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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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단체(극단) 정보


현대극장

개요

1941년 3월 16일 국민연극의 이론 수립과 그 실천을 표방하고 조직된 극단이다. 현대극장 설립은 유치진함세덕이 주도하였다

상세소개

중일 전쟁 이후 전쟁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된 연극계의 대표적인 친일 단체이다.
1941년 3월 16일에 부민관에서 '국민연극' 이론 수립과 실천을 표방하며 조직되었다.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면서 국민연극연구소를 부설하여 교육 기능을 담당하도록 했다.

현대극장 설립은 유치진함세덕이 주도하였다. 당시 연극계는 신극 계열과 신파극 계열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현대극장에는 1930년대의 극예술연구회 회원을 중심으로 토월회 출신 등 주로 신극 계열의 연극인들이 참여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약 4년 동안 총 18회의 공연을 올렸다. 마지막 공연작인 《산비둘기》 공연 중에 전쟁이 종전되었다.

조직 목표

총독부 당국과 당대 연극계의 지도적 인물들이 담합하여 국민연극의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조직하였다. 국민연극의 수립을 위한 우수한 연극인의 육성과 그 정신의 함양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하여 부설 국민연극연구소를 설치 운용하여 광복까지 4년간 일제의 침략전쟁 완수와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추종하게 되었다.
창립공연으로 1941년 6월에 부민관에서 유치진의 친일극 「흑룡강」(주영섭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제2회 공연은 파뇰 원작의 「화니」를 함세덕이 각색한 「흑경정」(유치진 연출)이었는데 이는 대동아공영권 건설과 남양 진출이 주장되던 당시에 남양에 대한 동경과 꿈을 심어 주기 위한 목적극이었다.


극단 구성원

토월회, 극예술연구회, 동경학생예술좌, 상업극단 등에 관여하였던 사람들로 폭넓게 이루어졌다.
유치진(柳致眞)을 대표로 선양부 이헌구(李軒求), 무대부 주영섭(朱永涉), 연구부 함대훈(咸大勳), 단원으로는 강정애(姜貞愛)‧강홍식(姜弘植)‧김동혁(金東爀)‧김신재(金信哉)‧김양춘(金陽春)‧김영옥(金映玉)‧마완영(馬完英)‧서항석(徐恒錫)‧유계선(劉桂仙)‧이백수(李白水)‧이웅(李雄)‧이원경(李源庚)‧이해랑(李海浪)‧전옥(全玉)‧함세덕(咸世德)‧현지섭(玄芝涉) 등이 참여하였다.


뒷 배경

조선총독부 연극 담당 사무관이 창립에 직접 관여하였으며, 대표는 유치진이 맡았다. 유치진은 후에 "일제의 강요에 못 이겨 현대극장을 주재"하였다고 회고한 바 있으나, 국민연극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이 시기의 행적으로 미루어 신빙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

(주요)공연연보

연도 제n회 작품 제목 극작가 연출자
1941 제1회 공연작 흑룡강 유치진 주영섭
1941 제2회 공연작 흑경정 함세덕 유치진
1942 제3회 공연작 북진대 유치진 주영섭
1942 제1회 국민극 경연대회 출품작 대추나무 유치진 서항석
1943 제4회 공연작 에밀레종 함세덕 서항석
1943 제5회 공연작 봄밤에 온 사나이 이서향 유치진
1943 제6회 공연작 남풍 함세덕
1943 제7회 공연작 로나부인행장 기 김승구
1943 제8회 공연작 춘성부부
1943 제2회 국민극 경연대회 출품작 황해 함세덕 유치진
1943 제9회 공연작 어머니와 아들 함세덕 (번안)
1944 제10회 공연작 무장선 셔먼호 조천석 유치진
1944 제11회 공연작 청춘 함세덕 유치진
1944 제12회 공연작 낙화암 함세덕 안영일
1944 제13회 공연작 봉선화 함세덕 안영일
1944 제14회 공연작 뇌명 진우촌
1945 제15회 공연작 백야 함세덕
1945 제16회 공연작 청춘의 윤리 이광래(각색)
1945 제17회 공연작 애정무한 박재성 유치진
1945 제18회 공연작 산비둘기 박재성 유치진

관련 인물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현대극장 유치진 현대극장에서 유치진이 근무했다
현대극장 함세덕 현대극장에서 함세덕이 근무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위키백과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조효지
기여자:양지수
기여자:이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