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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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여성(新女性)’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을 가리키던 용어이다. 이 용어는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을 뜻하며 여성주의와 함께 사회적 담론으로 이루어진 용어이다.

기원

어원

뉴 우먼(New Woman)은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을 받아들인 여성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자전거 타기, 남성의 권위에 저항하는 새로운 패션,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소비주의의 영향에 따른 새로운 소비의 주체 등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흐름은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에서 "팜므 누벨"(Femme Nouvelle)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영미권의 ‘뉴 우먼’과 프랑스의 ‘팜므 누벨’의 형성과 동아시아의 ‘신여성’의 형성은 직접적 연관을 짓기 어렵다. 언제 누가 ‘신여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1910년대에 이미 쓰보우치 쇼요가 "새로운 여성"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먼저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신여성이란 개념은 여학교와 같은 근대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여성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신여성의 등장

1920년대 아시아에서 여학교에 다니는 것은 재력의 뒷받침이 가능한 집안 출신이라는 의미이다. 근대 교육 기관들은 여성들에게 전통적인 순종의 윤리를 강조하였지만 ‘신여성’들은 새로운 패션과 문화를 선도하며 선망을 받는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되면서 풍기가 문란하다는 등의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신여성이 등장한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은 일제강점기까지 전개되었던 여성교육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여성교육운동은 선교의 수단으로 여성 교육에 착안했던 기독교 선교사들과 국가의 자강을 위해 여성들의 역할에 주목했던 애국계몽운동가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한 여성 교육의 목표는 여성들이 전통적인 이성관(異性觀)의 한계를 파악하고 여성의 사회진출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초기 여성교육운동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일부 개화된 양반 관료층 부녀들이나 천민층 고아·기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등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여성 교육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호전되고 광범위한 계층의 여성들이 신교육을 받게 되었다. 당시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여성과 대립되는 ‘신여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받았던 신교육 경험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습득의 계기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서구 사상과 본격적으로 접함으로써 새로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역할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20년대는 신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신여성론’을 전개함으로써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시기였다. 당시에는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정책에 의해서 조장된 관념상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감싸고 있던 시기였다. 이 무렵 전통에 대한 부정의식이 사회일반에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신여성론이 개화되기 시작하였고 1920년을 전후하여 동경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활발히 사회활동을 전개하여 여류명사가 되었던 김원주, 김명순나혜석 등은 신여성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아시아의 신여성

선망의 대상으로서 이건 아니면 질시의 대상으로서 이건 신여성의 등장은 근대화 된 사회를 상징하였다. 근대 이전의 여성들은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없었으나 신여성들은 산책을 즐기며 새로운 자신만의 패션을 스스럼없이 보여주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보낸 한국의 경우 1920년대에 《신여성》이라는 여성 잡지가 발간되면서 신여성과 여성주의가 결합하여 많은 여성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러한 선구자인 신여성들의 애, 사회적 정치적 활동 등은 세간에 화제였다. 신여성의 흐름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 중국의 신여성
중국은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패션과 각종 가십이 주된 화제가 되었으나 이들의 사회적 활동과 정치적 발언도 주목받게 되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모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쑹 자매 역시 이러한 신여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의 유력한 쑹씨 가문의 세 명의 자매를 말한다. 그녀들의 남편들은 모두 20세기초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로 각각 "돈을 사랑한", "중국을 사랑한",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지칭된다.
  • 일본의 신여성
일본의 경우 1910년 쓰보우치(坪內逍遙)가 ‘새로운 여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뒤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여류문인 히라쓰카(平塚雷鳥)가 『청탑』이라는 잡지를 통하여 본격적인 ‘신여성론’을 전개하게 되었다.
  • 한국의 신여성
신여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고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문학가로 꼽히는 김명순은 남성 문학가들의 멸시를 받았지만 이겨내고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갔다. 주세죽 등은 사회주의 정치 활동에서 중요한 인물로 사회주의 여성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나혜석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급진적 여성주의를 주장하면서 많은 비난도 받았지만, 불행한 개인사가 연속되는 가운데 좌절하게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죽게되었다.

신여성에 해당하는 인물

관련 사항

RDF

주어 목적어 관계
신여성 주세죽 해당한다
신여성 김원주 해당한다
신여성 김명순 해당한다
신여성 나혜석 해당한다
신여성 쑹자매 해당한다
쑹자매 쑹아이링 일원이다
쑹자매 쑹창링 일원이다
쑹자매 쑹메이링 일원이다
신여성 잡지_신여성 동음이의어이다
문학가 김명순 직업이다
문학가 나혜석 직업이다
승려 김원주 직업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동음이의어_잡지 [신여성]

국적 한국
분야 여성
발행사 개벽사
발행주기 월간
발행년도 1923년

1923년 9월에 창간되어 국판, 100면 내외로, 초대 편집 겸 발행인은 박달성이었다. 제3호부터는 방정환이 맡았는데, 그가 죽은 뒤 1931년 7월호부터는 차상찬이 맡았다. 개벽사에서 발행하였으며, 이돈화, 김기전, 박달성, 주요섭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여성들을 위한 일반교양이나 계몽을 촉구하는 논문·시·소설·수필 등의 문학작품을 실었고, 아동문학에도 관심을 보여 동요나 동화를 싣기도 하였다. 개벽사의 정치적 노선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띤 논설도 많이 출간했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논문에 《여성의 계급적 지위》, 《약한 여성과 노동계급의 기원》 등과 소설에 최승일의 《새벽》, 주요섭의 《영원히 사는 사람》, 이태준의 《구원의 여상》 등이 있다. 1926년 10월 휴간했다가, 1931년 1월 속간하여 1934년 4월 4일 통권 38호를 끝으로 폐간했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

인문콘텐츠와 정보기술(2022) 수업의 일환으로 작성.

인정해조, 작성자 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