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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는 자연주의 문학, [[이광수]]는 문학과 사회 평론, [[최남선]]은 역사와 조선문화 영역에서 각자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교류를 통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고 그 흔적은 유학 시절과 그 이후의 문학활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홍명희]]는 자연주의 문학, [[이광수]]는 문학과 사회 평론, [[최남선]]은 역사와 조선문화 영역에서 각자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교류를 통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고 그 흔적은 유학 시절과 그 이후의 문학활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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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와 [[홍명희]], 자연주의 문학
 
* [[이광수]]와 [[홍명희]], 자연주의 문학
  
 
당시 일본은 1900년대 후반기부터 일본문학사상 근대문학의 확립기이자 자연주의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특히 [[홍명희]]는 인간 내면의 일그러진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의 자연주의 작품에 빠져 탐독하였는데, 그 영향이 [[이광수]]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홍명희]]는 이광수에게 바이런, 톨스토이, 러시아 작품 등을 추천했고 둘은 이후 바이런의 작품을 유달리 즐겨 읽었다. 그러나 톨스토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홍명희]]와 달리 [[이광수]]는 오히려 바이런을 악마주의로 평가하며 톨스토이를 경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1900년대 후반기부터 일본문학사상 근대문학의 확립기이자 자연주의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특히 [[홍명희]]는 인간 내면의 일그러진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의 자연주의 작품에 빠져 탐독하였는데, 그 영향이 [[이광수]]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홍명희]]는 이광수에게 바이런, 톨스토이, 러시아 작품 등을 추천했고 둘은 이후 바이런의 작품을 유달리 즐겨 읽었다. 그러나 톨스토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홍명희]]와 달리 [[이광수]]는 오히려 바이런을 악마주의로 평가하며 톨스토이를 경도하기 시작했다.
 
  
 
*「대한유학생회학보」,「대한홍학보」
 
*「대한유학생회학보」,「대한홍학보」
  
 
세 명은 동경 유학생들이 발행한 잡지에 직접 기고를 하며 편집 활동을 이어나갔다.[[이광수]]는 기고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체에 기반한 문학 작품들을 발표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도서 선정 방법을 7가지 주제에 맞춰 소개하며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됐던 진화론, 세계사와 관련된 지식을 전하며 조선의 문명화에 힘썼다. [[최남선]]은 자신의 전공이었던 역사지리에 맞게 서구의 인물, 역사, 근대 문명 등을 소개하는 글을 씀으로써 그 영향을 조선에까지 전하려고 노력했다.  
 
세 명은 동경 유학생들이 발행한 잡지에 직접 기고를 하며 편집 활동을 이어나갔다.[[이광수]]는 기고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체에 기반한 문학 작품들을 발표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도서 선정 방법을 7가지 주제에 맞춰 소개하며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됐던 진화론, 세계사와 관련된 지식을 전하며 조선의 문명화에 힘썼다. [[최남선]]은 자신의 전공이었던 역사지리에 맞게 서구의 인물, 역사, 근대 문명 등을 소개하는 글을 씀으로써 그 영향을 조선에까지 전하려고 노력했다.  
 
  
 
* [[최남선]]의 『소년』지
 
* [[최남선]]의 『소년』지
  
 
[[이광수]]와 [[홍명희]]는 [[최남선]]이 발간하는 『소년』지에 글을 실으며 또 한번 그들의 관계를 증명했다. [[이광수]]는 <어린희생>이라는 단편소설을 연재하였는데, 당시 그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전쟁이 참담함을 담고 있다. 이는 일본 유학 당시 그가 보고 느꼈던 것이 크게 반영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홍명희]]는 [[가인]]이라는 필명으로 총 세편의 번역문을 실었는데, 폴란드 시인 네모에프스키의 시「사랑」을 비롯하여 시인 이반 끄릴로프의 우화시, 세익스피어와 밀튼의 격언 등을 소개하였다. 이 중에는 유학시절 작성했던 독서노트에서 발췌한 것도 일부분 있으며 당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러시아 문학과 그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있다.
 
