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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나의 고백은 자서전의 일종인 고백서이다. 나의 고백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의 민족운동과 친일활동에 대한 내용과 정황을 설명하는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 '민족운동의 첫 실천', '망명한사람들', '기미년과 나', '나의 훼절', '민족보존', '해방과 나' 와 자신의 친일활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사례를 제시하는 부록인 [[친일파의 변]]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광수]]는 [[친일파의 변]]에서 이 글이 제삼자의 처지에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파라고 지목받았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심경과 논리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것을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이 책에서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부터 일제 말기까지 자신의 행위를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서술한 후,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 역시 "애국자로서의 명예를 희생하더라도 민족보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나의고백은 반민특위에 회부되기 직전에 쓴 글로 작가의 목적과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기획된 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각 항목에 대한 분량으로 알 수 있는데, 앞의 네 항목이 독립운동기인 민족주의자로 활동하던 시기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세 항목이 친일을 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민족 운동 시절의 글의 분량은 친일한 후의 글의 4배 수준으로 50쪽 정도의 긴 내용을 담고 있고, 친일 시절의 글의 분량은 14쪽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시기적으로도 민족운동을 하던 시기가 길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고백서의 입장에서 볼 때, 분량의 차이는 상당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즉, 나의 고백은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친일’한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인 ‘독립운동기’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나를 투사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기획된 글쓰기인 것이다. 물론‘친일'을한 행위에 대한 내용도 고백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친일’내은‘독립’운동의 시기에 비해 훨씬 짧게 드러냄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치명적인 실수이자 결점으로 고백된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그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계기로 작용할 뿐 그 죄를 더 부과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억의 의도된 배치에 의해 친일 행위는 독립 운동으로 가려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글쓰기 기획의 일환으로 적용된 ‘고백’의 서사 전략은 기억의 배치와 함께 자전적 글쓰기의 효과를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는‘배제된 기억'과‘선택된 기억'의 배치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를 민족주의자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으며, 본인은 이 고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으로 구축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의 민족운동과 친일활동에 대한 내용과 정황을 설명하는 나의고백과
 
자신의 친일활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사례를 제시하는 [[친일파의 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광수]]는 [[친일파의 변]]에서 이 글이 제삼자의 처지에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가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파라고 지목받았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심경과 논리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것을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이 책에서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부터 일제 말기까지 자신의 행위를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서술한 후,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 역시 "애국자로서의 명예를 희생하더라도 민족보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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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6일 (일) 15:38 판

정의

1948년 12월 1일 춘추사에서 출간된 이광수의 자서전


개요

이광수의 나의 고백은 자서전의 일종인 고백서이다. 나의 고백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의 민족운동과 친일활동에 대한 내용과 정황을 설명하는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 '민족운동의 첫 실천', '망명한사람들', '기미년과 나', '나의 훼절', '민족보존', '해방과 나' 와 자신의 친일활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사례를 제시하는 부록인 친일파의 변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광수친일파의 변에서 이 글이 제삼자의 처지에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파라고 지목받았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심경과 논리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것을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이 책에서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부터 일제 말기까지 자신의 행위를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서술한 후,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 역시 "애국자로서의 명예를 희생하더라도 민족보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나의고백은 반민특위에 회부되기 직전에 쓴 글로 작가의 목적과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 기획된 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각 항목에 대한 분량으로 알 수 있는데, 앞의 네 항목이 독립운동기인 민족주의자로 활동하던 시기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세 항목이 친일을 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민족 운동 시절의 글의 분량은 친일한 후의 글의 4배 수준으로 50쪽 정도의 긴 내용을 담고 있고, 친일 시절의 글의 분량은 14쪽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시기적으로도 민족운동을 하던 시기가 길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고백서의 입장에서 볼 때, 분량의 차이는 상당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즉, 나의 고백은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친일’한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인 ‘독립운동기’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나를 투사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기획된 글쓰기인 것이다. 물론‘친일'을한 행위에 대한 내용도 고백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친일’내은‘독립’운동의 시기에 비해 훨씬 짧게 드러냄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치명적인 실수이자 결점으로 고백된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그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계기로 작용할 뿐 그 죄를 더 부과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억의 의도된 배치에 의해 친일 행위는 독립 운동으로 가려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글쓰기 기획의 일환으로 적용된 ‘고백’의 서사 전략은 기억의 배치와 함께 자전적 글쓰기의 효과를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는‘배제된 기억'과‘선택된 기억'의 배치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를 민족주의자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으며, 본인은 이 고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으로 구축하고 있다.

목차

 나의 告白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
 민족운동의 첫 실천
 망명한 사람들
 기미년과 나
 나의 훼절
 민족 보존
 해방과 나
 親日派의 辨
 弘濟院沐浴
 三學士
 官公吏는 反民族者였던가
 美國人의 親日派觀
 大韓民國과 親日派


내용

소년시절의 활동, 개인적 연애의서사 등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중심으로 식민 시절의 삶을 기록했다. 이광수는 '나'의 개인적 정체성을 모두 소거하고 역사적 인물로서 '나'를 구성한것이다. 이광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친일파-이광수의 삶을 부정하고 민족운동가-이광수의 삶으로 '나'를 재현하고 있다. 나의고백은 소년시절 민족의식을 깨닫고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어 민족을 위해 희생을 다짐하는 이광수, 그리고 이러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2.8 학생독립운동3.1운동의 실천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독립 정부의 뿌리가 되는 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한 이광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민족운동자로서의 이광수의 삶을 강조한것이다. 이광수는 나의고백에서 민족의 죄인이 아닌 제국의 죄인으로 자신을 형상화했다. 그에게 있어 대일협력행위는 민족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광수식민지 민족이라는 죄를 조선사회 전체에 씌우고 자신은 해방 이후 계몽되지 못한 민족을 반성하고 민족을 위해 일하는 애국자로 다시 등장하고자 하였다.

