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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metadata" style="background:#f2f2f2; width:320px; margin: 5px 5px 5px 5px;" cellspacing="10" align="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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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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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55a1e5;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최서해
 
崔曙海'''
 
崔曙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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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최서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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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이름''' || 최학송(崔鶴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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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 |'''이름''' || 최학송(崔鶴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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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필명''' || 서해(曙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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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필명''' || 서해(曙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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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생''' || 1901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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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출생''' || 1901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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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사망''' || 1932년 7월 9일(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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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사망''' || 1932년 7월 9일(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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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국적'''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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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국적'''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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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직업''' || 소설가,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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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직업''' || 소설가,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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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소속''' || 前 매일신보 학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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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소속''' || 前 [[매일신보]] 학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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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장르''' || 소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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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55a1e5;color:#ffffff;border:ridge;border-color:white;cellspacing=0;border=1;font-size:100%;width:80px;text-align:center;"|'''장르''' || 소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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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작품==
 
==작품 경향==
 
최서해의 문학은 간도시절의 유랑경험과 회령에서 잡역부생활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가난과 지주의 착취에 고통받는 가난한 민중의 삶을 닮아내었다.
 
  
그의 문학은 총 세가지 정도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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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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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는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는 호이다. 1920년대 [[경향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대표 작품으로는 《[[탈출기]]》(脫出記) , 《[[홍염]]》(紅焰), 《[[기아와 살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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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째,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간도로 유랑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고국>(조선문단, 1924)·<탈출기 脫出記>(조선문단, 1925)·<기아(饑餓)와 살육(殺戮)(조선문단, 1925)·<돌아가는 날>(1926)·<홍염 紅焰>(조선문단, 1927) 등이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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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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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caption-side:bottom; 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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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연령)||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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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1세)||1월 21일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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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0세)||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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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5세)||시장 거리에 나가 『청춘』, 『학지광』 등의 잡지를 탐독하다가,  춘원의 글을 읽고 그를 존경하여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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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8세)||[[간도]]로 이주하여 유랑 생활 시작했고, 부두 노동자, 음식점 점원 등 최말단 생활로 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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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3세)||[[간도]]로부터 귀국,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다. 