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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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성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본거지로 삼아온 공간이다. 과거 성북의 모습을 그린 예술가, 과거 성북의 모습을 사랑해서 성북에 자리 잡고 예술활동을 영위해 온 예술가, 옛 성북에서 나고 자라며 생을 보내온 예술가 등을 다루어 보면서 과거의 성북의 모습과 현재의 성북의 모습 덧붙여 그들에게 예술적 귀감이 되어준 성북의 모습까지 알아보며 뿌리깊은 예술의 본거지 성북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성북을 그린 예술가

겸재 정선

인물 설명

  • 조선 후기 선비이자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시대 대표 화가로 꼽힌다. 진경시대란 조선 후기 사회가 양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조선 고유 문화인 진경 문화를 이루어 낸 시기를 의미한다.
  • 그는 자연을 벗삼아 수려한 화폭을 담아내었고 대표작으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경교명승첩」이 있으며 이 중 「경교명승첩」은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려낸 진경산수화이다.
  • 자세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시절 성북의 경치를 그려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성북에 거주하지 않았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아름다운 성북의 경치를 몇 점 그려내었다고 한다. ”[1]

활동의 본거지

  • 「경교명승첩」에 담긴 옛 성북의 경치(성북구라는 것 외에 정확한 위치는 밝혀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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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관련전시

  • 산송 콜렉션 아카데미-겸재정선 강의 [1]

성북을 사랑한 예술가

서세옥

인물 설명

  •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82.6㎡)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주거지에 서세옥을 클릭하면 생전 터전인 무송재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활동의 본거지

  •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 자리한 '무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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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2]

관련전시

  • 국립현대미술관-기증작품 특별전 <서세옥전> [2]

윤이상

인물 설명

  • 생전에 현존하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힌 윤이상 작곡가는 1917년 경상남도 산청군에 태어나고 통영에서 자랐다.
  •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또래에게 찬송가를 가르칠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음악가로서의 소질을 보였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음악적 재능을 펼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 다행스럽게도 18세 때 <목동의 노래>를 출판하게 되며 당시 유명했던 작곡가 홍난파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 이후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교사로서 활동하며 한편으로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 그는 교육인 이수자와 혼인 후 아내가 혼수로 해 온 피아노를 팔아 성북동 한옥으로 이사하였고, 1953년부터 1956년의 약 3년 간 그의 남은 생애를 성북구와 함께 했다.

활동의 본거지

성북동 128-1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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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교육인 이수자와 혼인 후 아내가 혼수로 해 온 피아노를 팔아 성북동 한옥으로 이사하였고, 1953년부터 약 3년간 남은 생애를 보냈다.

그에게 이 3년 간의 시간은 조지훈 시인 등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던 예술적 감성의 절정기였다.

작품

  • 동요
    • <목동의 노래>
  • 오페라
    • <유동의 꿈>
    • <나비의 미망인>
    • <심청>
    • <요정의 사랑>

등.

인물 평가

  •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
  • 독일 관념철학의 전통이 벽에 부닥친 서양문명의 흐름 속에서 동양사상을 담은 음악으로 세계음악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작곡가

조지훈

인물 설명

  • 시인 조지훈은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께 한학을 배웠다.
  • 이후 영양보통학교, 혜화전문학교에 차례로 입학하며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 1941년 대학 졸업 이후에는 월정사 강사로 재직하기도 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편찬위원회에 참여했다.
  • 후에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펴면서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 광복 이후부터는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의 민족문화에 대한 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활동의 본거지

  • 성북구 6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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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구에 소재한 고려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성북동을 중심으로 청록파 활동을 펼쳤다.
  • 성북구와 성북동은 시인 조지훈의 예술적 토양이었다.

작품

    • <승무>
    • <청록집>
    • <낙화>
    • <민들레꽃>

등.

청록파

  • 청록파
    • 1940년 전후에 문예지 《문장》을 통해 문단에 등장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시인 3인
    •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를 썼으며, 1946년 6월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靑鹿派)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인물
    • 박두진
    • 박목월

근원 김용준

인물 설명

  • 1904년에 대구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는 등 예술적 재능을 나타냈다.
  • 이후 동경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유학하여 1931년에 졸업하였고 이후 뚜렷한 서양화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 1938년 무렵부터 전통적인 수묵화를 시작하였으나 뚜렷하지는 않았다.
  • 반면 신문 및 잡지에 미술평과 시론을 기고하며 평론가로서 활약하였다.

활동의 본거지

성북동 274-1 (성북로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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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4년 성북구로 이사온 후 이태준 등 성북구 문인들과 교류했다.
  • 당시 이사 온 집에는 집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가 있어서, 바로 이태준이 노시산방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 1944년 노시산방을 김환기-김향안 부부에게 물려주고 의정부로 거처를 옮겼다.
    • 관련문서 : <월하의 마음> 김향안
      • [성북동 274-1. 근원 선생이 손수 지으신 노시산방을 물려받아 보금자리를 꾸미다.]

