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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제는 늦봄 음력 3월의 상서로운 뱀날에 지내는데, 음력 3월은 뽕잎이 나기 시작하므로 잠월(蠶月)이라고도 한다. 관상감에서 날짜를 정하면 예조에서 의례 준비를 하였다. 선잠제를 주관하는 관리들은 5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사를 준비하였다. 절차별 음악과 무용도 준비하고 규범과 법칙에 맞추어 희생, 폐백, 음식, 제기 등을 설치하였다. 선잠제는 의례 속에 음악, 노래, 무용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선잠제는 늦봄 음력 3월의 상서로운 뱀날에 지내는데, 음력 3월은 뽕잎이 나기 시작하므로 잠월(蠶月)이라고도 한다. 관상감에서 날짜를 정하면 예조에서 의례 준비를 하였다. 선잠제를 주관하는 관리들은 5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사를 준비하였다. 절차별 음악과 무용도 준비하고 규범과 법칙에 맞추어 희생, 폐백, 음식, 제기 등을 설치하였다. 선잠제는 의례 속에 음악, 노래, 무용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에는 선잠제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 꾸준히 시행되었으며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친잠 의식인 [[친잠례]](親蠶禮)'''도 이루어졌다.
 
 
  
  

2022년 2월 24일 (목) 15:02 판


개요

선잠단지소개.png


선잠단은 누에치기를 처음으로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양잠(養蠶)의 신으로 받들어 국가의례 선잠제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왕조에서 선잠제를 시행했다는 기록은 1400년(정종2)부터 나타나며,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냈다. 1908년에는 신위를 사직단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어 '선잠단지'로 불린다.

역사

고대 사회에서는 농업과 잠업(蠶業)이 사회 발전의 주요한 밑거름이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양잠을 처음 가르친 서릉씨를 '선잠(先蠶)'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냈다. 삼국시대에 신라 왕실에서 누에치기를 권장한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선잠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 선잠제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의례로 정비되었다. 조선의 의례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오례’라고 했는데 그 중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길례’였다. 선잠제에 대한 논의는 태종대부터 시작되어 세종대 『세종실록』 「오례」에 정리되었고, 이후 수정을 통해 『국조오례의』로 법제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잠제의 의미와 의식은 강화되었다. 선잠제를 지냈던 선잠단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논의되었지만 옮기지 않고 현재 성북동의 ‘선잠단지(先蠶壇址)’에서 제사를 지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은 여성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국왕이었다. 그러나 제사의 규모가 중사였기 때문에 관료를 보내어 대신 지내게 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을 '섭사'라고 한다. 선잠제는 매년 지내야 했지만 기록을 보면 그렇지 못하였다. 다만 세조와 명종은 상대적으로 자주 선잠제를 지냈는데 세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에는 선잠제가 거의 매년 시행되었는데 왕권이 약한 대신에 의례를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선잠제 시행에서 큰 변화는 1767년(영조 43)에 있었다. 이 해에는 왕비가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친잠 의식인 친잠례(親蠶禮)를 치르게 되었다. 영조는 왕비가 직접 선잠제를 치르도록 하였으며 이것은 조선에서는 유일한 일이었다. 당시 왕비였던 정순왕후는 직접 술을 올리는 선잠작헌례를 시행하였다. 조선시대 선잠제는 백성을 위하는 민본정치를 반영한 것이며 백성들의 의생활을 걱정하고 장려하였던 정책이 의식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선잠제는 늦봄 음력 3월의 상서로운 뱀날에 지내는데, 음력 3월은 뽕잎이 나기 시작하므로 잠월(蠶月)이라고도 한다. 관상감에서 날짜를 정하면 예조에서 의례 준비를 하였다. 선잠제를 주관하는 관리들은 5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사를 준비하였다. 절차별 음악과 무용도 준비하고 규범과 법칙에 맞추어 희생, 폐백, 음식, 제기 등을 설치하였다. 선잠제는 의례 속에 음악, 노래, 무용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선잠단의 유래와 연혁

시기 내용 비고
1400 (정종2) 조선 왕조 최초 선잠제 시행(장소: 개경)
1401 (태종1) 선농과 선잠 악장 정비 논의
1411 (태종11) 선잠 폐백 제도 상정, 희생으로 돼지에 양도 더함 희생: 제사에 제물로 쓰이는 동물
1414 (태종14) 예조에서 선잠단의 제도와 규모를 확인함
1430 (세종12) 태종 후반기에 수정된 선잠단 체제를 확인하고 정비함
1475 (성종5) 『국조오례의』에 선잠제를 정비하여 수록
1797 (정조21) 선잠단 동쪽 계단의 칠을 보강함
1887 (고종24) 선잠단을 살피고 홍살문, 담장, 계단이 그대로임을 확인
1908 (융희2) 신위가 사직단으로 옮겨지고 선잠단지가 국유지로 이속됨
1939 사적 117호로 지정되면서 일부를 보호구역으로 결정
1963 사적 83호로 지정
2011 '서울 선잠단지'로 명칭 변경 2011.07.28 선잠단지 → 서울 선잠단지

고문헌 속 선잠

"선잠단, 동소문(東小門) 밖 사한이(沙閑伊)에 있다."  - 세종실록 지리지 
"늦봄의 길한 뱀날 선잠(先蠶)에게 제사를 지낸다." - 『국조오례서례』
"공경히 옛 법을 따라 제단을 모으도록 명하여 제사를 받드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삼가 제수를 갖추어 잔을 올립니다.
이제 이 예를 올리는 것은 직접 솔선하는 데 뜻이 있사오니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우리나라를 도와주옵소서."
- 『서릉씨 작헌례의 어제제문』『친잠의궤


선잠단, 선잠단지, 선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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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영상

<성북동 비디오 가이드(선잠단지/선잠박물관)> - 성북동주민자치회 2021. 12. 30. ...................<3년만에 재개 된 '선잠제' 양잠의 풍요 기원> - 서울경기케이블TV, 2021. 05. 21.

선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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