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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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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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김유정.jpg|3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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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김유정.png|2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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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이름''' || 김유정(金裕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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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가명''' || 김나이(金羅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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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생''' || 1908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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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한자''' || 金裕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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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사망''' || 1937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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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생''' || 190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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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직업''' || 소설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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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사망''' || 1937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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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본관''' || 청풍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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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학력''' || 재동공립보통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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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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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문과 /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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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직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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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생지''' || [[강원도]]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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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활동분''' || 소설,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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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관련단체''' || [[구인회]], [[금병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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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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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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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아버지 김춘식과 청송 심씨 성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 2남 6녀 중 차남(일곱째)으로 태어났다. 출생은 강원도 [[춘천]]이지만 유아기 시절 서울 종로로 이사하게 된다.  
김유정(金裕貞,1908년 1월 11~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은  한국의 소설가이다. 1933년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로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1934년 공백으로 지내고, 1935년 <[[소낙비]]>로 신춘문예에 등단하게 된다. 곧 이어 금 3부작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을 단숨에 쏟아낸 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단편소설 30여 편, 미완성 장편소설 2편과 20여 편 남짓의 수필과 편지를 남겼다. 김유정의 완성된 소설은 모두 단편이며 대표작은 <[[봄봄]]>(1935), <[[동백꽃]]>(1936)이 있다.
 
  
==생애==
+
서울 종로로 이사 후 그의 나이 일곱살에 어머니를,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어릴 적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부재가 컸는지 김유정은 모성 결핍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해 한때 말더듬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연보
+
이러한 시절로 인해 그는 언어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1908: 음력 01월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
[[김유정]]의 아버지인 김춘식의 죽음 이후 그의 형은 난봉꾼과 효자가 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런 형을 보며 김유정은 형에 대한 미움과 원망, 애처로운 감정 등 양가감정을 느꼈다.
  
1915: 03월 어머니 사망
+
형 뿐만이 아니라, 그의 누이도 [[김유정]]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김유정]]의 누이는 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가 하면, 또 다른 날은 주눅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 누이에게도 형과 동일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1917: 05월 아버지 사망
+
이후 서울에 위치한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하게 된다.
  
1920: 재동공립보통학교 입학
+
1930년 4월 6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 [[박녹주]](5살 연상)의 공연을 우연히 본 후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1923: [[휘문고등보통학교]]에 검정으로 입학
+
앞서 언급했던 모성 결핍으로 인해 그는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박녹주]]와 같은 이성 혹은 연인에게 집착했다. 애정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협박이나 혈서로 나타낼 정도로 말이다.
  
1929: 03월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
결국 열렬한 구애 끝에도 [[박녹주]]와의 사랑에 실패했다. 박녹주에 이어 그가 사랑한 두 번째 여자는 박봉자이다. 박봉자가 실린 잡지를 보던 중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나도 닮은 그녀의 기사 사진만 보고 [[김유정]]은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1930: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
그러나 이미 그녀는 기사가 실린 해 결혼을 하였고, 그는 두 번째 사랑도 홀로 끝을 내어야 했다.
  
1931 : 연희전문학교 중퇴
+
반복된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한 김유정은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야학당인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등 다양한 활동을 약 2년간 진행하며 19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느끼게 된다.
      : 04월20일,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다시 입학. 이후 자퇴
 
      : [[실레마을]]에 야학당을 열었음
 
  
1932 : [[브나로드운동]]에 참여
+
이는 그의 작품 속 현실적인 시골의 모습과 [[향토]]적인 분위기, 희화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좋은 양분이 되었다.
      : 야학당을 [[금병의숙]]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받음
 
  
1933 : 03월 《제일선(第一線)》에 <산골 나그네> 발표. 처음으로 작품을 발표
+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지게 된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 뒤,
      : 09월 《신여성(新女性)》에 <총각과 맹꽁이> 발표.
 
  
1935 : 01월 《조선일보(朝鮮日報)》 신춘문예에 <소낙비> 1등 당선
+
1935년 그의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新春文藝)]]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다른 글인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김유정]]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이 시작되었다.
      : 03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노다지> 가작 입선
 
      : 03월 《개벽(開闢)》에 〈금(金)따는 콩밭〉 발표
 
      : 03월 《영화시대(映畵時代)》에 <금> 발표
 
      : 06월 《중앙(中央)》에 <떡> 발표
 
      : 07월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산골> 발표
 
      : 07월 《조선일보(朝鮮日報)》에 <만무방> 발표
 
      : 09월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솥〉 발표
 
      : 10월 《신아동(新兒童)》에 개작 <홍길동전> 발표
 
      : 12월 《조광(朝光)》에 〈봄·봄〉 발표
 
      : 12월 《사해공론(四海公論)》에 〈안해〉 발표
 
      :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참여
 
  
1936 : 01월 《중앙(中央)》에 첫 번째로 썼던 단편 <심청> 발표
+
추가적으로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의 친한 친구가 된 [[이상李箱]]을 만나게 되었다.
      : 01월 《신인문학(新人文學)》에 <봄과 따라지> 발표
 
