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방(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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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준 (2011197)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5일 (목) 17: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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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전문

주인과 나그네가 한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향 사람 백()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 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머, 흰말[1]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 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해 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다.

"내 참, 이래 봬두 응, 동양 삼국 물 다 먹어 본 방삼()복이우, 청얼[2] 뭇허나, 일얼 뭇허나, 영어야 뭐 말할 것두 없구 ......"

하다가, 생각난 듯이 맥주 컵을 들어 벌컥벌컥 단숨에 다 마신다. 그러고는 시커먼 손등으로 입술을 쓱, 손가락으로 김치쪽을 늘름한 점, 그러던 버릇이 미스터 방이요, 신사요, 방 선생으로도 불리어지는 시방도 무심중[3] 절로 나와, 손등으로 입술의 맥주 거품을 쓱 씻고, 손가락으로 라조기 한 점을 으득으득 씹는다.

"술은 참, 맥주가 술입넨다......"

어느 놈이 만일 무어라고 시비를 하거나 괄시를 한다면 당장 그 라조기를 씹듯이 으득으득 잡아 씹기라도 할 듯이 괄괄하던 결기[4]가, 그러다 별안간 어디로 가고서 이번엔 맥주 추앙이 나오던 것이다.

"술두 미국 사람네가 문명했죠. 죄선 사람은 안직두 멀었어."

"멀구말구. 아직두 멀었지."

쥐 상호의 대추씨만 한 얼굴에 앙상한 노랑 수염 백 주사가 병을 들어 주인의 빈 컵에다 따르면서, 그렇게 맞장구를 쳐 보비위[5]를 한다.

"아, 백상두 좀 드슈."

"난 과해."

"괜히 그리셔. 백상 주량을 다아 아는데. 만난 진 오랐어두."

"다아 젊었을 적 말이지, 지금은......"

"올에 참 몇이시지?"

"갑술생 마흔여덟 아닌가!"

"그럼 나버담 열한 살 위시군. 그래두 백상은 안 늙으신 심야. 허허허허."

"안 늙는 게 다 무언가. 머리 신 걸 보게!"

"건 조백[6]이시지."

백 주사는 흔연히 수작을 하면서 내색은 아니하나, 어심[7]엔 미스터 방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향리의 예법으로, 십 년 방이면 절하고 뵈어야 한다. 무릎 꿇고 앉아야 하고, 말은 깍듯이 공대를 해야 한다. 그 앞에서 주초[8]가 당치 않고, 막부득이한 경우면 모로 앉아 잔을 마셔야 한다. 그런 것을, 마치 제 연갑[9] 친구나 타관 나그네에게나 하는 것처럼 백상이니, 술 드슈, 조백이시지 하고 말버릇이 고약해, 발 개키고 앉아서 정면 하고 술을 먹어, 담배 뻐끔뻐끔 피워, 이런 괘씸할 도리가 없었다.

또 나이도 나이려니와 문벌이나 지체를 가지고 논한다면,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 보여도 나는 삼 대조가 진사를 하였고(그 첩지가 시방도 버젓이 있다.) 오 대조가 호조 판서를 지냈고(족보에 그렇게 분명히 올라 있다.) 칠 대조가 영의정을 지냈고(역시 족보에 그렇게 분명히 올라 있다.) 이런 명문 거족의 집안이었다. 또 내 십이촌이 xx군수요, 그 십이촌의 아들이 만주국 xx현 xx촌 촌장이요 하였다. 또 그리고 시방은 원수의 독립인지 막덕인지 때문에 다 그렇게 되었다지만, 아무튼 두 달 전까지도 어느 놈 그 앞에서 기침 한번 크게 못하던 백 부장-훈팔()등에, xx경찰서 경제계 주임이던 백 부장의 어르신네 이 백 주사가 아닌가. 두 달 전 그때만 같았어도,

'이놈!'

하고 호통을 하여 당장 물고[10]를 내련만, 그 좋은 세상이 어디로 가고 이 지경이란 말인지 몰랐다.

하여튼 그만치나 혼란스러운 백 주사에다 대면 미스터 방의 근지[11]야 아주 보잘것이 없었다.

미스터 방의 증조가 타관에서 떠들어온 명색 없는 사람이었다. 그 조부가 고을의 아전을 다녔다. 그 아비가 짚신 장수였다. 칠십에 고로롱고로롱 아직도 살아 있지만, 시방도 짚신 곱게 삼기로 고을에서 첫째가는 방 첨지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이 방삼복이는...

먹고 자고 꿍꿍 일하고, 자식새끼 만들고 할 줄밖에는 모르는 상일꾼[]이었다. 그러나마 삼십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로, 이 집 저 집 살고 다니는 코삐뚤이 삼복이었다. 물론 낫 놓고 기역자도 못 그리는 판무식이었다.

상일꾼일 바엔 남의 세토 마지기라도 얻어 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삼십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만 하고 다니던 코삐뚤이 삼복이가 하루아침 무슨 생각이 났던지, 돈벌이를 간답시고, 조석이 간데없는 부모에게다 처자식 떠맡기고는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그것이 열두 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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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및 기여자

홍석준

출처

  1.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
  2. 원래는 만주어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중국어를 뜻한다.
  3. '무심결'을 뜻한다.
  4.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5. 남의 비위를 잘 맞춰줌
  6. 마흔 살 안팎의 나이에 머리가 세는 것을 이른다.
  7. '마음속'을 뜻한다.
  8. 술과 담배
  9. 비슷한 또래의 나이
  10. 죄 지은 사람을 죽이는걸 뜻한다.
  11. 자라온 환경과 경력을 아울러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