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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 ==내용== |
− |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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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정치·경제·학술·사회 전분야에 유신의 기운이 팽배하여 있는데 오직 조선불교만이 유신을 외면하고 있음을 혹평하고,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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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이 유신론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는 동시에 이를 승려 동지들에게 알려 조금이라도 취할 점이 있어 유신의 구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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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장 ‘논불교지성질(論佛敎之性質)’에서는 불교의 유신을 논함에는 먼저 불교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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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을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비추어 검토하여야 한다고 밝힌 뒤, 불교의 종교적인 성질과 철학적인 성질의 두 대목으로 분류하여 논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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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장 ‘논불교지주의(論佛敎之主義)’에서는 불교의 주의를 평등주의와 구세주의의 둘로 나누어 불교의 특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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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장 ‘논불교지유신의선파괴(論佛敎之維新宜先破壞)’에서는 유신은 파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과격한 혁신적 논리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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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장 ‘논승려지교육(論僧侶之敎育)’에서는 승려의 교육을 논하면서 폐쇄적인 독단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한국승려의 타락이 자유로운 탐구자세의 결핍, 안목의 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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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견의 편협함에 있다고 본 그는 조선불교의 장래를 위하여 교육의 타당성을 주장,승려교육제도를 ① 전문학의 기초학문인 보통학, ② 자연사범(自然師範)·인사사범(人事師範)의 사범학, ③ 지식을 교환하고 학문을 교류함으로써 사리를 밝히는 외국유학 등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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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장 ‘논참선(論參禪)’에서는 당시 승려들의 참선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성황을 이루었으나 그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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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장 ‘논폐염불당(論廢念佛堂)’에서는, 그 시대의 염불풍토를 비판하였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나에게 성불할만한 도가 있으면 스스로 성불하여 정토에 가게 될 것인데, 먼 다른 곳에 있는 부처에게 애걸하는 거짓염불을 폐지할 것과, 부처님의 마음을 염(念)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염하며 부처님의 행(行)을 염하기를 끊임없이 닦는 참다운 염불을 닦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염불당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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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장 ‘논포교(論布敎)’에서는, 당시의 조선불교가 낙후된 상태에 있다고 보았고, 그 원인을 세력의 부진과 포교의 부재에 두었다. 재래불교의 비포교성을 비판하고 불교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포교의 필요가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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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장 ‘논사원위치(論寺院位置)’에서는 조선의 사원이 한결같이 산중에 있었다는 사실과 당시의 사원이 평화롭고 이상적인 승가(僧伽) 본연의 화합중(和合衆)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갈등과 분열에 놓여 있음을 알고, 사원이 산중에 있기 때문에 진보사상·모험사상·구세사상 및 경쟁하는 사상이 없으며, 교육·포교·교섭·통신·단체활동·재정 등의 문제에 불리한 점이 많음을 지적, 불교의 구세적이요, 포교적인 사명을 위하여 도시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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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장 ‘논불교숭배지소회(論佛敎崇拜之塑繪)’에서는, 사원 안에 봉안된 각종의 소상과 회화[塑繪]를 철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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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장 ‘논불가지각양의식(論佛家之各樣儀式)’에서는 불교의 모든 의식절차를 남김없이 비난하고, 의식의 철저한 개혁과 폐지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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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장 ‘논승려지극복인권필자생화시(論僧侶之克復人權必自生和始)’는 승려가 인권을 회복함은 반드시 스스로 생산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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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장 ‘관어승려지가취여부자(關於僧侶之嫁娶與否者)’에서는 조선불교를 부흥시키는 중요하고 시급한 대책의 하나로 승려의 가취문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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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장 ‘논사원주직선거법(論寺院住職選擧法)’에서는 그때까지의 사원 주지가 선거를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맡는 윤번주지, 권리가 있는 자에게 의뢰하는 의뢰주지, 무력으로 얻는 무단주지의 세 가지 형태로 주지직을 맡아왔으나, 한 사찰의 성쇠가 주지에 달렸으니 선거법을 강구하여 주지를 뽑고, 또 월급을 주어 사원행정을 합리적으로 책임있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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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장 ‘논승려지단체(論僧侶之團體)’에서는, 조선승려의 대부분이 독선적 이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 이들이 봉사의 정신으로 단결하여야만 불교유신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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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장 ‘논사원통할(論寺院統轄)’에서는, 승려뿐만 아니라 사원도 사무절차나 의식에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사찰과 사람마다 차이가 심하여 불화가 생기고 뭉쳐지지 않으며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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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장 결론에서는 이 논문이 자기 내면의 충동을 못 이겨 저절로 말한 것으로 조금도 사심이 섞이지 않으며, 마음 그대로 말한 것이요 의무 그대로 행한 것일 뿐이니 옳고 그르고 행하고 못하는 것은 자기의 알 바가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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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가치== | | ==문학적 가치== |
개요
한용운이 1909년 부터 집필하여 백담사에서 탈고한 후, 1913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불교 논서이다.
총 1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의 약해진 불교 부흥을 위해 불교 개혁론을 주장하고 있다.
내용
문학적 가치
선구적이고 혁명적인 글이 글은 ① 1910년 당시 조선불교의 전반에 걸쳐 다각적인 관찰과 비판을 가하였다는 점, ② 전체 논문이 이론정연하고 체계가 짜여 있다는 점, ③ 불교의 장래를 누구보다도 아끼는 종교적 정열에서 솟아나온 산 글이라는 점, ④ 당시로서는 개화된 문장체인 국한문병용을 택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가장 선구적이고 혁명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불교의 병폐
① 극히 외형적·피상적으로만 승단의 병폐를 지적하였다는 점, ② 따라서 불교교리·사상의 근대적 해석이나 주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 ③ 급진적 유신에 조급하여 종교교단의 근본원칙이 되는 계율의 해석과 개혁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 ④ 조선불교의 병폐가 호국을 가장한 승단이 역대왕조와 야합한 사실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고, ⑤ 도리어 승려의 독신생활을 왕권이나 일제통감부의 무력에 의하여 막으려고 하였다는 점 등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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