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創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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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창조(創造)는 1919년 일본 동경에서 김동인·주요한·전영택 등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 동인 잡지. 문예잡지. 1919년 2월 도쿄에서 창간되어 2호까지 나왔고, 3·1 운동 후 국내에서 속간, 9호까지 계속되었다. 이 동인지를 통하여 시 70여 편, 소설 19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 발표되었다.

내용

창간 동인은 김동인(金東仁), 주요한(朱耀翰), 전영택(田榮澤), 김환(金煥), 최승만(崔承萬) 등 5인이다. 종간까지는 창간 동인 이외 이광수(李光洙), 이일(李一), 박석윤(朴錫胤), 김명순(金明淳), 오천석(吳天錫), 김관호(金觀鎬),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임장화(林長和) 등 13인이다. 편집·인쇄 및 발행은 창간호부터 제7호까지는 동경(東京)에서, 제8호는 편집은 평양, 인쇄·발행은 서울, 제9호는 모두 서울에서 하였다. 중요 수록 작품으로는 소설 분야에서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제2호), 마음이 옅은 자여(제3호), 배따라기(제9호), 전영택의 천치(天痴)냐 천재(天才)냐 등 단편소설과 주요한의 불놀이(창간호), 별 밑에 혼자서(제9호) 등이다.

의의

창조파의 문학적 성격을 대표하는 김동인은 이광수의 문학이 사회 개량을 위한 설교문학·계몽문학이라 보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인생문제 제시’의 문학, 즉 리얼리즘에 입각한 순문학(純文學)을 제창했다. 창조의 동인 중 주로 소설을 쓴 김동인과 전영택의 작품 경향을 보면,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배따라기 등과 전영택의 천치(天痴)냐 천재(天才)냐 등은 모두 근대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단편들이다. 또 주요한은 그 창간호에 불놀이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이 시는 우리 신시운동에 있어 획기적인 현대적 자유시로 그 작풍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창조 동인들은 문학을 그 때까지의 계몽사상의 고취에서 지양하여, 예술성 위주의 본격 문학으로 다루게 되었고, 우리 문학계에 리얼리즘이란 순문예 사조가 도입되었다. 창조는 뒤이어 나오는 『폐허(廢墟)』,『백조(白潮)』 등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주춧돌과 같은 구실을 담당하였다. 특히, 신문학(新文學)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앞에 놓고 방황과 모색을 계속하던 당시의 문단에 불놀이, 약한 자의 슬픔같은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는 이광수, 최남선의 계몽적 목적문학을 반대하고 문학을 ‘도학선생(道學先生)의 대언(代言)’이나 ‘할일업슨 자(者)의 소일(消日) 거리로 보는 데 불복한다고 선언하면서 출발하였다. 또한, 그 핵심 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인에 의하여 근대적 소설 문체의 확립이 이루어졌고, 주요한에 의하여 자유시의 형태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점도 아울러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 동인들은 근대문학의 구체성을 파악, 이광수의 언문일치의 문장에서 일보 전진하여 신문장을 위한 혁신운동을 일으켜 국어체 문장을 확립했다. 예컨대 이광수 소설까지 우리 말에 존재치 않던 동사의 과거·현재·미래의 시제(時制)를 완전히 구분했고, 대명사를 만들고, 방언을 사용하는 등 작품 창작에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혁신을 시도했다. 따라서 창조 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순문학은 첫째 구어체(口語體)의 확립, 둘째 계몽문학의 배척, 사실주의에 입각한 순문학운동으로 재출발하니 이는 문예사조로도 큰 전환이며, 창작수법에서도 일대 진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RDF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창조(創造)』 김동인 A는 B에 의해 창간되다
『창조(創造)』 사실주의 A는 B의 영향을 받다
『창조(創造)』 구어체 A는 B를 확립하다
『창조(創造)』 계몽문학 A는 B를 배척하다
『창조(創造)』 약한 자의 슬픔 A에 B가 수록되다
『창조(創造)』 근대문학 A가 B를 이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