      : 01월 《사해공론(四海公論)》에 <가을> 발표
 
      : 03월 《시(詩)와 소설(小說)》에 <두꺼비> 발표
 
      : 04월 《여성(女性)》에 <봄밤> 발표
 
      : 04월 《중앙(中央)》에 〈이런 음악회(音樂會)〉 발표
 
      : 05월 《조광(朝光)》에 〈동백꽃〉 발표
 
      : 07월 《조광(朝光)》에 〈야앵(夜櫻)〉 발표
 
      : 07월 《女性》에 <옥토끼> 발표
 
      : 08월 《중앙(中央)》에 〈생(生)의 반려(伴侶)〉 총 2회로 연재 중단.
 
      : 10월 《조광(朝光)》에 〈정조(貞操)〉 발표
 
      : 12월 《여성(女性)》에 <슬픈이야기> 발표
 
  
1937 : 02월 병이 깊어져 경기도 광주군 매형 유세준의 집에서 요양 치료 시작
+
그는 입봉 이후 바로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을 앓게 되었고 지병들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 02월 《조광(朝光)》에 〈따라지〉 발표
 
      : 02월 《여성(女性)》에 <땡볕> 발표
 
      : 03월 《창공(蒼空)》에 <연기> 발표
 
      : 03월 29일 오전 6시 30분 유세준의 집에서 사망
 
      : 05월 《조광(朝光)》에 <정분> 발표
 
  
1938 : 단편집 <동백꽃>이 발간됨
+
그는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이 운영한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휘문고등보통학교]] 동창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 18)를 끝으로 3월 29일 새벽 달빛 속에 하얗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삶을 마감한다.
  
1939 : 01월 《소년(少年)》에 <두포전> 발표
+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 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까지도 그 재미,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
      : 11월 《광업조선(鑛業朝鮮)》에 〈형(兄)〉 발표
 
      : 12월 《문장(文章)》에 <애기> 발표
 
  
*출생지
+
이는 [[김유정]]이야말로 소설의 언어에서나 내용은 물론 진술 방식에서 우리 문학사에 다시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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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실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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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및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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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tX78m5VgL7k</youtube>
<onlyinclu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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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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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witdth:20%"| 연도 || style = "width:80%"|내용
 +
|-
 +
|+ 표1-1. 김유정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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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년 ||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金春植) 모친 청송(靑松)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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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작품 목록'''
+
|1917년 || 1919년 봄까지 3년 동안 한문 공부와 붓글씨를 익힘. [[김유정]]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 고전지식은 이때 익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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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 [[재동공립보통학교]](齋洞公立普通學校)에 입학
#작품 정렬은 발표일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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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된 색은 김유정의 대표작인 동백꽃에 등장하는 노란 동백꽃에서 모티프를 얻어 Yellow/ Cocoa, 봄봄에서 LightPink, 소낙비에서 LightBlue를 선정
+
|1923년 ||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를 검정(檢定)으로 입학
#각각 Yellow - 소설, Cocoa - 번역소설, LightPink - 수필, LightBlue - 편지 <br/>
+
|-
 
+
|1928년 || 인간문화재 [[박녹주]](朴綠珠) 공연을 처음 관람후 사랑에 빠짐
 
+
|-
 
+
|1930년 ||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交) 문과에 입학, 제명처분 당함. 고향 상경.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씀.
* 1933년
+
|-
<gallery>
+
|1931년 ||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법과에 다시 입학 후 자퇴함. 야학당(夜學堂) 설립.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산골 나그네]]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09월 [[총각과 맹꽁이]]
+
|1932년 || 야학당을 [[금병의숙]](錦屛義塾)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받음.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
</gallery>
+
|-
 