이 무렵부터 서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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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4세)||춘원의 소개로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에 들어가 약 3개월간 기거하며 서구 문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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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25세)||『[[조선문단]]』사 입사하여, 작품 발표가 많아지면서 중견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김기진의 권유로 [[KAPF]]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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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6세)||창작집 『혈흔』을 글벗집에서 발간, 『[[조선문단]]』이 휴간되자 『[[현대평론]]』 담당 기자로 당분간 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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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7세)||『[[조선문단]]』사에 복직했으나 얼마 있다 실직 후 기생들의 잡지 『[[장한]]』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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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28세)||『[[중외일보]]』 기자로 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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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29세)||『신생』의 문예 추천 작가로 위촉, [[KAPF]] 탈퇴, 가을에 『[[매일신보]]』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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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30세)||『[[매일신보]]』 학예부장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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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31세)|| 5월 창작집 『[[홍염]]』을 『삼천리』사에서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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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32세)|| 위문 협착증으로 수술받다 과다출혈이 문제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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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함경도 지방의 시골을 배경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나 잡역부들의 생활을 그린 소설로 <박돌(朴乭)의 죽음>(조선문단, 1925)·<큰물 뒤>(개벽, 1925)·<그믐밤>(신민, 1926)·<무서운 인상(印象)>(동광, 1926)·<낙백불우 落魄不遇>(문예시대, 1927)·<인정 人情>(신생, 1929)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작품 목록'''==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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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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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연월일||장르 구분||작품명||발표지||참고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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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23~2.4 ||단편 ||『[[토혈]]』||『[[동아일보]]』|| 처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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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0. ||단편 ||『[[고국]]』||『[[조선문단]]』 1호|| 추천 소설, 1924. 2 작.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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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1. ||단편 ||『매월』|| 창작집『혈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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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2. ||단편 ||『십삼원』|| 『[[조선문단]]』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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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3. ||단편 ||『[[탈출기]]』|| 『[[조선문단]]』 6호||1924. 10월호에는 선외가작으로 제목만 실림. 『사상계』30호(1956.1)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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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4.6~13 ||단편 ||『향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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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4. ||단편 ||『살려는 사람들』|| 『[[조선문단]]』 7호|| 게재금지. 서문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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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5. ||단편 ||『[[박돌의 죽음]]』|| 『[[조선문단]]』|| 1925.3 하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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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6.29 ||단편 ||『방황』|| 『[[시대일보]]』|| 소품
 +
|-
 +
|1925.6.30~7.1 ||단편 ||『보석반지』|| 『[[시대일보]]』||
 +
|-
 +
|1925.6. ||단편 ||『[[기아와 살육]]』|| 『[[조선문단]]』||1925. 5. 17 작
 +
|-
 +
|1925.9. ||단편 ||『기아』|| 『여명』|| 1925.7 작
 +
|-
 +
|1925.12. ||단편 ||『[[큰물 뒤]]』|| 『개벽』||
 +
|-
 +
|1926.1.1~5 ||단편 ||『오원칠십오전』|| 『[[동아일보]]』|| 1925.12.24 작
 +
|-
 +
|1926.1. ||단편 ||『폭군』|| 『개벽』||
 +
|-
 +
|1926.1. ||단편 ||『그 찰나』|| 『[[시대일보]]』|| 미완
 +
|-
 +
|1926.1. ||단편 ||『설날밤』|| 『신민』 9호|| 1925.11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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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2. ||단편 ||『백금』|| 『신민』 10호|| 1925.12.2 자시 작
 +
|-
 +
|1926.2. ||단편 ||『의사』|| 『문예운동』|| 1925.11.24 조 작
 +
|-
 +
|1926.3. ||단편 ||『소살』|| 『가면』||
 +
|-
 +
|1926.3. ||단편 ||『[[해돋이]]』|| 『신민』 11호|| 1924.11. 15 작
 +
|-
 +
|1926.5. ||단편 ||『그믐밤』|| 『신민』 13호|| 『자유문학』 19호(1958.10) 재수록
 +
|-
 +
|1926.5. ||단편 ||『담요』|| 『[[조선문단]]』|| 『사해공론』(1935.5)에 소설로 재수록
 +
|-
 +
|1926.6. ||단편 ||『금붕어』|| 『[[조선문단]]』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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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7.12 ||단편 ||『만두』|| 『[[시대일보]]』|| 『실생활』(1931.9.10)에 재수록
 +
|-
 +
|1926.7. ||단편 ||『누가 망하나』|| 『신민』 15호|| 6.29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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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8. ||단편 ||『농촌야화』|| 『동광』 4호|| 게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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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9. ||단편 ||『팔개월』|| 『동광』 5호|| 7.20 오전 4시 작
 +
|-
 +
|1926.9. ||단편 ||『아내의 자는 얼굴』|| 『조선지광』||
 +
|-
 +
|1926.10. ||단편 ||『지류』|| 『신민』 18호|| 6.23 작
 +
|-
 +
|1926.11.14 ||단편 ||『홍한녹수』|| 『[[매일신보]]』||연작 소설, 소제목『남은 꿈』
 +
|-
 +
|1926.11. ||단편 ||『이역원혼』|| 『동광』 7호||10.3 오전 2시 작
 +
|-
 +
|1926.11. ||단편 ||『동대문』|| 『문예시대』 1호||10.8 정오 작
 +
|-
 +
|1926.12.28 ||창작집 ||『혈흔』|| 『글벗집』||수록 작품:『혈흔』(서문), 『보석반지』,『[[박돌의 죽음]]』, 『기아』, <br> 『매월』, 『[[탈출기]]』, 『향수』, 『[[기아와 살육]]』,『미치광이』,『[[고국]]』,『십삼원』 11편
 +
|-
 +
|1926.12. ||단편 ||『무서운 인상』|| 『동광』 8호|| 11.3 오 작
 +
|-
 +
|1926.12. ||단편 ||『돌아가는 날』|| 『신사회』||
 +
|-
 +
|1926.12. ||단편 ||『미치광이』|| 창작집 『혈흔』에 수록||
 +
|-
 +
|1927.1.1 ||단편 ||『쥐 죽인 뒤』|| 『[[매일신보]]』||
 +
|-
 +
|1927.1.11~15 ||단편 ||『서막』|| 『[[동아일보]]』||
 +
|-
 +
|1927.1. ||단편 ||『[[홍염]]』|| 『[[조선문단]]』||1926.12.4 오전 6시 작
 +
|-
 +
|1927.1. ||단편 ||『전야사』|| 『동광』 9호||
 +
|-
 +
|1927.1.1 ||단편 ||『낙백불우』|| 『문예시대』||
 +
|-
 +
|1927.2. ||단편 ||『가난한 아내』|| 『조선지광』|| 미완
 +
|-
 +
|1927.5. ||단편 ||『이중』|| 『시대평론』|| 게재 금지
 +
|-
 +
|1928.1. ||단편 ||『갈등』|| 『신민』||
 +
|-
 +
|1928.4.4~12 ||단편 ||『폭풍우시대』|| 『[[동아일보]]』||미완
 +
|-
 +
|1928.8. ||단편 ||『용신난』(1)|| 『신민』|| 미완
 +
|-
 +
|1928.10.6~21 ||단편 ||『부부』|| 『[[매일신보]]』|| 8월 작
 +
|-
 +
|1929.1.1~2.26 ||단편 ||『먼동이 틀 때』|| 『[[조선일보]]』||
 +
|-
 +
|1929.1. ||단편 ||『전기』|| 『신생』 4호|| 1928.12.14 작
 +
|-
 +
|1929.2. ||단편 ||『인정』|| 『신생』 5호|| 1월 작
 +
|-
 +
|1929.3. ||단편 ||『물벼락』|| 『[[조선일보]]』 4호|| 꽁트
 +
|-
 +
|1929.3. ||단편 ||『경계선』|| 『중성』||
 +
|-
 +
|1929.4.15~22 ||단편 ||『차중에 나타난 마지막 그림자』|| 『[[조선일보]]』||
 +
|-
 +
|1929.4. ||단편 ||『주인아씨』|| 『신생』||
 +
|-
 +
|1929.4. ||단편 ||『수난』|| 『학생』|| 미완~문단 삼최씨 연작소설(대제목,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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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5.24 ||단편 ||『여름음악가』|| 『[[동아일보]]』|| 연작소설
 +
|-
 +
|1929.9. ||단편 ||『같은 길을 밟는 사람들』|| 『신소설』 1호||
 +
|-
 +
|1929.12. ||단편 ||『무명초』|| 『신민』 52호||
 +
|-
 +
|1930.2. ||단편 ||『누이동생을 따라』|| 『신민』||
 +
|-
 +
|1930.5.15 ||창작집 ||『[[홍염]]』|| 『삼천리』|| 수록작품:『갈등』, 『저류』, 『[[홍염]]』 3편
 +
|-
 +
|1930.9.20~ 1931.8.1 ||장편 ||『호외시대』|| 『[[매일신보]]』|| 310회 연재
 +
|-
 +
|}
  
