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鄭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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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겸재(謙齋) 정선은 조선후기의 화가이다.

생애

정선은 13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金昌集)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벼슬을 비롯하여, 1729년에 한성부주부, 1734년 청하현감을 지냈다. 또 자연·하양의 현감을 거쳐 1740년경에는 훈련도감낭청(訓練都監郎廳), 1740년 12월부터 1745년 1월까지는 양천의 현령을 지냈다.

그 뒤 약 10년 동안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754년에 사도시첨정(司imagefont寺僉正), 1755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그리고 1756년에는 화가로서는 파격적인 가선대부 지중추부사(嘉善大夫知中樞府事)라는 종2품에 제수되기까지 하였다.

활동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는 기록과 현재 남아 있는 금강산 그림 등을 통하여 젊었을 때 화가로서 활동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40세 이전의 확실한 경력을 입증할 만한 작품이나 생활 기록 자료는 없다. 그가 중인(中人)들이 일하고 있었던 도화서 화원(圖畫署畫員)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원래 사대부 출신으로 신분상의 중인은 아니며 몇 대에 걸쳐 과거를 통하여 출세하지 못한 한미한 양반이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그림 재주 때문에 관료로 추천을 받았으며 마침내 화단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밀려 들어오는 남종화법(南宗畫法)이나 오파(吳派)와 같은 새로운 산수화 기법를 접하게 되었다. 또 당시 유행하게 된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 사이에 참여하여 자신의 교양을 높이거나 창작하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이병연(李秉淵) 같은 시인과의 교우를 통하여 회화 세계에 대한 창의력을 넓히고 일상생활의 주제를 회화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자연을 다룬 그의 화제들은 당시 기행문의 소재였던 금강산, 관동지방의 명승 그리고 서울에서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접할 수 있는 명소들과 그가 실제 지방 수령으로 근무하던 여가에 묘사한 것들이다.

그밖에도 서울 장안의 사철의 경치들, 특히 인왕산 동북 일대의 계곡과 산등성이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곳의 명소나 특수한 고장들의 자연을 다루기도 하였다. 중국적 소재도 많이 다루고 있으며, 성리학자들의 고사도 제작에서 그의 관심거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작품 세계관

회화 기법상 전통적인 수묵화법(水墨畫法)이나 채색화(彩色畫)의 맥을 이어받기도 하지만, 정선은 자신만의 필묵법(筆墨法)을 개발하였다. 이것은 자연미의 특성을 깊이 관찰한 결과이다.

남긴 작품들

겸재 정선은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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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