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생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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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준 (2011197)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23일 (월) 21: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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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등장인물

작품 전문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이 문서에 전문을 제공합니다.)

1장

우리 박 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 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어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박 선생님의 키는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다. 일본 정치 때에, 혈서로 지원병에 지원했다 체격 검사에 키가 제 척수[1]에 차지 못해 낙방이 되었다면, 그래서 땅을 치고 울었다면, 얼마나 작은 키인지 알 일이다.

그런 작은 키에 몸집은 그저 한 줌만하고. 이 한 줌만한 몸집, 한 뼘만한 키 위에 깜짝 놀랄 만큼 큰 머리통이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박 선생님의 또 하나의 별명은 대갈 장군이라고도 했다.

머리통이 그렇게 큰 박 선생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또한 여느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뒤통수와 앞이마가 툭 내솟고, 내솟은 좁은 이마 밑으로 눈썹이 시꺼멓고, 왕방울 같은 두 눈은 부리부리하니 정기가 있고도 사납고, 코는 매부리코요, 입은 메기입으로 귀 밑까지 넓죽 째지고, 목소리는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쨍쨍하고.

이런 대갈 장군인 뼘생 박 선생님과 아주 정반대로 생긴 이가 강 선생님이었다.

강 선생님은 키가 크고, 몸집도 크고, 얼굴이 너부릇하고, 얼굴이 검기는 하여도 순하여 사나움이 든 데가 없고, 눈은 더 순하고, 허허 웃기를 잘 하고, 별로 성을 내는 일이 없고, 아무하고나 장난을 잘 하고……. 강 선생님은 이런 선생님이었다.

뼘박 박 선생님과 강 선생님은 만나면 싸움이었다.

하학을 하고 나서, 우리들이 청소를 한 교실을 둘러보다가 또는 운동장에서(그러니까 우리들이 여럿이는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두 선생님이 만날라 치면, 강 선생님은 괜히 장난이 하고 싶어 박 선생님을 먼저 건드리곤 하였다.

“뼘박아, 담배 한 대 붙여 올려라.”

강 선생님이 그 생긴 것처럼 느릿느릿한 말로 이렇게 장난을 청하고, 그런다 치면 박 선생님은 벌써 성이 발끈 나 가지고

“까불지 말아, 죽여 놀 테니.”

“얘야 까불다니, 이 덕집엔 좀 억울하구나……. 아무튼 담배나 한 개 빌리자꾸나.”

“나두 뻐젓한 돈 주구 담배 샀어.”

“아따 이 사람, 누가 자네더러 담배 도둑질했대나?”

“너두 돈 내구 담배 사 피우란 말야.”

“에구 요 재리[2]야! 몸이 요렇게 용잔하게[3] 생겼거들랑 속이나 좀 너그럽게 써요.”

“몸 크구서 속 못 차리는 건, 볼 수 없더라.”

하나는 커다란 몸집을 해 가지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는 한 뼘만한 키에 그 무섭게 큰 머리통을 한 얼굴을 바싹 대들고는 사남이 졸졸 흐르면서, 그렇게 마주서서 싸우는 모양은 마치 큰 수캐와 조그만 고양이가 마주 만난 형국이었다.

2장

다른 학교에서도 다 그랬을 테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그 때 말로 ‘국어’라던 일본말, 그 일본말로만 말을 하게 하고 엄마 아빠할 적부터 배운 조선말은 아주 한 마디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주재소의 순사, 면의 면 서기, 도 평의원을 한 송 주사, 또 군이나 도에서 연설하러 온 사람, 이런 사람들이나 조선 사람끼리 만나도 척척 일본말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했지, 다른 사람들이야 일본 사람과 만났을 때말고는 다들 조선말로 말을 하고, 그래서 학교 문 밖에만 나가면 만판 조선말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요, 더구나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누나, 아기 모두들 조선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와 운동장에서 우리끼리 놀고 할 때에는 암만 해도 일본말보다 조선말이 더 많이, 그리고 잘 나왔다.