셋째, 잡지사 주변을 맴도는 문인들의 빈궁상을 그린 소설로 <팔개월 八個月>(동광, 1926)·<전기 轉機>(신생, 1929)·<전아사 錢迓辭>(동광, 1927)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
===수필===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연보==
+
!발표연월일||장르 구분||작품명||발표지||참고 사항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90%;"
+
|-
!style="width:10%|연도||style="width:80%"|내용
+
|1918.3. ||수필 ||『우후정원의 월광』||『학지광』 15호|| 발표 당시는 산문시로 발표
 +
|-
 +
|1918.3. ||수필 ||『추교의 모색』||『학지광』 15호||
 +
|-
 +
||1918.3. ||수필 ||『반도청년에게』||『학지광』 15호||
 +
|-
 +
|1923.7.29 ||수필 ||『고적』||『[[동아일보]]』||
 +
|-
 +
|1924.10. ||수필 ||『여정에서』||『[[조선문단]]』|| 선외 가작, 제목만 표시
 +
|-
 +
|1925.3. ||수필 ||『그리운 어린 때』|| 『[[조선문단]]』 6호||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
 +
|-
 +
|1925.7. ||수필 ||『전생명의 요구는 아니다』|| 『[[조선문단]]』 10호||제가의 연애관
 +
|-
 +
|1925.8. ||수필 ||『여름과 물』|| 『[[조선문단]]』 12호||
 +
|-
 +
|1925.10. ||수필 ||『해운대』|| 『신민』||
 +
|-
 +
|1925.11. ||수필 ||『병우조운』|| 『[[조선문단]]』||
 +
|-
 +
|1925.11. ||수필 ||『혈흔』|| 『[[조선문단]]』|| 창작집『혈흔』의 서문
 +
|-
 +
|1926.4. ||수필 ||『흐르는 이의 군소리』|| 『[[조선문단]]』||
 +
|-
 +
|1926.6.2 ||수필 ||『연주창과 독사』|| 『[[동아일보]]』||
 +
|-
 +
|1926.7.10~13 ||수필 ||『신음성』|| 『[[동아일보]]』||
 +
|-
 +
|1926.7. ||수필 ||『운과 인생』|| 『가면』||
 +
|-
 +
|1926.8. ||수필 ||『쌍포유기』|| 『신민』 16호||
 +
|-
 +
|1926.11. ||수필 ||『천재와 범재』|| 『문예시대』 1호||
 +
|-
 +
|1927.1. ||수필 ||『미덥지 못한 마음』|| 『[[조선문단]]』||
 +
|-
 +
|1927.1. ||수필 ||『잡담』|| 『문예시대』||
 +
|-
 +
|1927.8. ||수필 ||『여름과 나』|| 『동광』||
 +
|-
 +
|1928.4.22 ||수필 ||『성동도』|| 『[[조선일보]]』||
 +
|-
 +
|1928.7.10 ||수필 ||『근감』|| 『[[동아일보]]』||
 +
|-
 +
|1928.9.23 ||수필 ||『값없는 생명』|| 『[[조선일보]]』|| 혜음(1)
 +
|-
 +
|1928.9.25~26 ||수필 ||『면회사절』|| 『[[조선일보]]』|| 혜음(2)(3)
 +
|-
 +
|1928.9.27 ||수필 ||『수박』|| 『[[조선일보]]』|| 혜음(4)
 +
|-
 +
|1928.9.28 ||수필 ||『파약의 비애』|| 『[[조선일보]]』|| 혜음(5)(6)(7)
 +
|-
 +
|1929.3. ||수필 ||『매화 옛등걸』|| 『[[중외일보]]』||
 +
|-
 +
|1929.3. ||수필 ||『봄! 봄! 봄!』|| 『신생』 6호||
 +
|-
 +
|1929.4. ||수필 ||『병신의 넋두리』|| 『조선농민』||
 +
|-
 +
|1929.6. ||수필 ||『봄을 맞는다』|| 『학생』 2호||
 +
|-
 +
|1929.6. ||수필 ||『달리소』|| 『신생』 9호||
 +
|-
 +
|1929.8.21~24 ||수필 ||『가을을 맞으며』|| 『[[동아일보]]』||
 +
|-
 +
|1929.8.25~26 ||수필 ||『숙연한 우성』|| 『[[동아일보]]』||
 +
|-
 +
|1929.8.29~9.1 ||수필 ||『가을의 마음』|| 『[[동아일보]]』||
 +
|-
 +
|1929.8. ||수필 ||『어느 곳 풍경』|| 『학생』 5호||
 +
|-
 +
|1929.9. ||수필 ||『이중명추』|| 『학생』||
 +
|-
 +
|1929.11. ||수필 ||『아내의 불행과 이혼 문제』|| 『삼천리』 3호||
 +
|-
 +
|1930.3. ||수필 ||『입춘을 맞으며』|| 『별건곤』 27호||
 +
|-
 +
|1930.6. ||수필 ||『신부와 나』|| 『별건곤』 29호||
 +
|-
 +
|1930.9. ||수필 ||『의문의 그 여자』|| 『신소설』 5호||
 +
|-
 +
|1930.10. ||수필 ||『탈』|| 『신생』 24호||
 +
|-
 +
|1931.11. ||수필 ||『깊어가는 가을』|| 『신생』||
 +
|-
 +
|1932.4. ||수필 ||『K화상의 눈』|| 『동방평론』||
 
