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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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준 (2011197)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2월 5일 (토) 00:16 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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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에 위치한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현재 정식 명칭은 서울 탑골공원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탑골공원, 탑공원, 탑동공원(塔洞公園), 그리고 파고다 공원이라고도 불렸다.

이름의 유래

본래 이 일대는,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탑골 또는 탑동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공원이 탑골공원 말고도 탑동공원(塔洞公園)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또한, 이 공원의 또다른 이름인 파고다 공원파고다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로, 빈 공터로 남아있던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도록 건의한 영국인 브라운(John McLeavy Brown: 1835~1926)이 ‘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을 담아서 이 공원을 파고다 공원(Pagoda Park)이라고 부르는 것을 건의했을 거라는 가설이 있다.

다음으로, 조선 후기의 사람들은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백탑이라고 불렀는데, 이 백탑(Pagtab)이라는 음이 변해서 파고다가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2]

이용안내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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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지하철 역 지하철 노선 도보시간
표 2-1. 지하철
종로3가역1번출구 1호선 도보 3분
종로3가역2-1번출구 3호선 도보 5분
종로3가역(탑골공원)5번출구 5호선 도보 4분


  • 버스
버스정류장 버스번호 도보시간
표 2-2. 버스
남인사마당 (순환)03 도보 3분
금강제화 (마을)종로01, 종로02 도보 2분
종로2가사거리 (간선)470, 741, N37

(직행)1150, 5007, 9003, 9300

(급행)8100

(광역)M4101, M4102

도보 4분
인사동.탑골공원 (관광)TOUR11 도보 3분
종로3가.탑골공원 (간선)101, 103, 140, 143, 150, 160, 201, 260, 262, 270, 271A, 271B, 273, 370, 720, 721, N15, N26, N62

(지선)7212

(직행)9301

(순환)04

도보 3분

시설의 변화

1897~1909

원래 이곳에는 절이 위치해있었다. 고려 때는 흥복사라 불렸고, 조선 전기에 절을 넓히면서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으로 인해 연산군중종 때 절이 폐사되었다. 그 후, 탑골공원은 텅 비어있는 공터로 남아있었다. 이는 이자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1897년에 작성한 기행문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당시의 빈 터를 "백색 석탑은 빽빽이 들어선 주택을 뒤에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데,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나무가 울창한 숲을 가지고 있다. (…중략…) 석탑자리는 옵쭉 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석탑 전체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은 아마도 근처의 담으로 기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이자벨라 비숍, 1994: 56-57)"[3]라고 묘사했다.

그러다 1897년, 영국인 총세무사 브라운(John McLeavy Brown: 1835~1926)의 이곳을 근대 공원으로 조성하자고 고종에게 건의했다. 마침, 백성의 집회를 허용할 겸 근대도시의 상징적 표상으로서 경운궁 앞에 도시공원을 도입하고자 했던 고종에 의해 승인되었다.[4] 이에 따라, 1902년 개원 이전까지 공원부지 확보를 위한 민가 철거와 간단한 공원시설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가와의 구분을 위한 담장과 북문과 남문이 먼저 조성된 후 팔각정이 조성되었다.

1910~1944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 탑골공원의 관할은 1910년 10월 1일부터 총독부로 이관되었다. 총독부는 탑골공원에 연평균 2,170원 50전을 투입해서 정자, 벤치, 화단, 회유도로, 전등, 수도, 온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고, 벛꽃과 상록수를 심었다.[5]


이후, 1913년 7월 17일부터 평일 이용 시간을 정해서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전등 설비의 설치가 완료되서 야간 개방도 허용되었다. 이처럼 일반인에게 공원이 공개되면서, 상업시설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입찰 끝에 '청복당'이라는 가게가 선정되었다. 이 가게는 1914년 봄에 착공을 시작해서 같은 해 준공을 마쳤으며, 이 가게가 있던 건물은 1924년 이후에 '승리'라는 일식집으로 변경 후 증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못의 중앙에는 길이 3.5m의 다리가, 연못 좌측에는 등나무 그늘시렁인 ‘등책(藤柵)’이 설치되었다. 이 둘은 전면에서 보면 연못과 팔각정이 보이도록 배치되었다.[6] 이와 더불어서, 북부경찰서 신청사와 이왕직 양악대의 입지로 탑골공원은 기존의 타원형에서 입구가 넓어진 비대칭 형태로 바뀌었다.[7]


그 후 1932년, 탑골공원 내부에 아동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공원의 관리권을 총독부에서 옮겨받은 경성부는 상업시설을 철거하고 아동유원지를 설치했다. 이후 1934년에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대원각사비가 각각 문화재 제 1455호와 제1471호로 지정되면서, 탑골공원은 도시공원, 아동유원지 그리고 문화재가 서로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는 1940년에 탑골공원이 공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견고해졌다.[8]

1945~2000

해방 이후, 탑골공원은 황폐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북문의 외곽에는 판자집 촌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동문의 담장에는 빈민가옥이 인접해서 축조되어 있었다. 이는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팔각정 주변의 녹지대는 사라졌으며, 과거의 울창했던 산림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이후 1956년 3월 탑골공원에 조각가 윤호중의 작품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가, 1960년 4․19 혁명당시 철거된 것을 제외하면 1960년까지 탑골공원에 큰 외형적 변화는 없었다. 그 후 1963년 8월 15일, 3.1독립선언기념탑이 건설되었고, 이와 함께 팔각정에 대한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1966년에는 의암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동상이 진입부에 세워졌다.[9]