+
|1933년 || 서울 상경. 폐결핵 발병진단. <[[산골 나그네]]> 탈고,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1선지 3월호에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신여성 9월호에 발표.
* 1935년
+
|-
<gallery>
+
|1934년 || 누님 사직동 집 처분. 8월 16일 <정분> 탈고. 9월 10일 <[[만무방]]> 탈고. 12월 10일<애기> 탈고. <[[노다지]]><[[소낙비]]>를 12월에 탈고,
파일:Yellow 소설.PNG|200px|01월 [[소낙비]]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
+
|1935년 ||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작 입선.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금따는 콩밭]]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노다지]]
+
|1936년 || 단편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 <옥토끼> 발표됨.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9월호에 연재됨.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3월 [[닙히 푸르러 가시든 님이]]
+
수필<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 <행복을 등진 정열>은 여성지 10월호에,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은 조광지 11월호에 발표.
파일:Yellow 소설.PNG|200px|06월 [[떡]]
+
단편소설 <정조>는 조광지 10월호에, <슬픈이야기>는 여성지 12월호에 발표. 박봉자 만남.
파일:Yellow 소설.PNG|200px|07월 [[산골]]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07월 [[만무방]]
+
|1937년 || 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씀>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 2월 매형 유세준의 집에 옮겨와 요양 치료함. 소설 <따라지>, <땡볕>, <연기> 발표. 서간문<병상의 생각> 발표. 3월 18일 <필승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냄. 3월 29일 오전 6시 30분 사망함.
파일:Yellow 소설.PNG|200px|09월 [[]]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10월 [[홍길동전]]
+
|1938년 || 단편집 [[동백꽃]](三文社) 발간됨.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10월 [[조선의 집시]]
+
|-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10월 [[나와 귀뚜람이]]
+
|1939년 ||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 소년1∼5월호, <형>광업조선 11월호, <애기>문장12월호 발표.
파일:Yellow 소설.PNG|200px|12월 [[봄봄]]
+
|}
파일:Yellow 소설.PNG|200px|12월 [[아내]]
 
</gallery>
 
 
 
* 1936년
 
<gallery>
 
파일:Yellow 소설.PNG|200px|01월 [[심청]]
 
파일:Yellow 소설.PNG|200px|01월 [[봄과 따라지]]
 
파일:Yellow 소설.PNG|200px|01월 [[가을]]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두꺼비]]
 
파일:Yellow 소설.PNG|200px|04월 [[봄밤]]
 
파일:Yellow 소설.PNG|200px|04월 [[이런 음악회]]
 
파일:Yellow 소설.PNG|200px|05월 [[동백꽃]]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5월 [[오월의 산골작이]]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5월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5월 [[전차가 희극을 낳어]]
 
파일:Yellow 소설.PNG|200px|07월 [[야앵]]
 
파일:Yellow 소설.PNG|200px|07월 [[옥토끼]]
 
파일:Yellow 소설.PNG|200px|08월 [[생의 반려]]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8월 [[길]]
 
파일:Yellow 소설.PNG|200px|10월 [[정조]]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10월 [[신복을 등진 정열]]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11월 [[밤이 조금만 짤럿드면]]
 
파일:Yellow 소설.PNG|200px|12월 [[슬픈이야기]]
 
</gallery>
 
  
* 1937년
+
=='''작품이력'''==
<gallery>
+
*소설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1월 [[강원도 여성]]
+
**산골 나그네(1933.3), 총각과 맹꽁이(1933.9), [[소낙비(1935.1.29.~2.4)]], 금따는 콩밭(1935.3), [[노다지(1935.3.2.~9)]], 금(1935.3), [[떡(1935.6)]], 산골(1935.7), [[만무방(1935.7.19.~30)]], 솥(1935.9.3.~14), 홍길동전(1935.10), [[봄.봄(1935.12)]], 아내(1935.12), 심청(1936.1), 봄과 따라지(1936.1), 가을(1936.1), 두꺼비(1936.3), 봄밤(1936.4), 이런음악회(1936.4), [[동백꽃(1936.5)]],야앵(1936.7), 옥토끼(1936.7), 생의 반려(1936.8~9), 정조(1936.10), 슬픈이야기(1936.12), 따라지(1937.2), 땡볕(1937.2), 연기(1937.3), 정분(1937.5), 두포전(1939.1~5), 형(1939.11), 애기(1939.12)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1월 [[병상영춘기]]
+
*수필
파일:Lightblue 편지.PNG|200px|01월 [[문단에 올리는 말슴]]
+
**닙히푸르러 가시든님이(1935.3.6.), 조선(朝鮮)의 집시(1935.10.22.~29), 나와 귀뚜람이(1935.11), 오월(五月)의 산골작이(1936.5),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1936.5), 전차(電車)가 희극(喜劇)을 낳어(1936.6), 길(1936.8), 행복(幸福)을 등진 정열(情熱)(1936.10), 밤이 조금만 잘럿드면(1936.11), 강원도(江原道) 여성(1937.1),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1937.1.29.~2.2), 네가 봄이런가(1937.4)
파일:Yellow 소설.PNG|200px|02월 [[따라지]]
+
*설문응답
파일:Yellow 소설.PNG|200px|02월 [[땡볕]]
+
**우리의 정조(情調)(1936.12)
파일:Yellow 소설.PNG|200px|03월 [[연기]]
+
*서간
파일:Lightblue 편지.PNG|200px|03월 [[병상의 생각]]
+
**문단(文壇)에 올리는 말슴(1937.1), 병상(病床)의 생각(1937.3), 강노향전(姜鷺鄕前)(1937.5), 박태원전(朴泰遠前)(1937.5), 필승전(前)(1963.1)
파일:Lightcocoa 번역소설.PNG|200px|04월 [[귀여운 소녀]]
+
*번역동화
파일:Lightpink 수필.PNG|200px|04월 [[네가 봄이런가]]
+
**귀여운 소녀(少女)(1937.4.16.~21)
파일:Yellow 소설.PNG|200px|05월 [[정분]]
+
*번역소설
파일:Lightblue 편지.PNG|200px|05월 [[강목향전]]
+
**잃어버린 보석(寶石)(1937.6~11)
파일:Lightblue 편지.PNG|200px|05월 [[박태원전]]
 