|-
 
|-
|1901년 (1세) || 함경북도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출생.
+
|1932.5. ||수필 ||『그늘에 핀 꽃을』|| 『삼천리』||
 
|-
 
|-
|1905년 (5세) || 한동안 함북 성진시 한천리 254번지 김순기(외숙부) 집에서 기거함.
+
|1932.12. ||수필 ||『반역의 여성』||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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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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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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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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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연월일||장르 구분||작품명||발표지||참고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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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3세) || 나무 베러 갔다가 남의 산을 태워 놓고 죽게 얻어맞는 등 힘에 부친 일을 함.
+
|1924.12. ||평론 ||『근대로서아문학개관』||『[[조선문단]]』|| 생전장강 외 『근대문예 12강』 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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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5세) || 시장 거리에 나가 『청춘』, 『학지광』 등의 잡지를 사다가 읽고, 구소설 · 신소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음. 춘원(이광수)의 글을 읽고 그를 존경하여 동경에 가 있는 그와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음.
+
|1925.1. ||평론 ||『근대영미문학개관』|| 『[[조선문단]]』 4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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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8세) || 간도로 이주하여 유랑 생활 시작. 여기서 한때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기도 함. 간도로 가기전 이혼. 간도에서 재혼했으나 두 번째 처는 곧 사망. 부두노동자, 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로 전전함.
+
|1925.2. ||평론 ||『근대독일문학개관』|| 『[[조선문단]]』 5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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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1세) || 7월 22일 세 번째 처와의 사이에서 첫 딸 백금을 서간도에서 낳음.
+
|1926.1. ||평론 ||『감과 배』||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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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22세)|| 간도 생활에서 위병이 생긴 듯함. 이후 죽을 때까지 위병에 시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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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8.7~17 ||평론 ||『칠팔월의 소설』|| 『[[동아일보]]』||4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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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3세) || 봄에 간도로부터 귀국. 회령역에서 노동 일을 함. 서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함. 파인(김동환)과 서신 연락을 시작함.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여 회령을 떠나 나남 · 경성 · 성진을 떠돌고, 웅기에 있던 여동생의 집에 잠시 머물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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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7. ||평론 ||『문단시감』|| 『[[현대평론]]』||1933.7.6『[[매일신보]]』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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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4세) || 10월 이광수의 소개로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에 들어가 약 3개월간 기거함. 여기서 『탈출기』도 고치고 일문으로 된 서구 문학을 공부함.<br /><br /> 11월 15일 어머니의 환갑날 『살려는 사람들』을 탈고했으나, 발표하지 못하고 후에 『해돋이』로 개제하여 발표함. 고향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딸(백금)을 버리고 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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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9. ||평론 ||『문예시감』|| 『[[현대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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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25세) || 2월 『조선문단』사 입사. 방인근 집에서 기거함. 『조선문단』을 통해 작품 발표가 많아지자 일약 중견 작가로 발돋움하여 각종 잡지의 문사 프로필에 소개되기 시작함. 4월 14일 백금이 병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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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1. ||평론 ||『조선문학 개척자』|| 『[[중외일보]]』|| 부제 『국초 이인직씨와 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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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6세) || 2월 창작집 『혈흔』을 글벗집에서 발간.<br /><br /> 4월 8일 문우 조운의 누이 분려와 『조선문단』사에서 결혼식 거행, 명륜동 2가에서 살림 시작.<br /><br /> 6월 『조선문단』이 통권 17호를 내고 휴간되자 『현대평론』 문예란 담당 기자로 당분간 종사.
+
|1927.12. ||평론 ||『데카단의 상징』|| 『별건곤』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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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7세) || 1월 1일 장남 백(白) 출생. 1월 범 문단 조직으로 발족한 조선문예가협회에서 이익상 · 김광배 등과 함께 간사직을 맡음. 1월 방인근으로부터 남진우(우당)가 인수한 『조선문단』사에 다시 입사. 『조선문단』이 복간됨과 동시에 그 편집 책임을 맡고 추천 위원이 됨. 『조선문단』 3월호에 계용묵의 『최서방』을 추천함.<br /><br /> 5월 5일 『문예시대』사 주최 문예 강연회에서 소설작법론 강연. 서울 기생들의 잡지 『장한』의 편집을 맡기도 함.
+
|1928.1.8~11 ||평론 ||『문예시감』|| 『[[조선일보]]』|| 3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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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28세) || 8월 26일 개최 예정인 조선프로예술동맹 전국대회에서 조중곤 · 이기영과 함께 재무에 피촉됨. 『중외일보』 기자가 됨.
+
|1928.4. ||평론 ||『소년소녀와 영화극문제』|| 『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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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29세) || 2월 둘째 딸 출생.<br /><br /> 5월『조선일보』사 주최 문인 좌담회에 참석. 『신생』의 문예 추천 작가로 위촉됨. KAPF 탈퇴. 가을에 『매일신보』 기자가 됨.
+
|1928.8.2 ||평론 ||『제재 선택의 필요』|| 『[[중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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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30세) || 이른 봄 최독견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매일신보』 학예부장이 됨. 두 살 된 둘째 딸 사망. 차남 택 출생. 국악계의 명창 이동백 · 김소희, 가야금 병창으로 유명한 송만갑 등을 초청하는 등 국악에 관심을 보임. 틈만 나면 장안의 관상가는 물론 심지어 무꾸리에도 남다른 신명과 열을 올리며 찾아다님. 고영환 · 이승만과 함께 체부동의 노국공사가 살던 집을 공동으로 세내어 삶.
+
|1928.9. ||평론 ||『신소설 초기와 이인직』|| 『한빛』 동권 7호|| 일제 검열로 미발간
 
|-
 
|-
|1931년 (31세) || 5월 창작집 『홍염』을 『삼천리』사에서 간행. 10년 만에 부친이 찾아와 몇 달간 머무르다 다시 간도로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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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7.2~3 ||평론 ||『문예와 시대』|| 『[[동아일보]]』||열일고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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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32세) || 5월 4일 『삼천리』사가 주최한 문인 좌담회에 김동인 · 김원주(金元周) · 방인근 · 이광수 · 현진건 · 최상덕 · 김억 · 이익상 · 김원주(金源珠)와 함께 초대됨.<br /><br /> 위병이 부쩍 심해져 6월 초순 자리에 눕게 됨. 병명은 위문협착증. 6월 말 관훈동 삼호병원에 입원.<br /><br /> 7월 6일 수술을 받기 위해 의전병원으로 옮김. 7일 대수술 뒤 과다한 출혈. 수술 중 이익상, 죽마고우 최문국, 동료 박상엽 등 3인이 1200그램의 피를 수혈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함.<br /><br /> 7월 9일 오전 4시 20분 처남 조운, 의사 정민택, 누이동생, 이승만 그 외 간호원 2, 3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둠. 당시 가족은 어머니, 부인, 아들 백(白)과 택이 있었음.<br /><br /> 7월 11일의 장례식은 한국 최초의 문인장으로 장지는 미아리 공동 묘지. 이광수 · 김동인 · 염상섭 · 김팔봉 · 김억 · 방인근 · 심훈 · 박종화 등과 그 외 많은 문인이 운집하여, 이처럼 많은 문인이 한곳에 모이기는 근래에 없었던 일이라고 전해짐. 자동차도 4,50대나 몰려 장관을 이룸.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을 이익상 · 김동환 등 6인이 하고, 관 위에 덮는 영정에는 이병기가 글을 씀. 관을 묻고 그 위 콘크리트한 곳에는 김운정이 ‘서해 최학송지구(曙海 崔鶴松之柩)’ 라고 씀.<br /><br /> 7월 23일 오후 4시 서울 백합원에서 이광수 · 김동환 · 박종화 · 주요한 · 양건식 · 이병기 · 방인근 등이 발기하여 ‘최서해유족구제발기회’ 결성.
+
|1929.7.4 ||평론 ||『내용과 기교』|| 『[[동아일보]]』||열일고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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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 7월 8일 오후 8시부터 생전의 동지들이 주축이 되어 견지동(堅志洞) 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소기(小忌) 추도식을 거행.
+
|1929.7.5~10 ||평론 ||『노농대중과 문예운동』|| 『[[동아일보]]』||열일고어(4)(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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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 6월 12일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미아리의 묘소에 기념비를 세우고 추도회 개최. 묘는 1958년 9월 25일 망우리 공동 묘지로 이장됨.
+
|1929.7.12~14 ||평론 ||『조선의 특수성』|| 『[[동아일보]]』||열일고어(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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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 1월 21일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서 서해 탄생 65주년 기념회 개최. 박웅걸 문화상, 조영출 문예총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 공훈배우 유경애가 『박돌의 죽음』, 배우 김기욱이 『혈흔』 낭독. 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영화가 서해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보고.
+
|1929.7. ||평론 ||『새해을 마치면서- 내가 생각하는 [[조선문단]]진흥책』|| 『별건곤』||
 
|-
 
|-
|2003년 || 12월 4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 57-1번지 망우리 공원 묘지에서 묘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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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7. ||평론 ||『작가가 본 평론가』|| 『삼천리』 7호||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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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7월 31일 오후 4시 묘지 입구의 도로변에 문학비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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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기타===
==관련단체==
+
 
