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생님(소설)
이상한 선생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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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이상한 선생님 |
저자 | 채만식 |
창작년도 | 1945 |
소개
등장인물
작품 전문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이 문서에 전문을 제공합니다.)
1장
우리 박 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 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어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박 선생님의 키는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다. 일본 정치 때에, 혈서로 지원병에 지원했다 체격 검사에 키가 제 척수[1]에 차지 못해 낙방이 되었다면, 그래서 땅을 치고 울었다면, 얼마나 작은 키인지 알 일이다.
그런 작은 키에 몸집은 그저 한 줌만하고. 이 한 줌만한 몸집, 한 뼘만한 키 위에 깜짝 놀랄 만큼 큰 머리통이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박 선생님의 또 하나의 별명은 대갈 장군이라고도 했다.
머리통이 그렇게 큰 박 선생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또한 여느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뒤통수와 앞이마가 툭 내솟고, 내솟은 좁은 이마 밑으로 눈썹이 시꺼멓고, 왕방울 같은 두 눈은 부리부리하니 정기가 있고도 사납고, 코는 매부리코요, 입은 메기입으로 귀 밑까지 넓죽 째지고, 목소리는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쨍쨍하고.
이런 대갈 장군인 뼘생 박 선생님과 아주 정반대로 생긴 이가 강 선생님이었다.
강 선생님은 키가 크고, 몸집도 크고, 얼굴이 너부릇하고, 얼굴이 검기는 하여도 순하여 사나움이 든 데가 없고, 눈은 더 순하고, 허허 웃기를 잘 하고, 별로 성을 내는 일이 없고, 아무하고나 장난을 잘 하고……. 강 선생님은 이런 선생님이었다.
뼘박 박 선생님과 강 선생님은 만나면 싸움이었다.
하학을 하고 나서, 우리들이 청소를 한 교실을 둘러보다가 또는 운동장에서(그러니까 우리들이 여럿이는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두 선생님이 만날라 치면, 강 선생님은 괜히 장난이 하고 싶어 박 선생님을 먼저 건드리곤 하였다.
“뼘박아, 담배 한 대 붙여 올려라.”
강 선생님이 그 생긴 것처럼 느릿느릿한 말로 이렇게 장난을 청하고, 그런다 치면 박 선생님은 벌써 성이 발끈 나 가지고
“까불지 말아, 죽여 놀 테니.”
“얘야 까불다니, 이 덕집엔 좀 억울하구나……. 아무튼 담배나 한 개 빌리자꾸나.”
“나두 뻐젓한 돈 주구 담배 샀어.”
“아따 이 사람, 누가 자네더러 담배 도둑질했대나?”
“너두 돈 내구 담배 사 피우란 말야.”
“에구 요 재리[2]야! 몸이 요렇게 용잔하게[3] 생겼거들랑 속이나 좀 너그럽게 써요.”
“몸 크구서 속 못 차리는 건, 볼 수 없더라.”
하나는 커다란 몸집을 해 가지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는 한 뼘만한 키에 그 무섭게 큰 머리통을 한 얼굴을 바싹 대들고는 사남이 졸졸 흐르면서, 그렇게 마주서서 싸우는 모양은 마치 큰 수캐와 조그만 고양이가 마주 만난 형국이었다.
2장
다른 학교에서도 다 그랬을 테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그 때 말로 ‘국어’라던 일본말, 그 일본말로만 말을 하게 하고 엄마 아빠할 적부터 배운 조선말은 아주 한 마디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주재소의 순사, 면의 면 서기, 도 평의원을 한 송 주사, 또 군이나 도에서 연설하러 온 사람, 이런 사람들이나 조선 사람끼리 만나도 척척 일본말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했지, 다른 사람들이야 일본 사람과 만났을 때말고는 다들 조선말로 말을 하고, 그래서 학교 문 밖에만 나가면 만판 조선말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요, 더구나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누나, 아기 모두들 조선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와 운동장에서 우리끼리 놀고 할 때에는 암만 해도 일본말보다 조선말이 더 많이, 그리고 잘 나왔다.
학교에서고, 학교 밖에서고 조선말로 말을 하다 선생님한테 들키는 날이면 경을 치는[4] 판이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밝히는 선생님이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나 다른 일본 선생님은 나무라기만 하고 마는 수가 있어도, 뼘박 박 선생님은 절대로 용서가 없었다.
나도 여러 번 혼이 나 보았다.
한번은 상준이 녀석과 어떡하다 쌈이 붙었는데 둘이 서로 부둥겨안고 구르면서, 이 자식아, 저 자식아, 죽어 봐, 때려 봐, 하면서 한참 때리고 제기고[5] 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고랏! 조셍고데 겡까 스루야쓰가 이루까(이놈아! 조선말로 쌈하는 녀석이 어딨어.)."
하면서 구둣발길로 넓적다리를 걷어차는 건, 정신 없는 중에도 뼘박 박 선생님이었다.
우리 둘이는 그 자리에서 뺨이 붓도록 따귀를 맞았고, 공부 시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시간 동안 변소 청소를 하였고, 그리고 조행[6] 점수를 듬뿍 깎였다.
이렇게 뼘박 박 선생님한테 제일 중한 벌을 받는 때가 언제냐 하면, 조선말로 지껄이다 들키는 때였다.
강 선생님은 그와 반대로 아무 시비가 없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 빼고는 그리고 다른 선생님, 그 중에서도 교장 이하 일본 선생님들과 뼘박 박 선생님이 보지 않는 데서는, 강 선생님은 우리한테 일본말로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말을 해도 강 선생님은 조선말을 하곤 했다.
우리들이 어쩌다
"선생님은 왜 '국어'로 안 하세요?"
하고 물으면 강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는 ‘국어’가 서툴러서 그런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강 선생님은 일본말이 서투른 선생님이 아니었다.
3장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여름 방학으로 놀던 때라, 나는 궁금하여서 학교엘 가 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오십 명이나 와 있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은 아직 몰랐고,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한 것만 알았다.
선생님들이, 그 중에서도 뼘박 박 선생님이, 그렇게도 일본(우리 대일본 제국)은 결단코 전쟁에 지지 않는다고, 기어코 전쟁에 이기고 천하에 못된 미국, 영국을 거꾸러뜨려 천황 폐하의 위엄을 이 전세계에 드날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말을 해쌓던 그 일본이 도리어 지고 항복을 하다니,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직원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두 일본 선생님 그리고 뼘박 박 선생님과 이렇게가 네 분이 모여 앉아서 초상난 집처럼 모두는 코가 쑤욱 빠져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운동장 구석으로 혹은 직원실 앞뒤로 끼리끼리 모여 서서 제가끔 아는 대로 일본이 항복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6학년에 다니던 우리 사촌언니 대석이가 뒤늦게야 몇몇 동무와 함께 떨떨거리고 달려들었다. 대석 언니는 똘똘하고 기운 세고 싸움 잘 하고, 그러느라고 선생님들한테 꾸지람과 매는 도맡아 맞고, 반에서 성적은 제일 꼴찌인 천하 말썽꾼이었다. 대석 언니네 집은 읍에서 십 리나 되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소문을 들었노라고 했다.
대석 언니는 직원실을 넘싯이 넘겨다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처억 직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실 안에 있던 교장 선생님이랑 다른 두 일본 선생님이랑은 못 본체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뼘박 박 선생님이 눈을 흘기면서 영락없이 일본말로
“난다(왜 그래?)?”
하고 책망을 했다.
대석 언니는 그러나 무서워하지 않고 한다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