종류 소총 / 개인형 소총 / 소형 화기 / 유물 / 유동식 화기 / 무기
시대 조선시대(16세기)

내용

선조 30년 1597년 9월 16일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울돌목에서 발생한 일본 수군과의 해전인 명량대첩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용 소총이다. 소소승자총통은 구리, 주석, 납으로 만들어졌으며 구리가 약 94%를 차지한다. 사정거리는 120cm 이상이고 지름 1.8cm의 납으로 만들어진 탄환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리구멍부 6.5cm, 약실부 13.3cm, 부리부 38cm, 총구 2.8cm로 총 57.8cm이며 지름은 3cm, 무게는 약 2kg정도다. 2012년 오류리 해저에서 발견되었으며 '무자년 1588년 4월 전라좌수영에서 장인 윤덕영이 만들었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소소승자총통은 문헌 기록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유물로, 국내 무기 연구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소소승자총통

승자총통조선 선조 때 개발한 소형화기인데, 총구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고 손으로 화약선에 불씨를 점화해 탄환을 발사하는 유동식화기이다. 이를 개선한 게 소승자총통, 소소승자총통이다. 특히 소소승자총통에는 모두 명칭이 표기돼 있고, 소(小)와 승(勝)자 사이에 두 개의 점을 겹쳐 새겼다. 현재 가늠자와 가늠쇠가 남아 있지 않지만, 가늠자·가늠쇠를 부착한 흔적으로 보인다. 소소승자총통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소소승자총통에는 ‘만력무자삼월일 좌영 조소소승자 중삼근오량 장윤덕영’(萬曆戊子三月日 左營 造小勝字 重三斤五兩 匠尹德永)이라는 명문(明文)이 있다. 1588년 3~5월 좌영의 장인 윤덕영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소승자총통은 조선 중기 국토방위와 화기 제조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출처 : 서울신문


발견

문화재청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명량해전의 해역인 전남 진도군 오류리에서 2011년 9월부터 11월까지 7차례 수중 발굴이 이루어졌다. 수중 발굴을 통해 소소승자총통 3점과 최상급 고려청자 등 유물 92점이 발굴됐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화기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을 비롯해 고려청자, 닻돌, 석환 등을 발견했다. 총통을 발굴한 지점 인근에서 발견된 '석제 포환' 역시 임진왜란 때 조선의 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총통 포환'과 함께 고려시대 전남 강진에서 왕실이나 귀족들을 위해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청자 80여 점도 함께 발굴됐다. 이 중 ‘청자 기린형 향로 뚜껑’은 국보 65호이자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에 맞먹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 향로 뚜껑을 포함해 이번에 출토된 최상급 청자의 경우 국보급이나 보물급의 가치를 지닌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관련자료

사진자료

소소승자총통에 새겨진 장윤덕영

소소승자총통-장윤덕영.jpg

소소승자총통

소소승자총통.JPG

출처: 문화재청

영상자료

명량대첩때 사용 추정, 소소승자총통 첫 발굴

문서자료

문화재청 소소승자총통

작성자 및 기여자

디지털과 지식콘텐츠(22-2) 수업의 일환으로 작성.
작성자 김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