==관련항목==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6. 관련 항목==
+
!발표연월일||장르 구분||작품명||발표지||참고 사항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style="width:30%"|주어(S)!!style="width:30%"|목적어(O)!!style="width:25%"|관계:A는 B를 ~하다(P)!!style="width:15%"|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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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3.3||독후감||『『개척자』를 독하고 소감대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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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6. ||산문 ||『춘효설경』||『청춘』 14호|| 독자 문예 가작, 제목만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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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6.9 ||시조 ||『춘교에서』||『[[동아일보]]』||  『춘교』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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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9. ||시 ||『자신』||『북선일일신문』||  내용 미상, 서해란 호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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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9. ||동화 ||『누구의 편지』||『신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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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12. ||동화 ||『평화와 임금』||『신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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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3.25 ||시 ||『시골소년이 부른 노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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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4. ||일기 ||『?! ?! ?!』|| 『[[조선문단]]』 7호|| 일기와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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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7.8 ||시조 ||『우음』|| 『[[동아일보]]』||1925. 5. 25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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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2. ||시 ||『세 처녀』|| 『문명』 1호|| 산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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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 ||앙케이트 ||『우리의 감정에서 울어나는 글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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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 ||앙케이트 ||『문단 침체의 원인과 그 대책』||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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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2. ||대담 ||『문사방문기』||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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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8. ||잡문 ||『도향에게』|| 『[[현대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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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 ||앙케이트||『조선을 안 뒤라야』|| 『조선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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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2. ||앙케이트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여자』|| 『별건곤』|| 특집『옛날의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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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5.16~8.30 ||번안 ||『사랑의 원수』|| 『[[중외일보]]』||연재 80회, 탐정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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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2. ||앙케이트 ||『하루 시간을 어떻게 쓰나』|| 『별건곤』|| 각 방면 명사의 일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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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 ||번역 ||『행복』|| 『신민』 45호|| 알치 바세푸 원작. 중도청 일역. 서해 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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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S)]] || [[목적어(O)]] || A는 B를 ~하다(P) ||  
+
|1929.1. ||앙케이트 ||『결국은 빵 문제』|| 『별건곤』 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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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 ||앙케이트 ||『나의 소설은 보기 어렵다고』|| 『별건곤』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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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6. ||앙케이트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삼천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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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0. ||동화 ||『토끼와 포도』|| 『신생』|| 번역, 마태로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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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2. ||잡문 ||『굶어본 이야기』|| 『별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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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 ||앙케이트 ||『내가 본 나(명사의 자아관)』|| 『별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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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 ||잡문 ||『[[홍염]]』과 『[[탈출기]]』||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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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 ||잡문 ||『아호의 유래』|| 『삼천리』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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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8.19~22 ||탐방기사 ||『모범 농촌 순례』||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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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9.14 ||잡문 ||『호외시대』 예고||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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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0. ||잡문 ||『고시조 한 장을』|| 『삼천리』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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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 ||잡문 ||『내가 감격한 외국 작품-골키의 3인』||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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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2. ||잡문 ||『내가 본 내 얼굴』|| 『별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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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9. ||시 ||『님 찾아서』|| 『월간 매신』||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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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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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특징과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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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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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모두 하층민으로 모순된 환경에 대해 저항하며, 극빈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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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은 궁핍에 허덕여 처참한 생활 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원망 및 저주하며 반역하고 투쟁을 결심하고 실제로 투쟁을 하기도 한다.
 +
 +
피: 참담한 상황에서 토하거나 뿌려지는 피는 소설 전반을 지배. 공포, 잔인, 원한, 저주의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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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전기 작품에서는 본인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켜 하층민의 궁핌한 상황과 빈곤한 삶을 나타낸다. 후기 작품에서는 타인을 인지하고 인간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층민의 개인적 차원의 강렬한 죽음에서 지식인의 객관적이고 보편적 죽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
 +
주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의 사실성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
 +
작품의 주로 등장하는 가출 모티브, 환상 장면, 액자 소설에 나타나는 관점 등이 있다.
 +
 +
===배경===
 +
1910~1918년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일제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수탈을 시작했다. 이때 전 국토의 40%를 일본이 차지하게 되며 땅이 없어진 농민들이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이 되어 착취를 당했다. 1920~1934년 일본의 식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이 이루어졌고, 이후 농민들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허덕였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삶이 고단했던 일부 사람들은 [[간도]]나 [[만주]], [[연해주]]로 돈벌이를 위해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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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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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향파]]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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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 경향의 문학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20년대 초의 감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백조파와 창조파 문학 따위를 비판하며 전개된 문학 사조로, 3.1운동 직후의 병약한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192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사회주의적인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출발했다. 신경향파의 특징은 빈곤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위 빈궁문학으로,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하층민들의 반항적 요소가 강하고, 결말은 살인과 방화 등으로 끝난다. 삶에 대한 최후의 선택으로 결말을 맺지만 그 심층에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반어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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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주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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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문학 = [[프롤레타리아]] 문학 :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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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의 이념을 선전하거나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을 형상화한 문학이다. 이것은 17, 18세기 서구 리얼리즘 문학의 현실인식 방법과 19세기 혁명적 민주주의 문학의 유산을 계승하여 [[리얼리즘]] 문학계열의 한 축을 형성하였고 193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으로 정착하였다. 동시에 계급주의 문학은 인간을 계급적인 존재로서 발견하고, 계급지배 체제로의 변혁에 순응하는 새로운 혁명적 인간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제까지의 개인주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상황과 인간성과의 새로운 긴장과 전개, 새로운 시야와 감수성과 사고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사상 종래에 없던 사회주의 문예사조와 그 작가 및 작품을 등장시켰다.
 +
 +
=='''관련 항목'''==
 +
* [[이광수]] <br>
 +
* [[카프]]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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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평론]] <br>
 +
* [[조선문단]] <br>
 +
* [[장한]] <br>
 +
* [[간도]] <br>
 +
* [[회령]]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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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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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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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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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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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type="button" value="새로고침" onclick="relo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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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1200" height="800" src="https://hwiki.eumstory.co.kr/work/A/We_Dont_Want_F/SeoHae5.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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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
 +
=='''참고문헌'''==
 +
* 곽근, 『최서해의 삶과 문학 연구』, 푸른사상, 2014
 +
*[네이버 지식백과] 카프 [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
*출처: [https://hichy.tistory.com/entry/카프에스페란토-Korea-Artista-Proleta-Federacio 히키의 상상 공간-티스토리]
 +
* 박애경, 『신경향파 소설에 나타난 저항의지 연구 : 최서해, 조명희, 주요섭의 작품을 중심으로』, (석사학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2005)
 +
*표언복,"최서해 생각-망자(亡者)에 대한 예의",중부매일,2018.07.29,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2617
 +
* 유승환, 「1923년의 최서해 - 빈민 작가 탄생의 문화사적 배경」, 『한국현대문학연구』, 52, 221- 264, 2017
 +
*네이버 지식백과,"현대평론",2022.6.7,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8256&cid=46645&categoryId=46645
 +
*네이버 지식백과,"조선문단",2022.6.7,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8730&cid=46645&categoryId=46645
 +
 +
=='''작성자 및 기여자'''==
 +
*[[박혜영]]
 +
*[[우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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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안]]
 +
*[[홍정인]]
 +
*[[노경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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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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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01년 출생]]
 +
[[분류:1932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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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함경북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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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주 최씨]]
 +
[[분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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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소설가]]
 +
[[분류:언론인]]
 +
[[분류:시인]]
 +
[[분류:한국의 작가]]
 +
[[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
 +
[[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
[[분류:카프]]
 +
[[분류:계급문학]]
 +
[[분류:신경향파]]

