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유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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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선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6일 (목) 14: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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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한용운이 1909년 부터 집필하여 백담사에서 탈고한 후, 1913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불교 논서이다. 총 1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의 약해진 불교 부흥을 위해 불교 개혁론을 주장하고 있다.

내용

제1장 당시 정치·경제·학술·사회 전분야에 유신의 기운이 팽배하여 있는데 오직 조선불교만이 유신을 외면하고 있음을 혹평하고,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유신론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는 동시에 이를 승려 동지들에게 알려 조금이라도 취할 점이 있어 유신의 구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제2장 ‘논불교지성질(論佛敎之性質)’에서는 불교의 유신을 논함에는 먼저 불교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고, 이것을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비추어 검토하여야 한다고 밝힌 뒤, 불교의 종교적인 성질과 철학적인 성질의 두 대목으로 분류하여 논술하였다.

제3장 ‘논불교지주의(論佛敎之主義)’에서는 불교의 주의를 평등주의와 구세주의의 둘로 나누어 불교의 특징을 밝혔다.

제4장 ‘논불교지유신의선파괴(論佛敎之維新宜先破壞)’에서는 유신은 파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과격한 혁신적 논리가 실려 있다.

제5장 ‘논승려지교육(論僧侶之敎育)’에서는 승려의 교육을 논하면서 폐쇄적인 독단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한국승려의 타락이 자유로운 탐구자세의 결핍, 안목의 왜소, 식견의 편협함에 있다고 본 그는 조선불교의 장래를 위하여 교육의 타당성을 주장,승려교육제도를 ① 전문학의 기초학문인 보통학, ② 자연사범(自然師範)·인사사범(人事師範)의 사범학, ③ 지식을 교환하고 학문을 교류함으로써 사리를 밝히는 외국유학 등을 제시하였다.

제6장 ‘논참선(論參禪)’에서는 당시 승려들의 참선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성황을 이루었으나 그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제7장 ‘논폐염불당(論廢念佛堂)’에서는, 그 시대의 염불풍토를 비판하였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나에게 성불할만한 도가 있으면 스스로 성불하여 정토에 가게 될 것인데, 먼 다른 곳에 있는 부처에게 애걸하는 거짓염불을 폐지할 것과, 부처님의 마음을 염(念)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염하며 부처님의 행(行)을 염하기를 끊임없이 닦는 참다운 염불을 닦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염불당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제8장 ‘논포교(論布敎)’에서는, 당시의 조선불교가 낙후된 상태에 있다고 보았고, 그 원인을 세력의 부진과 포교의 부재에 두었다. 재래불교의 비포교성을 비판하고 불교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포교의 필요가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제9장 ‘논사원위치(論寺院位置)’에서는 조선의 사원이 한결같이 산중에 있었다는 사실과 당시의 사원이 평화롭고 이상적인 승가(僧伽) 본연의 화합중(和合衆)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갈등과 분열에 놓여 있음을 알고, 사원이 산중에 있기 때문에 진보사상·모험사상·구세사상 및 경쟁하는 사상이 없으며, 교육·포교·교섭·통신·단체활동·재정 등의 문제에 불리한 점이 많음을 지적, 불교의 구세적이요, 포교적인 사명을 위하여 도시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10장 ‘논불교숭배지소회(論佛敎崇拜之塑繪)’에서는, 사원 안에 봉안된 각종의 소상과 회화[塑繪]를 철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제11장 ‘논불가지각양의식(論佛家之各樣儀式)’에서는 불교의 모든 의식절차를 남김없이 비난하고, 의식의 철저한 개혁과 폐지를 주장하였다.

제12장 ‘논승려지극복인권필자생화시(論僧侶之克復人權必自生和始)’는 승려가 인권을 회복함은 반드시 스스로 생산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

제13장 ‘관어승려지가취여부자(關於僧侶之嫁娶與否者)’에서는 조선불교를 부흥시키는 중요하고 시급한 대책의 하나로 승려의 가취문제를 들고 있다.

제14장 ‘논사원주직선거법(論寺院住職選擧法)’에서는 그때까지의 사원 주지가 선거를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맡는 윤번주지, 권리가 있는 자에게 의뢰하는 의뢰주지, 무력으로 얻는 무단주지의 세 가지 형태로 주지직을 맡아왔으나, 한 사찰의 성쇠가 주지에 달렸으니 선거법을 강구하여 주지를 뽑고, 또 월급을 주어 사원행정을 합리적으로 책임있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15장 ‘논승려지단체(論僧侶之團體)’에서는, 조선승려의 대부분이 독선적 이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 이들이 봉사의 정신으로 단결하여야만 불교유신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제16장 ‘논사원통할(論寺院統轄)’에서는, 승려뿐만 아니라 사원도 사무절차나 의식에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사찰과 사람마다 차이가 심하여 불화가 생기고 뭉쳐지지 않으며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보았다.

제17장 결론에서는 이 논문이 자기 내면의 충동을 못 이겨 저절로 말한 것으로 조금도 사심이 섞이지 않으며, 마음 그대로 말한 것이요 의무 그대로 행한 것일 뿐이니 옳고 그르고 행하고 못하는 것은 자기의 알 바가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문학적 가치

선구적이고 혁명적인 글이 글은 ① 1910년 당시 조선불교의 전반에 걸쳐 다각적인 관찰과 비판을 가하였다는 점, ② 전체 논문이 이론정연하고 체계가 짜여 있다는 점, ③ 불교의 장래를 누구보다도 아끼는 종교적 정열에서 솟아나온 산 글이라는 점, ④ 당시로서는 개화된 문장체인 국한문병용을 택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가장 선구적이고 혁명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불교의 병폐 ① 극히 외형적·피상적으로만 승단의 병폐를 지적하였다는 점, ② 따라서 불교교리·사상의 근대적 해석이나 주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 ③ 급진적 유신에 조급하여 종교교단의 근본원칙이 되는 계율의 해석과 개혁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 ④ 조선불교의 병폐가 호국을 가장한 승단이 역대왕조와 야합한 사실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고, ⑤ 도리어 승려의 독신생활을 왕권이나 일제통감부의 무력에 의하여 막으려고 하였다는 점 등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