작품

관련 전시

성북이 배출한 예술가

오원 장승업

인물 설명

  • 조선의 3대 화가로 안견, 김홍도, 장승업 선생이 있다. 따로 교육을 받지 않고도 타고난 직관력과 감각 천부적 재능을 가진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 장승업 선생의 생전 집터는 성북로 27번지로 혜화문에서 가까운 성북천 옆에 위치해 있다. 현재로 새로 들어선 주택이 자리하고 있으나 이전엔 초가집의 형태를 띠었다고 한다.
  • 아직도 그의 자취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종종 방문한다고 하며 주거지에 오원 장승업을 클릭하면 생전 집터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활동의 본거지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27 '장승업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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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3]

관련전시

  • 간송미술문화재단-<조선 최후의 거장 장승업X취화선> [3]

한용운

인물 설명

  •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은 1926년 시집 <님의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남의 침묵에서는 기존의 시와, 시조의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로 시를 썼으며 이후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 1930년대부터는 장편소설《흑풍》(黑風),《후회》,《박명》(薄命), 단편소설《죽음》등을 비롯한 몇편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 심우장(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은 1933년-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거지에 심우장을 클릭하면 생전 터전인 심우장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활동의 본거지

  • 그가 1933-1944년까지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 '심우장'(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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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4]

관련전시

  • 만해기념관-상시전시 [4]

박남옥

인물 설명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1923~2017.04.08)은 1940년대 돈암동에 거주하며 주변에 살던 영화인들과 교류하고 1953년 극작가인 이보라와 결혼했으며 이듬해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 미망인을 촬영했다.
  • 1960년 도쿄서 열린 제 7회 영화제에 참가했다. 1997년 제 1회 서울 여성영화제가 미망인을 상영하며 우리나라 최초 여성 영화감독의 존재가 알려졌고 2008년 여성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박남옥상이 제정되었다.

활동의 본거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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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5]

서울중앙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미망인’은 안타깝게도 4일 만에 막을 내렸다. 35㎜ 영화의 홍수와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에 대한 편견이 빚어낸 명백한 흥행실패다. 
하지만‘미망인’은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전쟁미망인을 소재로 여성의 갈등과 욕망을 과감하면서도 절제 있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평론가와 관객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관련전시

  • 한국영상자료원 전시-<아름다운 생존:여성영화감독전> [5]

송영수

인물 설명

  • 조각가 송영수(1930-1970)는 석고와 돌, 나무를 조각 재료로 쓰는 다른 조각가들과 달리 철과 생활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새로운 추상조각을 선보여 ‘철 조각의 선구자’라고도 불린다.
  • 생의 마지막 시절을 보낸 성북동. 그는 1965년 성북동에 직접 집과 아뜰리에를 설계했고 1970년 타계하기까지 거주하였다. 아뜰리에 위치는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해 있고 집이자 아뜰리에이며 현재 그의 가족이 거주중이라 정확한 주소 정보는 비공개이다.

활동의 본거지

  • 그의 집이자 아뜰리에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 주거지에 송영수를 클릭하면 그의 아뜰리에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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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6]

관련전시

  • 성북구립미술관-<송영수 50주기 특별전> [6]

김철주

인물 설명

  • 조각장 김철주(1933~2015)는 국가무형문화재 제 35호 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조각장이란 금속기의 표면에 평각(平刻)·투각(透刻)·고각(高刻)·육각(肉刻)·상감(象嵌) 등의 기법으로 문양을 새기는 장인으로 조이장(彫伊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조각장 분야의 첫 기능보유자였던 김정섭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7년 백하금속조각사라는 공방을 열고 기술을 연마하였다. 이후 1970년대 초반부터 아버지의 전통 조각 기능을 배우고 익혀 1989년 12월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 성북구 종암동 35번지에 거주하였다.

활동의 본거지

  • 그가 생전 거주한 성북구 종암동 3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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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관련전시

  • 1주기 아카이브전 [7]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제 1950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1119500000&pageNo=1_1_1_1
  2. Lehmann Maupin, New.York 에서 사진 제공
  3. 왼: 산인문년도, 19세기, 간송미술관 오: 호취도, 삼성리움미술관
  4. 시집 '님의 침묵' 구매처 이미지 발췌 http://www.yes24.com/Product/Goods/24963916
  5. '미망인' 줄거리 관련 내용 발췌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6. 작품 원본 자료 아뜰리에 사진 원본 자료 https://blog.naver.com/heredoggy/221689632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