2022년 6월 15일 (수) 00:45 기준 최신판


개요

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는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는 호이다. 1920년대 경향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대표 작품으로는 《탈출기》(脫出記) , 《홍염》(紅焰), 《기아와 살육》이 있다.

생애

연도(연령) 약력
1901년 (1세) 1월 21일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10세)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15년 (15세) 시장 거리에 나가 『청춘』, 『학지광』 등의 잡지를 탐독하다가, 춘원의 글을 읽고 그를 존경하여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을 맺었다.
1918년 (18세) 간도로 이주하여 유랑 생활 시작했고, 부두 노동자, 음식점 점원 등 최말단 생활로 전전했다.
1923년 (23세) 간도로부터 귀국,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다. 이 무렵부터 서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24년 (24세) 춘원의 소개로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에 들어가 약 3개월간 기거하며 서구 문학을 공부했다.
1925년 (25세) 조선문단』사 입사하여, 작품 발표가 많아지면서 중견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김기진의 권유로 KAPF에 가입했다.
1926년 (26세) 창작집 『혈흔』을 글벗집에서 발간, 『조선문단』이 휴간되자 『현대평론』 담당 기자로 당분간 종사했다.
1927년 (27세) 조선문단』사에 복직했으나 얼마 있다 실직 후 기생들의 잡지 『장한』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1928년 (28세) 중외일보』 기자로 종사했다.
1929년 (29세) 『신생』의 문예 추천 작가로 위촉, KAPF 탈퇴, 가을에 『매일신보』기자가 되었다.
1930년 (30세) 매일신보』 학예부장 취임했다.
1931년 (31세) 5월 창작집 『홍염』을 『삼천리』사에서 간행했다.
1932년 (32세) 위문 협착증으로 수술받다 과다출혈이 문제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

작품 목록

소설

발표연월일 장르 구분 작품명 발표지 참고 사항
1924.1.23~2.4 단편 토혈 동아일보 처녀작
1924.10. 단편 고국 조선문단』 1호 추천 소설, 1924. 2 작. 데뷔작
1924.11. 단편 『매월』 창작집『혈흔』에 수록
1925.2. 단편 『십삼원』 조선문단』 5호
1925.3. 단편 탈출기 조선문단』 6호 1924. 10월호에는 선외가작으로 제목만 실림. 『사상계』30호(1956.1) 재수록
1925.4.6~13 단편 『향수』 동아일보
1925.4. 단편 『살려는 사람들』 조선문단』 7호 게재금지. 서문만 실렸다.
1925.5. 단편 박돌의 죽음 조선문단 1925.3 하순 작
1925.6.29 단편 『방황』 시대일보 소품
1925.6.30~7.1 단편 『보석반지』 시대일보
1925.6. 단편 기아와 살육 조선문단 1925. 5. 17 작
1925.9. 단편 『기아』 『여명』 1925.7 작
1925.12. 단편 큰물 진 뒤 『개벽』
1926.1.1~5 단편 『오원칠십오전』 동아일보 1925.12.24 작
1926.1. 단편 『폭군』 『개벽』
1926.1. 단편 『그 찰나』 시대일보 미완
1926.1. 단편 『설날밤』 『신민』 9호 1925.11 작
1926.2. 단편 『백금』 『신민』 10호 1925.12.2 자시 작
1926.2. 단편 『의사』 『문예운동』 1925.11.24 조 작
1926.3. 단편 『소살』 『가면』
1926.3. 단편 해돋이 『신민』 11호 1924.11. 15 작
1926.5. 단편 『그믐밤』 『신민』 13호 『자유문학』 19호(1958.10) 재수록
1926.5. 단편 『담요』 조선문단 『사해공론』(1935.5)에 소설로 재수록
1926.6. 단편 『금붕어』 조선문단』 17호
1926.7.12 단편 『만두』 시대일보 『실생활』(1931.9.10)에 재수록
1926.7. 단편 『누가 망하나』 『신민』 15호 6.29 작
1926.8. 단편 『농촌야화』 『동광』 4호 게재 금지
1926.9. 단편 『팔개월』 『동광』 5호 7.20 오전 4시 작
1926.9. 단편 『아내의 자는 얼굴』 『조선지광』
1926.10. 단편 『지류』 『신민』 18호 6.23 작
1926.11.14 단편 『홍한녹수』 매일신보 연작 소설, 소제목『남은 꿈』
1926.11. 단편 『이역원혼』 『동광』 7호 10.3 오전 2시 작
1926.11. 단편 『동대문』 『문예시대』 1호 10.8 정오 작
1926.12.28 창작집 『혈흔』 『글벗집』 수록 작품:『혈흔』(서문), 『보석반지』,『박돌의 죽음』, 『기아』,
『매월』, 『탈출기』, 『향수』, 『기아와 살육』,『미치광이』,『고국』,『십삼원』 11편
1926.12. 단편 『무서운 인상』 『동광』 8호 11.3 오 작
1926.12. 단편 『돌아가는 날』 『신사회』
1926.12. 단편 『미치광이』 창작집 『혈흔』에 수록
1927.1.1 단편 『쥐 죽인 뒤』 매일신보
1927.1.11~15 단편 『서막』 동아일보
1927.1. 단편 홍염 조선문단 1926.12.4 오전 6시 작
1927.1. 단편 『전야사』 『동광』 9호
1927.1.1 단편 『낙백불우』 『문예시대』
1927.2. 단편 『가난한 아내』 『조선지광』 미완
1927.5. 단편 『이중』 『시대평론』 게재 금지
1928.1. 단편 『갈등』 『신민』
1928.4.4~12 단편 『폭풍우시대』 동아일보 미완
1928.8. 단편 『용신난』(1) 『신민』 미완
1928.10.6~21 단편 『부부』 매일신보 8월 작
1929.1.1~2.26 단편 『먼동이 틀 때』 조선일보
1929.1. 단편 『전기』 『신생』 4호 1928.12.14 작
1929.2. 단편 『인정』 『신생』 5호 1월 작
1929.3. 단편 『물벼락』 조선일보』 4호 꽁트
1929.3. 단편 『경계선』 『중성』
1929.4.15~22 단편 『차중에 나타난 마지막 그림자』 조선일보
1929.4. 단편 『주인아씨』 『신생』
1929.4. 단편 『수난』 『학생』 미완~문단 삼최씨 연작소설(대제목, 무제)
1929.5.24 단편 『여름음악가』 동아일보 연작소설
1929.9. 단편 『같은 길을 밟는 사람들』 『신소설』 1호
1929.12. 단편 『무명초』 『신민』 52호
1930.2. 단편 『누이동생을 따라』 『신민』
1930.5.15 창작집 홍염 『삼천리』 수록작품:『갈등』, 『저류』, 『홍염』 3편
1930.9.20~ 1931.8.1 장편 『호외시대』 매일신보 310회 연재

