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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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09년 11월 15일 서울에서 신소설 《금수회의록》을 쓴 안국선(安國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수송보통학교를 마친 뒤 1924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여 김유정과 같은 반으로 각별히 친하였다.1926년때 부친의 사망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고 이듬해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는 『개벽(開闢)』지의 사원으로 입사 후, 약 10년간 창작 생활에 전념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발(髮)」이 3등으로 입선되어 작가 생활이 비롯되었는데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 주목되었다.그는 예술파의 작가로 평판되었고 당대 일본 문단의 신흥예술파를 적극적으로 소개(新東亞, 1932.11.)하기도 하였다. 전기에는 신변, 가정사를 제재로 한 심리 추구가 주조를 이룬 「연기(煙氣)」(1933)·「명상(瞑想)」(1937) 등을 발표했다. 후기에는 거의 개인적인 주변의 일을 다룬 작품으로, 「소년과 기생」(1937)·「온실(溫室)」(1939) 등이 거론된다. 1944년 9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북구주 탄광으로 강제 징용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하였다. 그해 9월 26일에 귀국한 뒤, 좌익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에서 활동하다가 조선문학가동맹의 소설부 위원장을 맡다가 월북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작품은 「폭풍(暴風)의 역사」(1947)와 「농민의 비애(悲哀)」(1948) 등으로 이를 통하여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였다. 1947년 월북 후, 별로 뚜렷한 작품 활동이 없었고 문단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본래 프로문학 작가가 아니었던 그로서는 북한의 문학 이념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채 문필 활동이 중단되었다. 그는 1953년 임화가 숙청될 때 가까운 사이라 하여 곤욕을 치렀으며, 1960년대 중반에 결국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활동

