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비중리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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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청원 비중리 사지에 청원 비중리 일광삼존불상(淸原飛中里一光三尊佛像,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4호)과 함께 있는 석불이다.

전체 높이는 144cm이며, 폭이 좁고 상하가 긴 기둥모양 화강암을 높게 조각하여 만들었다고한다. 하나의 돌에 광배와 불·보살 삼존, 방형의 사자좌를 두터운 환조에 가깝게 조각하였다.

얼굴은 안면부가 파손되어 본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광배(光背)에 남아 있는 머리의 흔적을 통해 갸름하고 긴 편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에는 두광(頭光)이 이중으로 표현되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으며 어깨는 좁은 편이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풍이 잘 되는 옷이며, 타원형의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렸고, 옷주름은 굵고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무릎 아래에는 치마가 두툼한 옷주름을 보이며 흘러내렸고, 발 가까이에서 다시 층단을 이룬 옷주름이 보인다. 손모양은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였다.

가슴 아래로 흘러내린 타원형의 옷주름과 크게 표현된 양쪽 손 등 삼국시대의 불상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삼국시대 말인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왼쪽의 보살상은 결실된 상태이다.

본존불은 대좌의 좌우에서 두 마리 사자(獅子)가 위풍당당하게 앉아 불상을 호위하고 있는 방형의 사자좌에 앉아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손짓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시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방형의 사자좌 역시 삼국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했던 대좌의 형식이다. 우협시 보살상은 무거운 관식(冠飾)과 탐스러운 보발(寶髮)이 어깨 위로 늘어졌고, 목에는 끝이 뾰족한 첨판형의 목걸이를 착용하였다.

천의는 허벅지에서 X자형으로 교차한 고식의 천의(天衣)로, 6세기 전반기 좌우 뻗침이 강한 표현과 비교해 많이 누그러져 6세기 중반 경의 불상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구성요소

현재 왼쪽(向右) 협시 보살상은 찾을 수 없는 상태이지만,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 시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대좌의 양쪽 측면에서 두 마리의 사자가 호위하고 있는 사자좌(獅子座)는 삼국 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했던 대좌 형식으로서 더욱 주목된다.


이 여래삼존상은 6세기 중엽 삼국의 경계지역이었던 청주에서 전해오는 가장 귀중한 초기 삼국 시대 불상으로서 그 역사적, 미술사적 의의가 대단하며, 함께 전해오는 석조여래입상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국 시대 조각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환조(丸彫): 한 덩어리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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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뉴스자료

청주시, 보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입상' 종합정비계획 수립(2019.06.12), 뉴시스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문화재구역’ 지정(2019.03.12), 충청매일


영상 자료

뉴스

  • [BBS-TV] 비중리 석조삼존불좌상 보물지정 불교방송 뉴스영상

역사

  • [ MBC충북NEWS] 숨은 고구려사를 찾아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문화유산포털

작성자

최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