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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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전성기 시절에는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해양 국가이자 대영제국 이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여겨졌던 세계적인 열강이었다.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남쪽으로는 모로코와 지브롤터와 인접하고 있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 마드리드의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6,661,949명이다. 국토 면적은 505,990㎢,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46,745,611명이다.

근대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상당한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브라질을 뺀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일대의 여러 섬, 필리핀, 괌, 북마리아나 제도 등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많은 인구가 라틴아메리카 일대와 미국, 필리핀 등지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과거 인구 유출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에 비해서는 현재는 인구가 많은 편으로 출산율은 1970년대까지도 높아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로 출산율이 급감했지만 당시 산업 구조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던 스페인의 구 식민지인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 많은 인구가 몰려와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다. 나중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밀도는 92명/㎢로 주변 국가에 비하면 조금 낮다.

역사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전성기 시절에는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해양 국가이자 대영제국 이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여겨졌던 세계적인 열강이었다.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남쪽으로는 모로코와 지브롤터와 인접하고 있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 마드리드의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6,661,949명이다. 국토 면적은 505,990㎢,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46,745,611명이다.

근대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상당한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브라질을 뺀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일대의 여러 섬, 필리핀, 괌, 북마리아나 제도 등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많은 인구가 라틴아메리카 일대와 미국, 필리핀 등지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과거 인구 유출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에 비해서는 현재는 인구가 많은 편으로 출산율은 1970년대까지도 높아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로 출산율이 급감했지만 당시 산업 구조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던 스페인의 구 식민지인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 많은 인구가 몰려와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다. 나중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밀도는 92명/㎢로 주변 국가에 비하면 조금 낮다.


고대에는 히스파니아라 불렀고 히스패닉, 에스파냐, 스페인이라는 이름 모두 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점령 이전 동부와 남부 해안가는 이베로족과 카르타고인들이 있었고 중부와 서부, 북부는 켈트족들이 있었다. 로마 제국의 점령 이후 여러 명의 황제를 배출하기도 하고 귀족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이탈리아 반도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중세에는 서고트 왕국이 있었다. 로마를 점령한 고트족과는 다른 부류다. 이들은 오늘날 스웨덴 남부, 독일 북부에 거주하던 종족이었으나 로마가 후퇴할 시기에 이베리아 반도로 대규모로 이주했다. 이때 이주한 서고트족은 30만 명 정도로 이베리아 원주민을 압도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고 그 전에 이미 정착한 같은 게르만 계통의 수에비족, 반달족, 소수 게르만족들이 각각 연합체로 지역별로 나뉘어 다스리고 있었다. 서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 내의 게르만족을 모두 복속시켜 이베리아를 통일했다.

프랑크족과 동로마 제국의 공격으로 흔들렸으나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했다. 그 후 왕위 계승 싸움과 내부 분열 등으로 여러 가지 혼란들이 가중되었고 711년 지브롤터에 이슬람군이 상륙하고 중앙군이 대패하면서 정복당했다. 하지만 일부 귀족 세력이 북부의 산악 지대로 도망가서 그곳에 기독교 국가를 세웠고 이 국가들은 레콘키스타의 토대가 된다.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한 후 알안달루스라고 불리게 된 스페인이슬람 왕조들의 중심지로 유럽에서 당시 가장 번화하는 지역이었고 화려한 문화를 남겼다. 하지만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북부의 기독교 세력이 강대해져 엘 시드로 유명한 레콘키스타로 이슬람 세력과 대치했다. 이 시기 이베리아가 정복당함으로써 700년간 수많은 아랍인들이 올라와 그들과 섞이게 되었고 많은 스페인 사람들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1492년에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이사벨 1세에 의해 레콘키스타가 완료되었고 콜럼버스의 항해와 함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최전성기 스페인은 캐나다 남부, 미국의 중부, 남부, 서부뿐 아니라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 괌, 북마리아나 제도 등 여러 태평양 제도들을, 아프리카에서는 서부 해안 일대를 장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프랑스와 패권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했고 압스부르고 왕조가 지배하는 시기에는 그만큼 많은 견제를 받았다. 게다가 광대한 아메리카의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에서는 금은이 쏟아졌지만 다른 식민제국에 비해서는 산업 발전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펠리페 2세 시기에는 프랑스를 압도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서는 1648년 네덜란드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다.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왕가가 합스부르크에서 부르봉으로 바뀌며 플란데런, 프랑슈 콩테,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 등의 서유럽 영토를 상실했고 이때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카를로스 3세의 개혁으로 다시 중흥을 이루어 미국 미시시피 서부의 모든 영토와 플로리다 등 북아메리카 남부 지역부터 남아메리카까지 방대한 영토를 자랑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 후 나폴레옹이 스페인령 루이지애나를 빼앗고 그것을 다시 미국에 되팔았다. 그 후 미국 독립에 자극받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스페인의 혼란을 틈타 독립 운동을 벌여 1820년~1830년대를 전후해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볼리비아, 파나마, 우루과이,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네바다, 애리조나 등 아메리카 대륙의 크고 작은 해외 식민지들을 대거 상실했다.</br>

1898년에는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마지막으로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 카리브해 및 태평양 도서 지역의 식민지들도 상실했고 스페인령 사하라, 적도 기니, 모로코 북부 일부 지역만이 남게 되었다. 19세기 수십 년에 걸쳐 스페인 제국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미국이 그 방점을 찍었다. 식민지들을 다 합쳐도 이탈리아 정도의 크기로 줄어 들어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영향력이 적은 국가로 전락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패배 이후로 수백년 제국의 완전한 몰락을 직접 본 스페인 사람들은 패배감에 휩싸였으나 이러한 분위기를 덜어내고 다시 부흥하기 위한 노력들이 행해졌고 이들을 98세대라고 부른다. 1898년부터 행해졌던 개혁들을 이끈 세대를 뜻한다.

스페인 내전을 겪고 나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기나긴 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지식인들의 바람과 다르게 스페인은 산업 발전이 뒤쳐졌고 독재 국가라는 이유로 서유럽에서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이런 암흑의 근대 시기가 있었던 탓에 스페인 사람들은 막연하고 암울한 현실을 도피하고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오늘날의 스페인은 유흥으로 유명해지고 다소 밝고 시끄러운 듯한 느낌이 나게 되었다. 1960년~1970년대에는 아프리카 독립의 열망에 따라 남아 있던 적도 기니와 서사하라 등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영유권을 포기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보르본 왕조의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이 즉위해 왕정이 복고되었고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이 주도하는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민주화 개혁 정책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산업적 ·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고속 성장하기 시작했고 덕택에 이민 유출국이었던 스페인의 위상도 급변해 이민 유입국이 되어 동시대에 국가적인 위기를 겪던 중남미와 중동권 국가 등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국가가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인구 성장률이 크게 증가하던 시기도 있었다. 한편 2014년에는 스페인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잘못된 구설수로 인해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위를 양위했고 엉망진창이 된 왕실의 이미지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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