  • 평론
    • <문단시야비야론(文壇是耶非耶論): 신인이 본 기성문단(旣成文壇)>(제일선.1932.10), <1932년 가을의 감상(感想)>(매일신보.1932.10.7.~18), <일본문단 신흥예술파론고(新興藝術派論考)>(신동아.1932.12), <1932년 총결산: 흉작의 문단수확(文壇收穫)>(제일선.1932.12), <일본문예 신흥예술파(新興藝術派)의 대표적 이론>(신동아.1933.1), <미몽문단(迷夢文壇)의 회고전망(回顧展望): 문단 어디로 가나>(매일신보.1933.1.1.~7), <문예평론의 계급적 입장문제>(제일선.1933.3), <문예시평(文藝時評)>(조선일보.1933.5.23.~31), <채만식론(蔡萬植論): 그의 사람됨과 작품>(선일보.1933.6.28.), <9월 창작평>(조선일보.1933.9.26.~28), <기성문단(旣成文壇)을 타기(唾棄)함>(조선문학.1933.10), <문단과 문단인: 문예시평(文藝時評)>(매일신보.1933.11.25.~12.2), <문단모욕(文壇侮辱)과 과도기적 산물(産物)>(매일신보.1933.11.30.), <욕설과 욕설가(辱說家)의 정체(正體): 문예시평>(매일신보,1933.12.1.), <누가 탁수지어(濁水之魚)인가: 문예시평(文藝時評)>(매일신보.1933.12.2.), <조선문단 신흥예술가: 문예시평(文藝時評)>(매일신보.1933.12.3.~6), <순문학(純文學)의 재생(再生): 문예시평(文藝時評)>(매일신보.1933.12.7.~8), <문학론(文學論) 이전(以前): 약간의 시감(時感)>(중앙.1934.11), <저미부진(抵迷不振)하는 최근의 창작계>(조선중앙일보.1935.5.27.~6.1), <최근창작평(最近創作評)>(매일신보.1935.7.27.~8.2), <심리주의적(心理主義的) 리얼리즘과 소설가의 소설>(조선중앙일보.1935.7.10.), <수준이하의 작품: 엄흥섭(嚴興燮)씨의 작 ‘번견탈주기(番犬脫走記)’>(매일신보.1935.8.1.), <기타제작일별(其他諸作一瞥)>(매일신보.1935.8.2.), <사회적 관심과 작가의 자유: 문단일제(文壇一題)>(중앙.1936.2), <예술의 근본문제 검토>(중앙.1936.3), <조선문학의 세계적 수준문제>(조선중앙일보.1936.4.8.), <비평의 비평: 최근 창작평을 중심으로 하야>(조선중앙일보.1936.5.3.~8), <잃어버린 여주인공: 양귀비(楊貴妃) 분실>(신동아.1936.7), <현대소설의 성격: 최근 창작을 중심으로>(조선중앙일보36.8.13~21), <현역작가들의 기량: 그들의 개성과 영분(領分)에 관한 소고(小考)>(조선일보.1936.9.3.~10), <구시월창작평(九十月創作評)>(조선일보.1936.10.9.~21), <새로운 문학은 무엇을 목표할까>(풍림.1936.12), <본격소설론: 진실감(眞實感)과 통속성에 관한 제언>(조선일보.1937.2.16.~20), <유정애사(裕貞哀詞)>(조선일보.1937.4.2.), <현문단(現文壇)의 최고수준: 본보(本報) 당선작품 ‘남생이’ 독후감>(조선일보.1937.5.12.), <좀 더 직업적이기를>(동아일보.1937.6.23.), <탐정소설>(조선일보.1937.7.13.~16), <작가와 발표기관>(동아일보.1937.8.7.), <7⋅8월 창작평>(조선일보.1937.8.3.~7), <진정한 지식인의 면모: 개인적인 특수상(特殊相)에 대하여>(조선일보.1937.8.17.), <절망하던 시절의 추억>(조광.1937.10), <신춘창작평(新春創作評)>(조선일보.1938.1.14.~18), <박화성론(朴花城論)>(여성.1938.2), <작가 유정론(裕貞論): 그 일주기(一周忌)를 당하야>(조선일보.1938.3.29.~31) <미적 관념과 예술적 본능>(민성.1938.4), <단편소설의 세대적(世代的) 성격>(조선일보.1938.5.3.), <예술의 근본문제: 기원설(起源說)과 관련하야>(동아일보.1938.5.14.~19) <작가의 성격과 체취>(조선일보.1938.8.12.), <연애와 결혼과 문학: 작가적 최고감정(最高感情)의 문제>(조선일보.1938.9.20.~24), <지성문제(知性問題) 사견(私見)>(비판.1938.11), <12월의 창작평>(조선일보.1938.12.8.~16), <박태원(朴泰遠) 저 ‘구보(仇甫) 씨의 일일(一日)‘(북 레뷰)>(동아일보.1938.12.23.), <작가 박태원론(朴泰遠論)>(문장.1939.2), <3⋅4월 창작평>(조선일보.1939.4.6.~12) <병고(病苦)>(문장.1939.6) <여성과 문학>(문장.1939.10), <문예시평(文藝時評)>(조선일보.1939.11.17.~25), <객체(客體)의 작가, 주체의 작가: 11월 창작평>(인문평론.1939.12) <창작계 전망>(조광.1940.1), <나의 문학10년기(文學十年記): 자기응시(自己凝視) 십년>(문장.1940.2) <나의 어머님>(조광.1940.6) <6월의 창작: 슬럼프 일관>(조선일보.1940.6.22.), <문단교우록(文壇交友錄)>(조선일보.1940.8.5.), <통속소설의 이론적 검토>(문장.1940.11), <침체의 1년: 창작>(문장.1940.12) <창작계총관(創作界總觀)>(매일신보.1940.12.2.~7) <신춘창작평(新春創作評)>(매일신보.1941.1.16.~21) <2⋅3월 창작평>(매일신보.1941.3.15.~22) <소설의 제문제>(매일신보.1941.5.22.~24) <문단의 회고와 전망>(춘추.1942.1), <김소엽(金沼葉) 창작집(創作集), ‘갈매기’>(매일신보.1942.4.22.), <장편소설의 수준: 이기영(李箕永 작) ‘봄’을 읽고>( 매일신보.1942.9.12.) <문단에의 직언(直言): 각계의 직언(直言)>(춘추.1943.3), <금일문학(今日文學)의 향방: 학우(學友)에게 드리는 글>(매일신보.1943.4.6.~11), <작가들의 책임>(중앙신문.1945.11.28.), <역사소설에 대하야>(중앙신문.1945.12.5.), <문인의 기질문제(氣質問題)>(중앙신문.1945.12.27.), <고전문학의 재발견>(중앙신문.1945.12), <아동문학(兒童文學)과 현실>(아동문학.1945.12) <장편소설시대>(중앙신문.1945.12), <소설계의 회고와 전망: 해방후의 문화동향>(중앙신문.1945.12.27.~28), <창작방법론의 의의>(중앙신문.1946.4.7.), <신인(新人)의 작품세계>(서울신문.1946.6.30.), <문학의 대중화문제>(서울신문.1946.11.4.) <소설계(小說界)의 1년개관(一年槪觀)>(서울신문.1946.12.3.), <문학운동의 과거 1년: 1946년 회고>(百濟.1947.1), <문학운동의 과거 1년>(백제.1947.2,) <새로운 소설집 그 서문(序文)>(민보.1947.3.25.~26), <임화(林和)씨에게>(문학평론.1947.4), <문학⋅순수⋅비순수성>(백민.1947.6,) <미적(美的) 관념과 예술적 본능>(민성.1948.4), <조선어와 조선문학: 그것은 오로지 국민의 손에>(신민일보.1948.4.5.), <작가의식(作家意識)의 발전과 현실파악>(조선중앙일보.1948.6.23.~25)