파일:Lightcocoa 번역소설.PNG|200px|06월 [[잃어진 보석]]
 
</gallery>
 
  
* 1939년
+
=='''작품세계'''==
<gallery>
 
파일:Yellow 소설.PNG|200px|01월 [[두포전]]
 
파일:Yellow 소설.PNG|200px|11월 [[형]]
 
파일:Yellow 소설.PNG|200px|12월 [[애기]]
 
</gallery>
 
  
* 1943년
+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생활 양식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진지성보다는 연민을 수반한 웃음을 통해 희화적이고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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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ightblue 편지.PNG|200px|01월 [[필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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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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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만무방(1935.7.19.~30)]] 에서는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착취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김유정은 크게 도시 소설과 농촌 소설을 집필했다. 1935년과 1936년 두 해에 걸친 작품 중 첫해는 주로 농촌의 삶을 담은 소설을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도시를 무대로 했다. 김유정은 30년대 초부터 죽을 때까지 병증이 매우 심했고 경제적 곤궁과 가족 간의 갈등을 지고 있었으므로 울적한 집필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없는 우울을 낳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그가 작품을 쓰던 당시는 1930년대로 일제 식민 통치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였다. 일제의 수탈로 피폐해진 농촌,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흘러들어 빈민으로 가득 차버린 서울. 일제의 억압과 검열은 점점 더 강화되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김유정이 해학적인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세계는 식민지 하에서의 왜곡된 근대화로 인해 전통적인 공동체적 공간이 와해되고 해체된 ‘병든 세계’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빈궁한 삶으로 내몰리면서 자신들이 거주하던 삶의 장소를 상실한 존재들이지만, 이들이 실제로 머루고 있는 곳은 여전히 그들이 정주민으로서 살아가던 시골 농촌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장소를 상실한 이들이 환상적인 희망을 품고 떠나도 가난한 삶을 탈출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김유정의 문학적 세계는 일제의 식민 정치와 근대 자본주의 경제라는 이중의 억압을 감당하고 있는 비극적인 세계이다.
+
형인 응칠과 아우인 응오는 서로 성격의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취득ᆞ분배 양식에 내재하는 모순에 대립하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의 작품에는 판소리나 탈춤에서 볼 수 있는 우리민족 전통의 해학적인 ‘웃음’과 이를 바라보는 근대적인 시각의 ‘슬픔’이 녹아져있다. 작품 대부분이 순진하고 바보 같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들은 일말의 의심 없어 남에게 쉬이 속는다. 이때 환상을 진심으로 믿는 작품 속 바보의 시점과 그것이 거짓된 환상일 뿐이라는 실제현실의 시점이 한 작품 안에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독자는 통쾌한 웃음이 아닌 서글픈 웃음을 짓게 된다. 이러한 점은 김유정 문학에서의 웃음의 특징이자 근대성을 보여준다.
+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계급 투쟁적 해결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결말에 이르러 ‘내 걸 훔쳐야 할 운명’의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피폐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관련연구==
+
전반적인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해학적이다. 김유정 소설의 주요 대상은 농촌 현실과 거기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이다. 「동백꽃」, 「봄ᆞ봄」, 「산골」 같은 작품에서는 경쾌한 해학성이 전면에 두드러진다.
  
*한계: 2000년 이후의 논문만 정리함
+
즉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순박하고 어리석은 농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원리에 대한 애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
한편 「소낙비」, [[만무방(1935.7.19.~30)]] ,「총각과 맹꽁이」 같은 작품에서는 농촌 생활을 소재로 사회적 모순을 그려낸다. 즉 농촌 사회의 현실 파악이라는 시각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
  
김중신.(2014).김유정 소설에 나타난 해학의 구현 양상.畿甸語文學,16(),83-112.
+
이들 작품에도 김유정 문학의 특징인 해학성이 드러나고는 있으나 해학 충동의 경쾌함을 지닌 계열의 소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임정연.(2014).김유정 자기서사의 말하기 방식과 슬픔의 윤리.현대소설연구,(56),469-497.
+
김유정은 강원도 지방의 토속어를 바탕으로 뛰어난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의 암울한 현실을 정치하게 묘사했다. 그의 소설 속에 보이는 ‘질펀한’ 웃음 밑에는 땅에 붙박혀 살아가는 농민들의 울음이 깔려 있다.  
  
