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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제작시기''' || 1920.06.25~19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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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5일 (수) 01:51 판


개요

개벽(開闢)은 1926년 6월 25일 창간된 천도교월간잡지이다. 천도교청년회에서 신문화운동을 바탕으로 조선인의 계몽을 위하여 창간한 것으로, 당시의 잡지 중에서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았으나 꾸준히 신문화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다했다. 발간과 동시에 표지(호랑이 그림)와 「금쌀악」·「옥가루」 등 몇몇 기사가 문제가 되어 일제에게 전부 압수되고 말았다. 이에 문제가 된 기사를 삭제하고 호외(號外)를 냈으나 이것마저 압수되어 다시 임시호(臨時號)를 발행하였다. 그 뒤에도 시련은 계속 되었고, 결국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8월호)를 끝으로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간되었다.

성향

민족항일기의 개벽은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정간·발행금지·벌금, 그리고 발행정지 등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주의 고취에 역점을 둔 대표적인 종합잡지이다. 1900년대 당시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지향하던 신경향파 초기의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여, 지면의 3분의 1에 달하는 문예면에 그들의 작품을 게재하였다. 개벽의 기사 영역은 종교·사상·정치·경제·산업·역사·천문·지리·문학·미술·음악·제도·기술·풍속·풍물·인물·시사 등을 아우르고 있으며, 현란하고 화려한 광고들에서 보듯이 유통되는 상품 내지 근대문물 전체에 관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종합지적인 개방성을 보였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대표작품 목록

창간호

제 2호

  •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소설, 나도향)
  • 유린 (소설, 현진건)
  • 꿈의 나라로 (시, [[[박영희]])
  • 봄은 가더이다 (시, 홍사용)
  • 흑방비곡 (시, 박종화)

제 3호

  • 나의 침실로(시, 이상화)
  •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 (시, 홍사용)
  •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 홍사용)
  •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시, 홍사용)
  • 여이발사(소설, 나도향)
  • 목이 매이는 여자 (소설, 박종화)
  • 죽음보다 아프다 (희곡, 박종화)

관련 학술서

  • 이동하. (1983). 동인지 <백조>의 문학사적 성격. 한국문화, 4(), 107-118.
  • 이은주. (2000). [특집:1920년대 동인지 문학과 근대성]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자기 구성 방식에 대한 시론(試論) : 「창조」「폐허」「백조」의 사랑의 담론을 중심으로. 상허학보, 6(), 149-179.


관련항목

백조 시각화.png

항목A 항목B 관계
백조 1922년 A는 B에 창간되다
백조 낭만주의 A는 B이다
백조 장미촌 A는 B를 본받다
장미촌 낭만주의 A는 B이다
백조 경성문화사 A는 B에서 만들어지다
백조 1923년 A는 B에 폐간되다
백조 현진건의 작품 A는 B를 포함한다
백조 이상화의 작품 A는 B를 포함한다
백조 박종화의 작품 A는 B를 포함한다
1922년 일제강점기 A는 B이다
1923년 일제강점기 A는 B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白潮_(朝鮮の雑誌)

노작홍사용문학관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