탑골공원의 대대적인 변화는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도시개발사업에 따라 공원 주변에 있었던 불량주택들이 철거되었고, 인근에 위치했던 사창가가 이전되었다. 또한, 공원 외부에 있던 도서관이 이전되면서 기존의 부지가 공원에 편입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왔던 철제 정문은 현재의 맞배지붕 양식의 정문으로 바뀌었다. 이 정문은 국보 제51호인 강릉 객사문을 모방해서 지어졌으며,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작성되었다.[10]


다음으로, 탑골공원의 좌측에서 후면을 두르는 파고다 아케이드의 축조[11]로 인한 내부의 공간변화가 일어났다. 공원 내에 위치했던 음악당이 철거되었으며,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부각 10경이 진열되었다. 동시에, 휴게실, 어린이놀이터, 분수, 저수지가 정비되었고, 수목 천 그루가 심어졌다. 이를 통해, 주변의 녹지대가 좀 더 조형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12]


1979년에는 인사동에서 낙원동까지의 길이 80m 도로의 폭을 15m로 확장하면서, 공원이 전체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와 더불어서, 3.1운동 60주년을 맞아서 3.1독립선언 기념탑이 재건립되었다.[13]


1983년에 이르러서, 파고다 아케이드가 무상사용 시한인 15년이 지남에 따라 철거되었다.[14] 이에 따라 북문과 남문의 사주문의 축조가 이루어졌고, 공원 좌측과 우측에 각각 화강석 투시형 담장(73m)과 사고석 담장(113m)이 신축되었다. 추가로, 파고다 아케이드에 부착되어 있었던 3․1운동기념부조 10개를 이전했고, 파고라 등의 편의시설을 확충했다.[15]


1984년에서 1986년까지 몇 차례의 보수 공사가 이어졌고, 1988년에는 공원이 무료로 개방되면서 공원의 휴게시설이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팔각정이 서울시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탑골공원은 국가지정문화재 제354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명칭이 탑골공원으로 통일되었다.[16]


1997년에는 IMF로 인해 노인과 실업자의 이용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2000년까지 계속해서 공원에 적합한 시설의 증가 및 보수가 이루어졌다.[17]

2000~

2000년이 되면서, 서울시는 탑골공원을 독립운동의 성역으로 바로 세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역사적 상징성과 관련된 시설을 보강하고 정비하기 위해 3.1운동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공원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18]

이를 위한 현상공모 및 당선작 선정 후, 절차에 따라 문화재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사라졌던 우물을 복원했다. 그 후 공원 내 팔각정과 담장 등의 시설에 대한 보수를 마친 후, 2002년 3월 1일에 재개원했다.

당선작을 기반으로 진행된 재정비사업은, 탑골공원이 상징성과 기념성이 강조되는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선을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손병희 선생 동상과 3.1독립기념비의 위치를 동쪽으로 변경했다. 팔각정 주변은 기존의 녹지대에서 경화토 포장으로 바뀌면서 원형 광장같은 모습이 되었다.[19]

2011년 7월 28일, 정식명칭이 탑골공원에서 서울 탑골공원으로 바뀌었다.[20]

사건사고

3.1운동

삼일문 박정희 친필현판 철거 사건

문화재

관련 자료

영상

사진

작성자

홍석준

출처 및 참고문헌

출처

  1. 사적 제354호 서울 탑골공원 (서울 塔골公園),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013.12.23,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region=2&searchCondition=%ed%83%91%ea%b3%a8%ea%b3%b5%ec%9b%90&searchCondition2=&s_kdcd=00&s_ctcd=00&ccbaKdcd=13&ccbaAsno=03540000&ccbaCtcd=11&ccbaCpno=1331103540000&ccbaCndt=&ccbaLcto=&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ccbaPcd1=&chGubun=&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pageNo=1_1_2_0 (2020.12.03)
  2. "탑골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12.03,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35 (2020.12.03)
  3.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16쪽
  4. 김혜경 외 3명, 「설계도서를 중심으로 본 1910년대 탑골공원의 성립과정」, 한국전통조경학회지, 제2권, 2013, 105-107쪽
  5.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20쪽
  6.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22-123쪽
  7.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20쪽
  8.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22쪽
  9.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28-130쪽
  10.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1쪽
  11. "새모습보일 파고다公園(공원)", 경향신문, 1967.03.13,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7031300329206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03-13&officeId=00032&pageNo=6&printNo=6588&publishType=00020 (2020.12.03)
  12.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1쪽
  13.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2쪽
  14. "16年(연)만에 헐리는 파고다 아케이드", 동아일보, 1983.07.04,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7040020921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7-04&officeId=00020&pageNo=11&printNo=18999&publishType=00020 (2020.12.03)
  15.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2쪽
  16.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3쪽
  17.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3-134쪽
  18.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5쪽
  19. 김혜경,「탑골공원, 기억의 층위에 대한 해석」,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4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4, 136쪽
  20. 사적 제354호 서울 탑골공원 (서울 塔골公園),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013.12.23,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region=2&searchCondition=%ed%83%91%ea%b3%a8%ea%b3%b5%ec%9b%90&searchCondition2=&s_kdcd=00&s_ctcd=00&ccbaKdcd=13&ccbaAsno=03540000&ccbaCtcd=11&ccbaCpno=1331103540000&ccbaCndt=&ccbaLcto=&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ccbaPcd1=&chGubun=&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pageNo=1_1_2_0 (2020.12.0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