 +
특별한 문학적 장치나 의도적인 서사도 없이 이리 저리 쫓기는 농민들의 실상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예리.(2016).김유정 문학의 웃음과 사랑.한국예술연구,(14),211-231.
+
따라서 이 속에서 보이는 김유정의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웃음으로 치부될 수만은 없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따라지’ 인생이었던 농민에게 그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은 결국 풍자와 해학 뿐이다.  
  
차희정.(2016).김유정 소설에 나타난 한탕주의 욕망의 실제.현대소설연구,(64),365-398.
+
이는 조선시대 탈춤의 대사가 신분 제도를 풍자했던 것처럼 현실 부정의 웃음에 해당한다. 김유정에 있어서 민중이란 가난하고 바보스러운 농민이거나 뻔뻔하고 영악스러운 도시 빈민이다.  
  
 +
그들은 맹꽁이, 따라지, 머슴, 이농민, 유랑농민, 만무방, 들병이, 혹은 품팔이, 실업자, 걸인, 술집 여급 등이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착하고 성실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강헌국.(2017).김유정, 돈을 위해.비평문학,(64),29-51.
+
그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진지한 현실 인식을 가진 작가라면 허황하게 미화시키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그의 민중 의식은 민중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김윤정.(2017).김유정 소설의 정동 연구.현대문학이론연구,71(),101-126.
+
그는 민중을 과대평가하거나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 온갖 약점을 그대로 시인하고 숨김없이 노출시킨다.  
  
송주현.(2017).김유정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의미 연구.한민족어문학,77(),243-265.
+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으로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깊은 공감을 갖고 그들 자신의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미림.(2017).김유정, 이효석 소설의 음식과 성 비교 고찰.한중인문학연구,55(),107-131.
+
김유정이 자기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의 궁핍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판 정신이 그의 특이한 민중 의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연희.(2017).김유정의 자기서사에 나타나는 우울과 알레고리 연구.국어문학,65(),75-98.
+
=='''2차창작물 목록'''==
  
정연희.(2017).김유정 소설의 멜랑콜리 미학과 총체성의 저항.우리문학연구,56(),535-564.
+
===영화===
 +
1. 소낙비(영화), 개봉: 1958
  
 +
2. 봄봄(영화), 개봉:1969
 +
 +
3. 산골 나그네(영화), 개봉: 1978.11.17.
  
김난영.(2018).김유정 소설의 골계미와 비장미 연구.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
4. 땡볕(영화), 개봉: 1985.08.01.
  
송재익.(2018).김유정 소설의 이면 읽기와 소설교육.한국어문교육,26().
+
5. (영화), 개봉: 1988.09.01
  
이  경.(2018).김유정 소설에 나타난 친밀성의 거래와 여성주체.여성학연구,28(2),215-244.
+
6. 소낙비(영화), 개봉: 1995.10.14.
  
천춘화.(2018).김유정 소설의 폭력의 기억과 서사적 재현. 인문논총,75권(1호).
+
7.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영화) , 개봉: 2014.08.21
  
 +
8. 봄봄(영화), 개봉: 2014
  
==관련콘텐츠==
+
===단편드라마===
1. 한국문학 대표작가 김유정 소개
+
1. 산골나그네(드라마), 방송일: 1982.04.17.
*게시자: skytree4u
 
*게시일: 2018. 10. 11.
 
<youtube> =yibcHsJCdZ8 </youtube>
 
  
2[애니메이션] 김유정의 동백꽃-지학사, 중학교 국어 3
+
2. 봄봄(드라마), 방송일: 2008
*게시자: gunjuno
 
*게시일: 2014. 3. 14.
 
<youtube> =iLgHkIU-p9Y </youtube>
 
  
==관련장소 및 기념사업==
+
=='''김유정 기념물'''==
 +
*'''[[김유정 동상]]'''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비]]'''
  
*[[김유정문학촌]]
+
*'''[[김유정 기적비]]'''
[[김유정문학촌]]은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인 [[실레마을]]에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어 1930년대 문학의 꽃을 피웠던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기념하고 있다. 김유정 사후 57주기를 기념해 세운 동상과 문학 전시관, 외양간, 디딜방아간, 휴게정, 연못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김유정추모제를 비롯한 각종 문학축제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작품 속의 모티브를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김유정 생가터에는 소설 속 인물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어 주인공이 되어 닭싸움도 시키고 점순이가 되어 키재기를 해 볼 수도 있다.
 
  
*[[김유정문학상]]
+
*'''[[김유정 문인비]]'''
김유정문학상은 작가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높이 기리기 위하여 제정하였으며, 현재 한국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우수작품을 선정 시상한다. 향토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주)한강수력본부가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2007년에 시작되었고 현재 12회(2018) 개최되었다.
 