학교에서고, 학교 밖에서고 조선말로 말을 하다 선생님한테 들키는 날이면 경을 치는[4] 판이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밝히는 선생님이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나 다른 일본 선생님은 나무라기만 하고 마는 수가 있어도, 뼘박 박 선생님은 절대로 용서가 없었다.

나도 여러 번 혼이 나 보았다.

한번은 상준이 녀석과 어떡하다 쌈이 붙었는데 둘이 서로 부둥겨안고 구르면서, 이 자식아, 저 자식아, 죽어 봐, 때려 봐, 하면서 한참 때리고 제기고[5] 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고랏! 조셍고데 겡까 스루야쓰가 이루까(이놈아! 조선말로 쌈하는 녀석이 어딨어.)."

하면서 구둣발길로 넓적다리를 걷어차는 건, 정신 없는 중에도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우리 둘이는 그 자리에서 뺨이 붓도록 따귀를 맞았고, 공부 시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시간 동안 변소 청소를 하였고, 그리고 조행[6] 점수를 듬뿍 깎였다.

이렇게 뼘박 박 선생님한테 제일 중한 벌을 받는 때가 언제냐 하면, 조선말로 지껄이다 들키는 때였다.

강 선생님은 그와 반대로 아무 시비가 없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 빼고는 그리고 다른 선생님, 그 중에서도 교장 이하 일본 선생님들과 뼘박 박 선생님이 보지 않는 데서는, 강 선생님은 우리한테 일본말로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말을 해도 강 선생님은 조선말을 하곤 했다.

우리들이 어쩌다

"선생님은 왜 '국어'로 안 하세요?"

하고 물으면 강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는 ‘국어’가 서툴러서 그런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강 선생님은 일본말이 서투른 선생님이 아니었다.

3장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여름 방학으로 놀던 때라, 나는 궁금하여서 학교엘 가 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오십 명이나 와 있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은 아직 몰랐고,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한 것만 알았다.

선생님들이, 그 중에서도 뼘박 박 선생님이, 그렇게도 일본(우리 대일본 제국)은 결단코 전쟁에 지지 않는다고, 기어코 전쟁에 이기고 천하에 못된 미국, 영국을 거꾸러뜨려 천황 폐하의 위엄을 이 전세계에 드날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말을 해쌓던 그 일본이 도리어 지고 항복을 하다니,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직원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두 일본 선생님 그리고 뼘박 박 선생님과 이렇게가 네 분이 모여 앉아서 초상난 집처럼 모두는 코가 쑤욱 빠져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운동장 구석으로 혹은 직원실 앞뒤로 끼리끼리 모여 서서 제가끔 아는 대로 일본이 항복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6학년에 다니던 우리 사촌언니 대석이가 뒤늦게야 몇몇 동무와 함께 떨떨거리고 달려들었다. 대석 언니는 똘똘하고 기운 세고 싸움 잘 하고, 그러느라고 선생님들한테 꾸지람과 매는 도맡아 맞고, 반에서 성적은 제일 꼴찌인 천하 말썽꾼이었다. 대석 언니네 집은 읍에서 십 리나 되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소문을 들었노라고 했다.

대석 언니는 직원실을 넘싯이 넘겨다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처억 직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실 안에 있던 교장 선생님이랑 다른 두 일본 선생님이랑은 못 본체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뼘박 박 선생님이 눈을 흘기면서 영락없이 일본말로

“난다(왜 그래?)?”

하고 책망을 했다.

대석 언니는 그러나 무서워하지 않고 한다는 소리가
  1. '치수'를 의미한다.
  2. '몹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서 이르는 말이다.
  3. 못생기고 연약함을 의미한다.
  4. 호된 꾸지람이나 벌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5. 팔꿈치나 발꿈치로 찌르는 것을 의미한다.
  6. 태도행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