    • <동무와 함께>(자유신문.1946.2.11.)
  • 수필
    • <메리필빈의 환영(幻影)>(제일선.1933.2), <보리밭과 촌부(村婦)>(동아일보.1938.2.24.), <자연(紫煙)과 독서(讀書)>(삼천리문학 2.1938.4), <무제(無題): 세모유감(歲暮有感)>(동아일보.1938.12.27.)
  • 콩트
    • <싸움닭(동아일보.1938.5.12.)
  • 소설
    • 발(髮)>(조선일보.1931.2.4.∼10), <인간궤도>(조선일보1931.3.13.~8.14) <차용증서(借用證書)>(비판.1931.11) <그들 부부(夫婦)>(혜성.1931.12) <애정(愛情)의 비애(悲哀)>(매일신보.1932.1.17.~21) <칠성(七星)의 버릇>(백악.1932.3) <처녀(處女)>(제일선.1932.8), <나와 옥녀(玉女)>(신여성.1933.1~2) <병(病)든 소녀(少女)>(신동아.1933.6) <연기(煙氣)>(조선문학.1933.10) <안해의 탄식(歎息)>(신가정.1933.11) <황금(黃金)과 장미(薔薇)>(중앙.1935.5) <상자(箱子)>(조선문단.1935.7) <악마(惡魔)>(신동아.1936.3) <고향(故鄕)>(조광.1936.3) <우울(憂鬱)>(중앙.1936.4) <향기(香氣)>(조선문학 속간.1936.6) <황혼>(신동아.1936.7) <장미(薔薇)>(조광.1936.8) <화원(花園)>(조선문학 속간.1936.10) <가을밤>(여성.1936.11) <명상(暝想)>(조광.1937.1) <소년과 기생(妓生)>(조선문학 속간.1937.1), <망량>(풍림.1937.2) <남풍(南風)>(여성.1937.5) <일허진 지평선>(조선일보.1937.6.18.~20) <사진(寫眞)과 양화(洋靴)>(여성.1938.1) <그날 밤에 생긴 일>(조광.1938.4) <에레나 나상(裸像)>(청색지.1938.6) <등잔(燈盞)>(사해공론.1938.10), <기차>(조광.1938.10) <수심(愁心)>(문장.1939.3) <온실>(여성.1939.5) <계절>(동아일보.1939.5.24.~6.14.전10회 연재) <기계(機械)>(조광.1939.6) <투계(鬪鷄)>(문장 임시증간.1939.7) <애인(愛人)>(여성.1939.7~40.3) <겸허(謙虛)-김유정전(金裕貞傳)>(문장.1939.10), <번민하는 쟌룩씨>(인문평론.1939.10) <탁류(濁流)를 헤치고>(인문평론.1940.4~5) <어둠 속에서>(문장.1940.7) <병원(病院)>(인문평론.1940.8) <소년>(조광.1940.10) <노인(老人)>(문장.1941.2) <형(兄)>(신시대.1941.3) <벼>(춘추.1941.10), <봄이 오면>(인문평론.1941.4) <흙의 향기>(半島の光.41.9) <동물집(動物集): 소⋅개⋅벌⋅닭⋅배암⋅돼지>(춘추.1941.3) <모자(帽子)>(춘추.1943.7) <늑대>(조광.1943.8) <흙의 개가(凱歌)>(매일신보.1943.11.19.~44.1.28) <오욕(汚辱)의 거리>(週報建設.1945.11~ ),<탄갱(炭坑)>(민성.1945.12) <철쇄(鐵鎖) 끊어지다>(개벽 73⋅74.1946.1⋅1946.4) <말>(대조.1946.1) <그 뒤 이야기>(생활문화.1946.1) <섬>(신천지 창간호.1946.1) <별>(혁명.1946.1) <쌀>(신세대 1.1946.3) <소>(조광.1946.3) <봄>(서울신문.1946.5.15.~16) <불>(문학 1.1946.7) <사선(死線)을 넘어서>(협동.1947.1∼6) <탄갱(炭坑)>(民聲.1947.2) <탄갱(炭坑)>(民聲.1947.3) <폭풍의 역사(歷史)>(인문평론 3.1947.4) <낙타(駱駝)>(신천지 17.1947.7) <농민의 비애>(문학.1948.4)

작품세계

안회남의 문학세계는 광복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광복 이전 그의 문학세계는 흔히 ‘부계(父系)의 문학’이라고 불리운다. 이 부계의 문학은 소설가였던 아버지 안국선의 영향과 그에 대한 흠모의 결과이다. 이 시기 그는 신변체험과 관련된 소설들을 많이 썼고, <명상>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광복 이후 작품 성향은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작품집 <불>에 수록된 단편들처럼 징용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고 다른 하나는 <폭풍의 역사>(1947) 및 <농민의 비애>와 같이 역사의 흐름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한 새로운 성향의 작품이다. 일제징용 경험 이후 작품경향이 현실지향으로 변화하였다.

RDF

RDF 표
주어 목적어 서술어
안회남 평론가 활동했다
안회남 소설가 활동했다
안회남 소년과 기생 집필했다
안회남 김유정 만났다
안회남 조선문학건설본부 활동했다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여자 및 작성자

21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