  
*[[김유정신인문학상]]
+
*'''[[김유정 행장비]]'''
김유정의 문학혼을 기리기 위하여 강원도민일보사와 (사)김유정기념사업회는 매년 김유정 소설문학상 공모를 통하여 역량 있는 신예작가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김유정 소설문학상’을 ‘김유정 신인문학상’으로 확대, 개편하고, 기존의 소설에 국한돼 있던 공모부문을 시와 동화로 확대해 작품을 공모한다. 
 
  
*[[실레마을]]
+
*'''[[금병의숙 터]]'''
[[실레마을]]은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의 소설 12편의 배경으로 알려져있다.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역명 변경, 김유정문학촌 설립, 실레 이야기기길 등 여러 일을 추진하고 있다.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실레 이야기길]]로 만들어 작품 속 장소를 만나볼 수 있다. 총 열여섯 마당으로 [[실레 이야기길]]은 1시간에서 1시간 반까지의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금병산에는 김유정의 작품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등산로가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작가의 작품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안내 역할을 하고 있다.
 
  
*[[김유정 문인비]]
+
*'''[[춘천문학공원 김유정 문학비]]'''
1968년 5월 29일 김유정 문인비 건립 추친위원회가 춘천시 칠송동의 의암 옷바위 옆에 김유정 문인비를 건립했다. 김유정문인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김유정기념사업회로 개편한 것이다. 문인비는 당시 강원대 이운식 교수가 도안했고 춘천출신 대표 동양화가인 장운상씨가 제호를 맡았다.
 
  
'''김유정 문인비 위치'''
+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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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문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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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동상]]
+
[http://www.kimyoujeong.org/ 김유정문학촌]
1994년 문화체육부가‘3월의 문화인물’로 김유정 선생을 선정한 것을 기념해 김유정기념사업회가 같은 해 10월에 동상을 건립했다. 춘천문화예술회관에 있다가 [[김유정문학촌]]이 개관하면서 문학촌 내로 이전했다.
 
  
[[파일:김유정동상.jpg|400px]]
+
[[파일:김유정 기념사업회.jpg]]
  
==관련항목==
+
[[김유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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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그래프 및 R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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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1-1. RDF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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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 [[떡(소설)]] || A는 B를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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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 [[홍길동전]] || A는 B를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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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휘문고등보통학교 || 재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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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 [[따라지]] || A는 B를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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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유정rdf.PNG]]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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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type="button" value="새로고침" onclick="relo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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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900" height="600" src="https://hwiki.eumstory.co.kr/work/A/notF/예제2.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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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https://www.naver.com/ 네이버포털] 검색 <br/>
+
=='''참고문헌'''==
-김영기. (1992). 『金裕貞 : 그 문학과 생애』. 知文社. <br/>
+
김종회. (2016). 김유정 소설의 문화산업적 활용 방안 고찰. 비평문학, (62), 59-76.
-김유정. (2012). 『원본 김유정 전집』. 강. <br/>
 
-김유정전집편찬위원회. (1968). 『김유정전집』. 현대문학사. <br/>
 
-김유정학회. (2017). 『김유정의 문학산맥』. 소명출판. <br/>
 
-이재선. (1972). 『한국단편소설연구』. 일조각. <br/>
 
  
 +
최주영 김주영 소설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 서울 p.28
  
==작성자 및 기여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유정
  
*작성자 :[[우민혁]]
+
김유정의 문학산맥
*기여자 :[[박효정]] [[김민주]] [[윤치훈]]
 
  
[[분류:인문정보콘텐츠]][[분류:인문정보콘텐츠(2019)]] [[분류:인물]][[분류:1908년 출생]][[분류:1937년 사망]][[분류:1930년대 작가]][[분류:일제강점기 작가]][[분류:한국근대작가]][[분류:한국근대소설가]][[분류:구인회]][[분류:봄봄]][[분류:동백꽃]] [[분류:우민혁]] [[분류:박효정]] [[분류:김민주]] [[분류:윤치훈]] [[분류:정근형]] [[분류: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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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9년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한국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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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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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08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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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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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구인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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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휘문고교보통학교 졸업]]
 +
[[분류:1937년 사망]]
 +
[[분류: 1994년 3월 이달의 문화인물(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6월 15일 (수) 10:07 기준 최신판

생애

김유정. 그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아버지 김춘식과 청송 심씨 성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 2남 6녀 중 차남(일곱째)으로 태어났다. 출생은 강원도 춘천이지만 유아기 시절 서울 종로로 이사하게 된다.

서울 종로로 이사 후 그의 나이 일곱살에 어머니를,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어릴 적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부재가 컸는지 김유정은 모성 결핍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해 한때 말더듬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시절로 인해 그는 언어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김유정의 아버지인 김춘식의 죽음 이후 그의 형은 난봉꾼과 효자가 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런 형을 보며 김유정은 형에 대한 미움과 원망, 애처로운 감정 등 양가감정을 느꼈다.