수필

발표연월일 장르 구분 작품명 발표지 참고 사항
1918.3. 수필 『우후정원의 월광』 『학지광』 15호 발표 당시는 산문시로 발표
1918.3. 수필 『추교의 모색』 『학지광』 15호
1918.3. 수필 『반도청년에게』 『학지광』 15호
1923.7.29 수필 『고적』 동아일보
1924.10. 수필 『여정에서』 조선문단 선외 가작, 제목만 표시
1925.3. 수필 『그리운 어린 때』 조선문단』 6호 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
1925.7. 수필 『전생명의 요구는 아니다』 조선문단』 10호 제가의 연애관
1925.8. 수필 『여름과 물』 조선문단』 12호
1925.10. 수필 『해운대』 『신민』
1925.11. 수필 『병우조운』 조선문단
1925.11. 수필 『혈흔』 조선문단 창작집『혈흔』의 서문
1926.4. 수필 『흐르는 이의 군소리』 조선문단
1926.6.2 수필 『연주창과 독사』 동아일보
1926.7.10~13 수필 『신음성』 동아일보
1926.7. 수필 『운과 인생』 『가면』
1926.8. 수필 『쌍포유기』 『신민』 16호
1926.11. 수필 『천재와 범재』 『문예시대』 1호
1927.1. 수필 『미덥지 못한 마음』 조선문단
1927.1. 수필 『잡담』 『문예시대』
1927.8. 수필 『여름과 나』 『동광』
1928.4.22 수필 『성동도』 조선일보
1928.7.10 수필 『근감』 동아일보
1928.9.23 수필 『값없는 생명』 조선일보 혜음(1)
1928.9.25~26 수필 『면회사절』 조선일보 혜음(2)(3)
1928.9.27 수필 『수박』 조선일보 혜음(4)
1928.9.28 수필 『파약의 비애』 조선일보 혜음(5)(6)(7)
1929.3. 수필 『매화 옛등걸』 중외일보
1929.3. 수필 『봄! 봄! 봄!』 『신생』 6호
1929.4. 수필 『병신의 넋두리』 『조선농민』
1929.6. 수필 『봄을 맞는다』 『학생』 2호
1929.6. 수필 『달리소』 『신생』 9호
1929.8.21~24 수필 『가을을 맞으며』 동아일보
1929.8.25~26 수필 『숙연한 우성』 동아일보
1929.8.29~9.1 수필 『가을의 마음』 동아일보
1929.8. 수필 『어느 곳 풍경』 『학생』 5호
1929.9. 수필 『이중명추』 『학생』
1929.11. 수필 『아내의 불행과 이혼 문제』 『삼천리』 3호
1930.3. 수필 『입춘을 맞으며』 『별건곤』 27호
1930.6. 수필 『신부와 나』 『별건곤』 29호
1930.9. 수필 『의문의 그 여자』 『신소설』 5호
1930.10. 수필 『탈』 『신생』 24호
1931.11. 수필 『깊어가는 가을』 『신생』
1932.4. 수필 『K화상의 눈』 『동방평론』
1932.5. 수필 『그늘에 핀 꽃을』 『삼천리』
1932.12. 수필 『반역의 여성』 『삼천리』