  • 내용 중 일부
  이 마지막 재판에 검사는 그 논고의 대부분은 내 죄를 증명
  하기에 바쳤다. 그는 민족주의 계통의 범죄로 취급된 조선 청
  년의 칠내지 팔할이 피고의 저서에서 감염되었다는 것을 자백
  하였으니 그렇게 많은 청년을 그르친 것만 하여도 이 광수는
  죽어도 아깝지 않다 하였고, 또 피고가 근래에 천황 중심을 말
  하고 내선 일체를 말하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
  라 그의 민족 운동의 한 방편에 불과하다. 이 시국에서는 그러
  한 형식이 아니고는 민족운동을 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하고,
  피고는 죽어도 민족주의를 버릴 자는 아니니, 재판소는 그
  에게 속아서는 아니 된다.
  하였다. 그러고 내게 오년, 다른 이에게 사년 이하, 이심에서
  와 비슷한 구형을 내렸다.
  재판장이 나더러 검사의 말에 대하여 할 말이 없느냐 하기
  로, 나는, 검사의 말은 옳다. 내가 천황을 말하고 내선일체를 말하는
  것은 오직 조선 민족을 위한 것이다. 만일 그리 하는 것이 조
  선 민족에게 이익이 아니 된다면, 나는 곧 독립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하였다. 그날 변호사는 왜 그런 위태한 말을 하느냐, 아슬아
  슬했다고 나를 책망하였다. 그런데 의외에도, 참으로 의외에도
  우리 사건은 전부 무죄라는 판결이 내렸다. 변호사들도 
  이 판결을 의외라고 하였다.
  이광수 나의고백 265면

이광수는 나의 고백에서 7개의 사안을 들어 자신의 친일행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한다.

  1. 물자 징발이나 징용이나 징병이나 일본이 하고싶으면 협력 여부를 불구하고 강제로 할 것임
  2. 어차피 당할 일이면 자진해서 협력하는 태도를 하는 것이, 장래에 일본에 대해 우리의 발언권 확보가 가능
  3. 징병이나 징용 등 억지로 끌려가기 보다 자진해서 가는 편이 대우가 나을 것임
  4. 징병이나 징용은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며, 이 기회에 산업 훈련과 군사 훈련을  받아 실력을 쌓는 편이 나음
  5. 수십만의 군인을 내어보내면 일본이 우리를 학대하지 못하고 내선 차별의 폐해 도 없앨 수 있을 것임
  6. 일본이 승전한다면, 우리는 일본일과 동등한 평등권을 얻을 수 있을 것임
  7. 일본이 패전한다 해도, 식민지 상태인 조선이 일본에 협력한 것이 문제요소가 되지 않음


나의 고백에서 말하는 이광수 자신이 민족의식을 품게 된 경위와 변모과정은 크게 다음과 같다. 민족의식 형성 → 민족운동의 실천/애국자 양성 (오산학교 교사생활) →‎ 망국민의 슬픔 (한일합병) →‎ 민족의 실력양성 →‎ 방랑/상하이 및 해외 행 →‎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회의 →‎ 민족 전체를 생각하는 수양 (수양동우회 결성) → 민족주의 노선 자칭 및 물의 →‎ 민족운동의 퇴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이광수는 본격적인 친일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된 바 있는 이광수는 일제의 방침이 협조를 하지 않으면 체포하는 일방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민족의 정신력과 직결되는 문화사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굳힌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일제의 침략정책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내부의 반역자라는 불명예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광수는 이를 끝없이 의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민족'이라는 기치를 내세운다. 민족을 위한 반역이며, 민족을 위한 희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민족을 위한 충성을 했다는 논리를 펼치게 되었다. ‎ ‎


평가

이광수는 나의 고백을 통해 친일파-이광수를 민족주의자-이광수로 겹쳐놓으면서 반민족을 의미하는 '친일'의 모습을 혼란시켰다. 이러한 논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광수의 친일이 민족주의가 모두 민족의 발전과 개량이라는 근대적 계몽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해방기 청산의 과정을 맞아 친일의 기표는 확정되지 못했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남는다. 이는 과거 청산이 친일의 주체를 호명하고 처단하는것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비판과 반성을 목표로 과거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것이 되는것을 방해하였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이광수가 나의 고백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공적 역사와 사적 기억이 결합된 독특한 자기서술의 공간으로, 고백이라는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내면의 참회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오히려 민족의 역사롸 개인의 삶을 등치시키고, 민족의 수난을 자신의 수난으로 전환함으로써 '고백'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광수의 자기 서술이 결코 반성적이거나 성찰적이지 않았다는 단면을 보여준다고 평하였다.


RDF표 및 온톨로지

항목A 항목B 관계
나의고백 저서이다 이광수
나의고백 이다 자서전
이광수 이다 친일파
이광수 출간했다 나의고백
나의고백 포함한다 친일파의 변

작성자 및 기여자

김도현


출처

이민영. (2017). 해방기 이광수와 '친일'의 기표. 현대소설연구.

춘원 이광수의 친일 논리 / 김광식

서은주. (2013). 특집 : 센티멘탈 이데올로기; 해방 후 이광수의 “자기서술”과 고백의 윤리. 58권. 민족문화연구

노연숙. (2008). 해방 전후 이광수 문학에 나타난 민족의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26(), 419-455.

김경미. (2011). 해방기 이광수 문학의 자전적 글쓰기의 전략과 의미. 한민족어문학, 59(), 713-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