형 뿐만이 아니라, 그의 누이도 김유정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김유정의 누이는 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가 하면, 또 다른 날은 주눅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 누이에게도 형과 동일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후 서울에 위치한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하게 된다.

1930년 4월 6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 박녹주(5살 연상)의 공연을 우연히 본 후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앞서 언급했던 모성 결핍으로 인해 그는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박녹주와 같은 이성 혹은 연인에게 집착했다. 애정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협박이나 혈서로 나타낼 정도로 말이다.

결국 열렬한 구애 끝에도 박녹주와의 사랑에 실패했다. 박녹주에 이어 그가 사랑한 두 번째 여자는 박봉자이다. 박봉자가 실린 잡지를 보던 중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나도 닮은 그녀의 기사 사진만 보고 김유정은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기사가 실린 해 결혼을 하였고, 그는 두 번째 사랑도 홀로 끝을 내어야 했다.

반복된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한 김유정은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야학당인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등 다양한 활동을 약 2년간 진행하며 19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느끼게 된다.

이는 그의 작품 속 현실적인 시골의 모습과 향토적인 분위기, 희화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좋은 양분이 되었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지게 된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 뒤,

1935년 그의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新春文藝)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다른 글인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김유정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이 시작되었다.

추가적으로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의 친한 친구가 된 이상李箱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입봉 이후 바로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을 앓게 되었고 지병들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이 운영한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휘문고등보통학교 동창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 18)를 끝으로 3월 29일 새벽 달빛 속에 하얗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삶을 마감한다.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 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까지도 그 재미,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김유정이야말로 소설의 언어에서나 내용은 물론 진술 방식에서 우리 문학사에 다시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연보

연도 내용
표1-1. 김유정 생애
1908년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金春植) 모친 청송(靑松)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
1917년 1919년 봄까지 3년 동안 한문 공부와 붓글씨를 익힘. 김유정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 고전지식은 이때 익힘.
1920년 재동공립보통학교(齋洞公立普通學校)에 입학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를 검정(檢定)으로 입학
1928년 인간문화재 박녹주(朴綠珠) 공연을 처음 관람후 사랑에 빠짐
1930년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交) 문과에 입학, 제명처분 당함. 고향 상경.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씀.
1931년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법과에 다시 입학 후 자퇴함. 야학당(夜學堂) 설립.
1932년 야학당을 금병의숙(錦屛義塾)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받음.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
1933년 서울 상경. 폐결핵 발병진단. <산골 나그네> 탈고,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1선지 3월호에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신여성 9월호에 발표.
1934년 누님 사직동 집 처분. 8월 16일 <정분> 탈고. 9월 10일 <만무방> 탈고. 12월 10일<애기> 탈고. <노다지><소낙비>를 12월에 탈고,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작 입선.
1936년 단편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 <옥토끼> 발표됨.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9월호에 연재됨.

수필<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 <행복을 등진 정열>은 여성지 10월호에,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은 조광지 11월호에 발표. 단편소설 <정조>는 조광지 10월호에, <슬픈이야기>는 여성지 12월호에 발표. 박봉자 만남.

1937년 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씀>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 2월 매형 유세준의 집에 옮겨와 요양 치료함. 소설 <따라지>, <땡볕>, <연기> 발표. 서간문<병상의 생각> 발표. 3월 18일 <필승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냄. 3월 29일 오전 6시 30분 사망함.
1938년 단편집 동백꽃(三文社) 발간됨.
1939년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 소년1∼5월호, <형>광업조선 11월호, <애기>문장12월호 발표.

작품이력

  • 소설
    • 산골 나그네(1933.3), 총각과 맹꽁이(1933.9), 소낙비(1935.1.29.~2.4), 금따는 콩밭(1935.3), 노다지(1935.3.2.~9), 금(1935.3), 떡(1935.6), 산골(1935.7), 만무방(1935.7.19.~30), 솥(1935.9.3.~14), 홍길동전(1935.10), 봄.봄(1935.12), 아내(1935.12), 심청(1936.1), 봄과 따라지(1936.1), 가을(1936.1), 두꺼비(1936.3), 봄밤(1936.4), 이런음악회(1936.4), 동백꽃(1936.5),야앵(1936.7), 옥토끼(1936.7), 생의 반려(1936.8~9), 정조(1936.10), 슬픈이야기(1936.12), 따라지(1937.2), 땡볕(1937.2), 연기(1937.3), 정분(1937.5), 두포전(1939.1~5), 형(1939.11), 애기(1939.12)
  • 수필
    • 닙히푸르러 가시든님이(1935.3.6.), 조선(朝鮮)의 집시(1935.10.22.~29), 나와 귀뚜람이(1935.11), 오월(五月)의 산골작이(1936.5),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1936.5), 전차(電車)가 희극(喜劇)을 낳어(1936.6), 길(1936.8), 행복(幸福)을 등진 정열(情熱)(1936.10), 밤이 조금만 잘럿드면(1936.11), 강원도(江原道) 여성(1937.1),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1937.1.29.~2.2), 네가 봄이런가(1937.4)
  • 설문응답
    • 우리의 정조(情調)(1936.12)
  • 서간
    • 문단(文壇)에 올리는 말슴(1937.1), 병상(病床)의 생각(1937.3), 강노향전(姜鷺鄕前)(1937.5), 박태원전(朴泰遠前)(1937.5), 필승전(前)(1963.1)
  • 번역동화
    • 귀여운 소녀(少女)(1937.4.16.~21)
  • 번역소설
    • 잃어버린 보석(寶石)(1937.6~11)

