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비중리 석조여래입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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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자료'''==
 
[https://newsis.com/view/?id=NISX20190612_0000678425&cID=10899&pID=10800 청주시, 보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입상' 종합정비계획 수립](2019.06.12), 뉴시스
 
[https://newsis.com/view/?id=NISX20190612_0000678425&cID=10899&pID=10800 청주시, 보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입상' 종합정비계획 수립](2019.06.12), 뉴시스
  

2022년 12월 2일 (금) 17:26 판



소개

청원 비중리 사지(淸原飛中里寺址)에 청원 비중리 일광삼존불상(淸原飛中里一光三尊佛像,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4호)과 함께 있는 석불이다.

전체 높이는 144cm이며, 폭이 좁고 상하가 긴 기둥모양 화강암을 높게 부조하여 만들었다.

얼굴은 안면부가 파손되어 본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광배(光背)에 남아 있는 머리의 흔적을 통해 갸름하고 긴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두광(頭光)이 이중으로 표현되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으며 어깨는 좁은 편이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으로 타원형의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렸고, 옷주름은 굵고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무릎 아래에는 치마가 두툼한 옷주름을 보이며 흘러내렸고, 발 가까이에서 다시 층단을 이룬 옷주름이 보인다. 손모양은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였다.

가슴 아래로 흘러내린 타원형의 옷주름과 크게 표현된 양쪽 손 등 삼국시대의 불상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삼국시대 말인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요소

현재 왼쪽(向右) 협시 보살상은 찾을 수 없는 상태이지만,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 시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대좌의 양쪽 측면에서 두 마리의 사자가 호위하고 있는 사자좌(獅子座)는 삼국 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했던 대좌 형식으로서 더욱 주목된다.


이 여래삼존상은 6세기 중엽 삼국의 경계지역이었던 청주에서 전해오는 가장 귀중한 초기 삼국 시대 불상으로서 그 역사적, 미술사적 의의가 대단하며, 함께 전해오는 석조여래입상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국 시대 조각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환조(丸彫): 한 덩어리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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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뉴스자료

청주시, 보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입상' 종합정비계획 수립(2019.06.12), 뉴시스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문화재구역’ 지정(2019.03.12), 충청매일


영상 자료

뉴스

  • [BBS-TV] 비중리 석조삼존불좌상 보물지정 불교방송 뉴스영상

역사

  • [ MBC충북NEWS] 숨은 고구려사를 찾아서

작성자

최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