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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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그림(전통을 근대적으로 해석한 그림들)

동십자각(東十字閣), <건설이냐 파괴냐>

작품 설명

경복궁의 동십자각이라는 건물을 조선총독부 청사 신축으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는 공사 광경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김용준이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학생 신분으로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된 작품이다.

1924년, 캔버스에 유채, 크기 미상.









달리아와 백일홍

작품 설명

달리아와 백일홍은 개화 이후 새로이 수입된 식물이였는데, 이를 김용준이 그린 정물화다.

1930년, 캔버스에 유채, 60.0×41.0cm, 개인 소장













자화상

작품 설명

동경미술학교에 재학 중이던 20대의 젊은 시절의 김용준을 그린 자회상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낭만주의 작가로 평했는데, 이 그림에서 알 수있는 거친 필치나 어두운 조명을 배경으로 소재의 일부분에만 집중 조명한 기법을 볼 때, 그가 말하는 낭만주의는 표현주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 같다.

1930년, 캔버스에 유채, 60.3×45.0cm, 일본 동경예술대학 예술자료관 소장.









바다

작품 설명

김용준이 '제15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다. 바위의 윤곽선을 강조하였으며, 세부묘사를 생략하여 동양화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1936년, 캔버스에 유채, 23.5×32.5cm.











송로석불로(松老石不老)

작품 설명

완당 김정희의 필의를 추구한 그림이나, 전통적인 준법을 사용하기보다 김용준 나름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적갈색으로 면을 채색하고 묵점으로 껍질을 표현한 소나무의 모습에서 독특한 기법을 볼 수 있다.

1941년, 수묵담채, 15.5×41.5cm(선면).








문방정취(文房情趣)

작품 설명

그림 안에“임오년(壬午年) 유하월(榴夏月, 오월)에 노시산방에서 그리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42년, 종이에 수묵과 담채, 개인 소장










문방부귀(文房富貴)

작품 설명

그림 안에“때는 계미년(癸未年) 봄날, 오각(吾覺) 대아(大雅)를 위해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43년, 종이에 수묵과 담채, 개인 소장






강산무한호(江山無限好)

작품 설명

그림 안에“정해년(丁亥年) 여름에 검려생(黔驢生)”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검려는 김용준이 사용한 호의 하나로 ‘검려지기(黔驢之技)'에서 따온 것이다.

1943년, 종이에 수묵과 담채, 개인 소장









산수

작품 설명

그림 안에“계미년 여름, 가뭄이 오래 되어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술을 마셔 더위를 씻고, 취한 나머지 원(元) 화가의 화법을 본받아 장남 삼아 그리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43년, 종이에 수묵과 담채, 29.5×41.5cm.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

작품 설명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은 근원 김용준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서 수화 김환기를 그린 그림이다. 1947년 4월 어느날, 근원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 놀러가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깡마른 체구, 거구에 안경을 쓴 김환기의 모습에 예술가적 기품이 담겨있으며, 김환기의 특정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수화가 부산영도다리 근처에서 살던 시절 산정(서세옥)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라고 보여주었다는 그 그림이다. 수화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근원의 이 그림을 고이 간직했다는 것을 보아, 근원을 향한 수화의 각별한 마음을 알 수있다.




















매화

작품 설명

그림 안에 “매화와 더불어 벗이 되고 싶어 매화 가지 몇 개를 그려 곽건당(郭健堂) 형의 부탁에 응하였으나, 속된 화사(畵師)의 화법을 면치 못했구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48년, 종이에 수묵, 26.5×18.0cm.











작품 설명

원작은 1957년 단오 3일 후에 제작되었으나 망실, 1958년 제재작 하였다. 이 작품은 김용준이 월북 후 남긴 대표작이다.















운산구심(雲山俱深)

작품 설명

명말청초 석도의 분위기를 모방하려고 시도한 그림이다. 석도는 산수화에 뛰어나 천변만화의 필치로 종전의 방법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롭고 주관적인 문인화를 그렸다.

연대 미상, 수묵담채, 38.0×21.0cm.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근원 김용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