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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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7일 (일) 14: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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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사회의 변화

'조선 초중기'

양반 중심의 사회. 조선 초기에 세습 신분은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이 있었다. 직업의 종류,귀천에 따라 양인에는 사(士)·농(農)·공(工)·상(商)의 구별도 존재했다. 왕권이 자리잡고, 관료조직이 정비된 후, 관료들은 지배층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굳혔다. 양인 내에서도 향리나 농민같이 뚜렷이 구별되는 신분을 마련하였다. 하급관리·지방행정실무자·기술관 등은 별도로 중인(中人)신분을 이루었고, 농업·상업·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민(常民)이 되었다. 그 밑에는 천민신분으로 노비·광대·사당·무당·창기·백정 등이 속하였다. 특히 노비는 공공기관이나 개인에 소속되어 매매·증여·상속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초기 이러한 사회적 신분은 왕의 선택을 받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세습되는 경향이 많았다. 때문에 신분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

한정된 관직의 수는 대립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관직에 종사한 자는 국가로부터 경제적 혜택과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을 바꿔 힘을 얻고자 하는 세력은 19세기에 들어서자 점점 커져갔다. 납속책(納粟策)이나 족보의 위조, 학생을 사칭하여 양반신분에 오르고, 또는 양반과 혼인을 하여 양반이 되는 경우도 있어 양반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양반 내에서 계층이 분화되기도 하였다. 당시 집권당파의 권세 있는 양반인 권반(權班), 향촌사회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향반(鄕班)·토반(土班), 그리고 농민과 다름없이 몰락한 잔반(殘班) 등이 나뉘어졌다. 노비들 중에서는 도망을 하거나,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거나, 국가에 곡식을 바치는 방식으로 상민(常民)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하여 1801년에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가 모두 해방되고, 1894년에는 사노비까지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신분제를 폐지하여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였다. 


참고 문헌

지식백과:조선의 사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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