작품세계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생활 양식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진지성보다는 연민을 수반한 웃음을 통해 희화적이고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만무방(1935.7.19.~30) 에서는 그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착취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형인 응칠과 아우인 응오는 서로 성격의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취득ᆞ분배 양식에 내재하는 모순에 대립하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계급 투쟁적 해결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결말에 이르러 ‘내 걸 훔쳐야 할 운명’의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피폐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반적인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해학적이다. 김유정 소설의 주요 대상은 농촌 현실과 거기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이다. 「동백꽃」, 「봄ᆞ봄」, 「산골」 같은 작품에서는 경쾌한 해학성이 전면에 두드러진다.

즉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순박하고 어리석은 농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원리에 대한 애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소낙비」, 만무방(1935.7.19.~30) ,「총각과 맹꽁이」 같은 작품에서는 농촌 생활을 소재로 사회적 모순을 그려낸다. 즉 농촌 사회의 현실 파악이라는 시각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

이들 작품에도 김유정 문학의 특징인 해학성이 드러나고는 있으나 해학 충동의 경쾌함을 지닌 계열의 소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김유정은 강원도 지방의 토속어를 바탕으로 뛰어난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의 암울한 현실을 정치하게 묘사했다. 그의 소설 속에 보이는 ‘질펀한’ 웃음 밑에는 땅에 붙박혀 살아가는 농민들의 울음이 깔려 있다.

특별한 문학적 장치나 의도적인 서사도 없이 이리 저리 쫓기는 농민들의 실상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속에서 보이는 김유정의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웃음으로 치부될 수만은 없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따라지’ 인생이었던 농민에게 그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은 결국 풍자와 해학 뿐이다.

이는 조선시대 탈춤의 대사가 신분 제도를 풍자했던 것처럼 현실 부정의 웃음에 해당한다. 김유정에 있어서 민중이란 가난하고 바보스러운 농민이거나 뻔뻔하고 영악스러운 도시 빈민이다.

그들은 맹꽁이, 따라지, 머슴, 이농민, 유랑농민, 만무방, 들병이, 혹은 품팔이, 실업자, 걸인, 술집 여급 등이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착하고 성실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그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진지한 현실 인식을 가진 작가라면 허황하게 미화시키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그의 민중 의식은 민중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그는 민중을 과대평가하거나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 온갖 약점을 그대로 시인하고 숨김없이 노출시킨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으로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깊은 공감을 갖고 그들 자신의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김유정이 자기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의 궁핍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판 정신이 그의 특이한 민중 의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차창작물 목록

영화

1. 소낙비(영화), 개봉: 1958

2. 봄봄(영화), 개봉:1969

3. 산골 나그네(영화), 개봉: 1978.11.17.

4. 땡볕(영화), 개봉: 1985.08.01.

5. 떡(영화), 개봉: 1988.09.01

6. 소낙비(영화), 개봉: 1995.10.14.

7.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영화) , 개봉: 2014.08.21

8. 봄봄(영화), 개봉: 2014

단편드라마

1. 산골나그네(드라마), 방송일: 1982.04.17.

2. 봄봄(드라마), 방송일: 2008

김유정 기념물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곳

김유정문학촌1.PNG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기념사업회.jpg

김유정기념사업회

네트워크 그래프 및 RDF

표1-1. RDF 표
주어 목적어 서술어
김유정 치질 발병했다.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기념한다.
김유정 박녹주 만났다.
김유정 제동보통공립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금병의숙 설립했다.
김유정 소낙비 저술했다.
김유정 해학성 추구했다.
김유정 신춘문예 입상했다.
김유정 향토적 추구한다.
김유정 농촌계몽운동 참여했다.
김유정 문맹퇴치운동 참여했다.
김유정 폐결핵 발병했다.
김유정 연희전문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안회남 만났다.
김유정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구인회 활동했다.

참고문헌

김종회. (2016). 김유정 소설의 문화산업적 활용 방안 고찰. 비평문학, (62), 59-76.

최주영 김주영 소설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 서울 p.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유정

김유정의 문학산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