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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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정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21일 (목) 19: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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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요정은 객실과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고 주류와 음식물을 판매하여 가무를 행할 수 있는 접객업소를 말한다. 유흥업 종사자가 손님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드는 것이 일반음식점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운동가·기업인·상인들이 주로 출입하였으며, 요정의 주석에는 권번출신 기생이 한복을 입고 창·잡가·노랫가락 등을 가야금병창으로 부르거나, 검무·남무·북춤 등을 추면서 주흥을 돋우었다. 하지만 광복 후 권번에서 교육받은 기생들은 거의 사라지고 단순히 술을 따르면서 말벗이나 희롱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화초기생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요정의 모습이 변질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요정은 기생이 없어지는 등 예전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여 대부분이 전통음식점으로 변하였다. 이처럼 요정의 쇠퇴와 함께 유흥문화의 흐름은 유흥주점(룸살롱)으로 옮겨갔고, 규모 역시 연회 중심에서 개별 중심으로 축소되었다.

3대 요정

1950∼1970년대 '밀실정치의 무대’였던 서울의 3대 요정 오진암 대원각 삼청각. 세 곳 모두 '걸어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소형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를 듣던, 권력자들이 즐겨 찾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 모두 일반 서민들이 위로받고 휴식을 할 수 있는 문화·종교시설로 바뀌게 됐다.

  • 오진암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했던 700평 단층 한옥의 요정이다. 1953년 개업했으며 서울시에 등록된 음식점 1호 업소다. 1972년 이후락 당시 이 곳에서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 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ㆍ4 공동성명을 논의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 외에도 구한말 화가 이병직의 옛 거처로 알려져있으며 경기민요의 대가 안비취가를 양성한 것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하지만 2010년 8월, 당시 소유주였던 건설업체가 비즈니스호텔을 짓겠다며 오진암을 철거했고 이에 종로구청은 오진암의 한옥 건물 몇 개를 부암동으 로 옮겨 이축했다. 현재 '무계원'으로 불리며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삼청각

1972년 개업한 삼청각은 남북적십자회담 및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 장소로 이용된 후로 유신체제가 삼엄했던 4공화국 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경영난을 겪자 1990년 ‘예향’이라는 일반 음식점으로 전환해 새출발을 도모했지만, 1999년 12월 결국 폐업하였다. 이후 2000년 5월에 서울시에서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모델링을 통해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탈바꿈하였다.

1951년 무렵, 기생 김영한은 일제강점기에 '청암장'이라 불리던 별장을 매입하여 대원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고급요정을 운영하였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해 7000여평 의 부지와 건물 40여동 등을 자랑하는 엄청난 규모의 요정이었다. 제3공화국, 제5공화국을 지나며 밀실정치의 대표장소로 세상에 알려졌다. 1995년, 김영한이 부지 전체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라는 이름의 사찰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삼청각

시사상식사전 오진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요정

관계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요정 대원각 B는 A이다.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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