[[이광수]]와 [[홍명희]]는 [[최남선]]이 발간하는 『소년』지에 글을 실으며 또 한번 그들의 관계를 증명했다. [[이광수]]는 <어린희생>이라는 단편소설을 연재하였는데, 당시 그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전쟁이 참담함을 담고 있다. 이는 일본 유학 당시 그가 보고 느꼈던 것이 크게 반영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홍명희]]는 [[가인]]이라는 필명으로 총 세편의 번역문을 실었는데, 폴란드 시인 네모에프스키의 시「사랑」을 비롯하여 시인 이반 끄릴로프의 우화시, 세익스피어와 밀튼의 격언 등을 소개하였다. 이 중에는 유학시절 작성했던 독서노트에서 발췌한 것도 일부분 있으며 당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러시아 문학과 그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있다.
 
 
  
 
===독립운동===
 
===독립운동===

2019년 6월 16일 (일) 20:58 판


요약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 일본 동경 유학생 출신으로 조선의 신문학을 건설하고 문명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 세 인물을 일컬어 '동경삼재'라 부른다.

관계

이광수최남선이 서로의 얼굴을 익혔던 것은 그들 나이 15세, 17세 때의 일이다. 동경에서 유학 중이던 둘은 미국에서 온 청년 안창호가 연설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참석할 당시 마주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 홍명희의 소개로 세 수재는 다시 만나게 된다. 당시 홍명희가 머물던 하숙집에서 호암 문일평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이광수를 알게 된다. 후에 최남선과 인연이 닿게 된 홍명희가 둘을 연결시켜주어 비로소 동경삼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열살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로 자란 이광수에게 그 둘은 엄청난 버팀목이 되었으며, 최남선홍명희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거리낌이나 편견 없이 잘 어울렸다. 당시 이미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최남선의 잡지 「소년」에는 이광수홍명희 정도만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각별했다. 세 사람은 동경 유학 시절을 보내며 조선의 신문학 건설에 대한 필요성을 여실히 느꼈고 이러한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만나면 항상 이와 관련하여 열띤 토론을 했다.

활동

문학활동

홍명희는 자연주의 문학, 이광수는 문학과 사회 평론, 최남선은 역사와 조선문화 영역에서 각자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교류를 통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고 그 흔적은 유학 시절과 그 이후의 문학활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일본은 1900년대 후반기부터 일본문학사상 근대문학의 확립기이자 자연주의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다. 특히 홍명희는 인간 내면의 일그러진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의 자연주의 작품에 빠져 탐독하였는데, 그 영향이 이광수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홍명희는 이광수에게 바이런, 톨스토이, 러시아 작품 등을 추천했고 둘은 이후 바이런의 작품을 유달리 즐겨 읽었다. 그러나 톨스토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홍명희와 달리 이광수는 오히려 바이런을 악마주의로 평가하며 톨스토이를 경도하기 시작했다.

  • 「대한유학생회학보」,「대한홍학보」

세 명은 동경 유학생들이 발행한 잡지에 직접 기고를 하며 편집 활동을 이어나갔다.이광수는 기고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체에 기반한 문학 작품들을 발표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도서 선정 방법을 7가지 주제에 맞춰 소개하며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됐던 진화론, 세계사와 관련된 지식을 전하며 조선의 문명화에 힘썼다. 최남선은 자신의 전공이었던 역사지리에 맞게 서구의 인물, 역사, 근대 문명 등을 소개하는 글을 씀으로써 그 영향을 조선에까지 전하려고 노력했다.

이광수홍명희최남선이 발간하는 『소년』지에 글을 실으며 또 한번 그들의 관계를 증명했다. 이광수는 <어린희생>이라는 단편소설을 연재하였는데, 당시 그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전쟁이 참담함을 담고 있다. 이는 일본 유학 당시 그가 보고 느꼈던 것이 크게 반영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홍명희가인이라는 필명으로 총 세편의 번역문을 실었는데, 폴란드 시인 네모에프스키의 시「사랑」을 비롯하여 시인 이반 끄릴로프의 우화시, 세익스피어와 밀튼의 격언 등을 소개하였다. 이 중에는 유학시절 작성했던 독서노트에서 발췌한 것도 일부분 있으며 당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러시아 문학과 그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있다.

독립운동

관련항목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