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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柳致眞)이 광복 직후에 쓴 역사극이다. 1947년 8월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5막으로 된 이 [[낭만사극]]은 외세와 분단문제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유치진]](柳致眞)이 광복 직후에 쓴 역사극이다. 1947년 8월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5막으로 된 이 [[낭만사극]]은 외세와 분단문제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는 미·소 양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군정을 펴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사군시대]](漢四郡時代)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고, 작자는 [[한사군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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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쓸 당시는 미·소 양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군정을 펴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사군시대]](漢四郡時代)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고, 작가는 [[한사군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
  
한나라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한 뒤 조선땅에다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사군을 두고 통치하였는데, [[고구려]]가 일어나 [[한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촌락]]을 함락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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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나라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한 뒤 조선땅에다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사군을 두고 통치하였는데, [[고구려]]가 일어나 [[한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촌락]]을 함락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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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사군 중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또 가장 강력하였던 낙랑을 멸망시키는 이야기로서, [[낙랑]]의 신고(神鼓)인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비련이 골자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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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사군 중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또 가장 강력하였던 낙랑을 멸망시키는 이야기이다. [[낙랑]]의 신고(神鼓)인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비련이 골자를 이룬다.
  
낙랑공주가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조국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낭만극이다. 항상 사실(史實)에 충실한 작자는 작품도 ≪삼국사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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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공주가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조국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낭만극이다. 사실(史實)에 충실한 작가는 작품을 ≪삼국사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넣었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나라의 배척과 [[조국통일]]이라는 주제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로 흘러간 느낌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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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나라의 배척과 [[조국통일]]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로 흘러간 느낌도 있다.
 
   
 
   
왕자와 공주가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외세배척과 민족단결을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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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공주가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외세배척과 민족단결을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미·소 양국의 군정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볼 수가 있다. 그리하여 외세, 특히 소련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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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소 양국의 군정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볼 수가 있는데, 그리하여 외세의 소련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친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사극으로 쓴 이 작품은 [[광복]] 후의 복잡미묘하고 혼란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계몽사극이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사극으로 쓴 이 작품은 [[광복]] 후의 복잡미묘하고 혼란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계몽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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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와의 비교==
 
==<마의태자>와의 비교==
  
자명고는 [[마의태자]]와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측면 또한 포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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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와 비교하여 볼 때, 공통점은 첫 번째로 사랑이야기이다. <마의 태자>에서는 망국의 태자와 정복국 공주의 사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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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와 비교하여 볼 때,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공통적이다. <마의 태자>에서는 망국의 태자와 정복국 공주의 사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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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과 정복국이라는 대립적인 구도 속에서의 어려운 사랑을 한다. <자명고>에서 또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는 적대시하는 나라의 자식들로써 그들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망국과 정복국이라는 대립적인 구도 속에서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뜻한다. <자명고>에서 또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는 적대시하는 나라의 자식들로써 그들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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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라의 멸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의 태자는 신라의 멸망을 담았다면 자명고는 낙랑의 멸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조국이 지배당하고, 다시 해방되는 구도 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이러한 시기를 선택한 것 같다.  
  
두 번째로, 한 나라의 멸망을 담고 있다. 마의 태자는 신라의 멸망을 담았다면 자명고는 낙랑의 멸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조국이 지배당하고, 다시 해방되는 구도 속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그가 이러한 시기를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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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사극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시대는 다르다. 마의태자는 신라 말과 고려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명고는 낙랑과 고구려를 배경으로 삼는다. 유치진이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유치진의 작품 속에서 역사극으로 묶일 수 있
  
세 번째로, 역사극이라는 점이다. 마의태자는 신라 말과 고려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명고는 낙랑과 고구려를 배경으로 삼는다. 유치진이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유치진의 작품 속에서 역사극으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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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8일 (월) 17:13 판


자명고


작품설명

유치진(柳致眞)이 광복 직후에 쓴 역사극이다. 1947년 8월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의하여 공연되었다. 5막으로 된 이 낭만사극은 외세와 분단문제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는 미·소 양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군정을 펴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사군시대(漢四郡時代)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고, 작가는 한사군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을 전개하였다.

이 작품은 한나라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한 뒤 조선땅에다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사군을 두고 통치하였는데, 고구려가 일어나 한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촌락을 함락시킨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줄거리

고구려가 사군 중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또 가장 강력하였던 낙랑을 멸망시키는 이야기이다. 낙랑의 신고(神鼓)인 자명고에 얽힌 낙랑공주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비련이 골자를 이룬다.

낙랑공주가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조국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낭만극이다. 사실(史實)에 충실한 작가는 이 작품을 ≪삼국사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넣었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한나라의 배척과 조국통일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실과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로 흘러간 느낌도 있다.

왕자와 공주가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외세배척과 민족단결을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미·소 양국의 군정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볼 수가 있는데, 그리하여 외세의 소련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친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사극으로 쓴 이 작품은 광복 후의 복잡미묘하고 혼란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계몽사극이다.



<마의태자>와의 비교

자명고는 마의태자와 유사한 느낌도 있지만, 다른 측면 또한 포함하고 있다.

<마의태자>와 비교하여 볼 때,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공통적이다. <마의 태자>에서는 망국의 태자와 정복국 공주의 사랑이 나온다.

망국과 정복국이라는 대립적인 구도 속에서의 어려운 사랑을 한다. <자명고>에서 또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는 적대시하는 나라의 자식들로써 그들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한 나라의 멸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의 태자는 신라의 멸망을 담았다면 자명고는 낙랑의 멸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조국이 지배당하고, 다시 해방되는 구도 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이러한 시기를 선택한 것 같다.

그리고 역사극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시대는 다르다. 마의태자는 신라 말과 고려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명고는 낙랑과 고구려를 배경으로 삼는다. 유치진이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유치진의 작품 속에서 역사극으로 묶일 수 있

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유치진 자명고 A는 B를 집필했다


참고문헌

『유치진희곡전집(柳致眞戱曲全集)』(성문각, 1971)

『한국현대희곡사』(류민영, 홍성사, 1982)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