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필 마상청앵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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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을 소재로 삼아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세심한 모습을 서정성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 조선의 풍속을 소재로 삼아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세심한 모습을 서정성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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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것. |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것. | ||
조선 풍속화 중 가장 서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 조선 풍속화 중 가장 서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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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김홍도]]의 화면 위에 동료 화가였던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의 시문이 쓰여 있어 두 사람의 교류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역사성이 높다. | 이 작품은 [[김홍도]]의 화면 위에 동료 화가였던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의 시문이 쓰여 있어 두 사람의 교류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역사성이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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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흔적을 남겨 서로의 우정과 예술의식을 고양시켰다. 이인문의 <[[송하담소도]]>에서 [[김홍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흔적을 남겨 서로의 우정과 예술의식을 고양시켰다. 이인문의 <[[송하담소도]]>에서 [[김홍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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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nsong.org/museum/ 간송미술관]''' | '''[http://kansong.org/museum/ 간송미술관]''' |
2022년 12월 7일 (수) 21:59 기준 최신판
이름 |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金弘道 筆 馬上聽鶯圖) |
작가 | 김홍도 |
지정유형 | 보물 |
지정일 | 2018.02.2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
수량/면적 | 1폭 |
분류 | 유물/일반회화/풍속화 |
관리자(관리단체) | 간송미술문화재단 |
시대 | 조선시대, 18세기 말 ~ 19세기 초 |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18세기 화가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회화. 2018.2.22.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 1970호로 지정되었다.
작품 설명
조선의 풍속을 소재로 삼아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세심한 모습을 서정성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것. 조선 풍속화 중 가장 서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기법과 정서
인물 묘사에 사용된 섬세한 필선, 말과 마구에 사용된 부드러운 필법, 선비의 시선과 표정, 대담한 공간감 등이 잘 어우러져 한국적인 정서가 잘 표출되었다.
역사성
이 작품은 김홍도의 화면 위에 동료 화가였던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의 시문이 쓰여 있어 두 사람의 교류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역사성이 높다.
- 그림의 서체가 단원 김홍도의 글씨이므로 직접 제발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인문이 지은 시를 김홍도가 옮겨 적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 하다.
- 김홍도와 이인문은 도화서의 동갑내기 친구로 오랜 시간 서로의 작품을 보며 교류하였다.
-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흔적을 남겨 서로의 우정과 예술의식을 고양시켰다. 이인문의 <송하담소도>에서 김홍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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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에 의해 작성된 페이지입니다.(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