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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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10일 (월) 10: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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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개방했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한양도성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대신 북소문인 혜화문이 실질적인 북문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름 유래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문은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자주 찾았으며, 덩달아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고 한다. 원래 북대문에는 智를 넣어 홍지문(弘智門 : 지혜를 넓게 한다는 의미)이라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대문은 홍지문 대신 숙청문, 숙정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또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홍지문(弘智門)으로 지어졌다

역사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의 상소로 숙정문[觀光坊東嶺路]을 폐쇄하였으며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에는 숙정문을 없애고 오른쪽에 새로이 문을 세우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6], 2006년 4월 1일 인근의 성곽 탐방로 1.1km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였다.지금의 숙정문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갤러리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