평론

발표연월일 장르 구분 작품명 발표지 참고 사항
1924.12. 평론 『근대로서아문학개관』 조선문단 생전장강 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5.1. 평론 『근대영미문학개관』 조선문단』 4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5.2. 평론 『근대독일문학개관』 조선문단』 5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6.1. 평론 『감과 배』 『가면』
1926.8.7~17 평론 『칠팔월의 소설』 동아일보 4회 연재
1927.7. 평론 『문단시감』 현대평론 1933.7.6『매일신보』에 재수록
1927.9. 평론 『문예시감』 현대평론
1927.11. 평론 『조선문학 개척자』 중외일보 부제 『국초 이인직씨와 그 작품』
1927.12. 평론 『데카단의 상징』 『별건곤』 10호
1928.1.8~11 평론 『문예시감』 조선일보 3회 연재
1928.4. 평론 『소년소녀와 영화극문제』 『신민』
1928.8.2 평론 『제재 선택의 필요』 중외일보
1928.9. 평론 『신소설 초기와 이인직』 『한빛』 동권 7호 일제 검열로 미발간
1929.7.2~3 평론 『문예와 시대』 동아일보 열일고어(1)(2)
1929.7.4 평론 『내용과 기교』 동아일보 열일고어(3)
1929.7.5~10 평론 『노농대중과 문예운동』 동아일보 열일고어(4)(5)(6)(7)(8)
1929.7.12~14 평론 『조선의 특수성』 동아일보 열일고어(9)(10)
1929.7. 평론 『새해을 마치면서- 내가 생각하는 조선문단진흥책』 『별건곤』
1930.7. 평론 『작가가 본 평론가』 『삼천리』 7호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

기타

발표연월일 장르 구분 작품명 발표지 참고 사항
1918.3.3 독후감 『『개척자』를 독하고 소감대로』 매일신보
1918.6. 산문 『춘효설경』 『청춘』 14호 독자 문예 가작, 제목만 표시
1923.6.9 시조 『춘교에서』 동아일보 『춘교』라고도 함
1923.9. 『자신』 『북선일일신문』 내용 미상, 서해란 호를 사용
1923.9. 동화 『누구의 편지』 『신생명』
1923.12. 동화 『평화와 임금』 『신생명』
1925.3.25 『시골소년이 부른 노래』 동아일보
1925.4. 일기 『?! ?! ?!』 조선문단』 7호 일기와 수감
1925.7.8 시조 『우음』 동아일보 1925. 5. 25 탈고
1925.12. 『세 처녀』 『문명』 1호 산문시
1927.1. 앙케이트 『우리의 감정에서 울어나는 글을』  ?
1927.1. 앙케이트 『문단 침체의 원인과 그 대책』 조선문단
1927.2. 대담 『문사방문기』 조선문단
1927.8. 잡문 『도향에게』 현대평론
1928.1. 앙케이트 『조선을 안 뒤라야』 『조선지광』
1928.2. 앙케이트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여자』 『별건곤』 특집『옛날의 그이』
1928.5.16~8.30 번안 『사랑의 원수』 중외일보 연재 80회, 탐정소설
1928.12. 앙케이트 『하루 시간을 어떻게 쓰나』 『별건곤』 각 방면 명사의 일인 생활
1929.1. 번역 『행복』 『신민』 45호 알치 바세푸 원작. 중도청 일역. 서해 중역
1929.1. 앙케이트 『결국은 빵 문제』 『별건곤』 18호
1929.1. 앙케이트 『나의 소설은 보기 어렵다고』 『별건곤』 18호
1929.6. 앙케이트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삼천리』 1호
1929.10. 동화 『토끼와 포도』 『신생』 번역, 마태로 원작
1930.2. 잡문 『굶어본 이야기』 『별건곤』
1930.5. 앙케이트 『내가 본 나(명사의 자아관)』 『별건곤』
1930.5. 잡문 홍염』과 『탈출기 『삼천리』
1930.5. 잡문 『아호의 유래』 『삼천리』 6호
1930.8.19~22 탐방기사 『모범 농촌 순례』 매일신보
1930.9.14 잡문 『호외시대』 예고 매일신보
1930.10. 잡문 『고시조 한 장을』 『삼천리』 9호
1931.1. 잡문 『내가 감격한 외국 작품-골키의 3인』 『삼천리』
1931.2. 잡문 『내가 본 내 얼굴』 『별건곤』
1934.9. 『님 찾아서』 『월간 매신』 유고

작품 특징과 배경

특징

주인공이 모두 하층민으로 모순된 환경에 대해 저항하며, 극빈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은 궁핍에 허덕여 처참한 생활 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원망 및 저주하며 반역하고 투쟁을 결심하고 실제로 투쟁을 하기도 한다.

피: 참담한 상황에서 토하거나 뿌려지는 피는 소설 전반을 지배. 공포, 잔인, 원한, 저주의 의미를 내포한다.

죽음: 전기 작품에서는 본인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켜 하층민의 궁핌한 상황과 빈곤한 삶을 나타낸다. 후기 작품에서는 타인을 인지하고 인간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층민의 개인적 차원의 강렬한 죽음에서 지식인의 객관적이고 보편적 죽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주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의 사실성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품의 주로 등장하는 가출 모티브, 환상 장면, 액자 소설에 나타나는 관점 등이 있다.

배경

1910~1918년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일제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수탈을 시작했다. 이때 전 국토의 40%를 일본이 차지하게 되며 땅이 없어진 농민들이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이 되어 착취를 당했다. 1920~1934년 일본의 식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이 이루어졌고, 이후 농민들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허덕였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삶이 고단했던 일부 사람들은 간도만주, 연해주로 돈벌이를 위해 이주하였다.

작품 경향

신경향파 문학

192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 경향의 문학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20년대 초의 감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백조파와 창조파 문학 따위를 비판하며 전개된 문학 사조로, 3.1운동 직후의 병약한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192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사회주의적인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출발했다. 신경향파의 특징은 빈곤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위 빈궁문학으로,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하층민들의 반항적 요소가 강하고, 결말은 살인과 방화 등으로 끝난다. 삶에 대한 최후의 선택으로 결말을 맺지만 그 심층에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반어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계급주의 문학

계급 문학 = 프롤레타리아 문학 :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한 문학
사회주의의 이념을 선전하거나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을 형상화한 문학이다. 이것은 17, 18세기 서구 리얼리즘 문학의 현실인식 방법과 19세기 혁명적 민주주의 문학의 유산을 계승하여 리얼리즘 문학계열의 한 축을 형성하였고 193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으로 정착하였다. 동시에 계급주의 문학은 인간을 계급적인 존재로서 발견하고, 계급지배 체제로의 변혁에 순응하는 새로운 혁명적 인간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제까지의 개인주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상황과 인간성과의 새로운 긴장과 전개, 새로운 시야와 감수성과 사고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사상 종래에 없던 사회주의 문예사조와 그 작가 및 작품을 등장시켰다.

관련 항목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