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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1일 (목) 15:20 판


소개

19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한 한용운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동시에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기존의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님의 침묵》과 《조선불교유신론》등이 있다.

일생

한용운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고 수 많은 시를 남긴 시인이다. 또한 동시에 소설을 연재한 문학인이기도 하다.

한용운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호 만해(萬海·卍海)이며,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이다. 4세 때 임오군란(1882)이 일어났으며 6세 때부터 향리 서당에서 10년 동안 한학을 익혔다. 1894년 16세 되던 해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이 일어났다. 이러한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집에서 안주하고 있을 수 없어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절의 일을 거들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출가 직후에는 오세암에 머물면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배우다가 이후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깊은 나머지 블라디보스톡 등 시베리아와 만주 등을 여행하였다. 1905년 재입산하여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곡(連谷)을 은사로 하여 정식으로 득도하였다.

불교에 입문한 뒤로 주로 교학적 관심을 가지고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주력하였다. 또한 그는 3.1운동 때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하였고, 한국 근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는 대표 시집《님의 침묵》을 발간하였으며, 일제에 대항하는 단체였던 신간회를 결성하는 등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받쳤다.

하지만 그는 일제강점기를 이겨낸 조국의 광복을 지켜보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 성북구에 있는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경력사항

경력사항
1930.05 만당 당수
1927 경성지회 회장
1927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1924 불교청년회 회장
1923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상무위원
1913 불교학원 교원
1905 백담사 승려

수상내역

수상내역
19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한용운 연보

한용운 연보(1879.08.29~1944.06.29)
1879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의 아들로 출생.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1892 전정숙과 결혼.
1894 동학농민운동에 가담.

이후 인제군 백담사로 들어가 불교에 심취.

1908 조선 전국 사찰 대표 52인에 참여.
1913 통도사 불교강사 취임.

조선불교유신론》 간행.

1914 《불교대전》 저술.

조선불교청년동맹 결성.

1917 《정선강의 채근담》 발간.
1918 월간지 《유심》 창간.
1919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참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함.

독립선언서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

후에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3년간 복역.

1926 시집 《님의 침묵》 출판. <가갸날에 대하여> 《동아일보》에 발표.
1927 신간회 중앙위원회 위원 지냄..
1931 《불교》지를 인수함.
1932 수필 <평생 못 잊을 상처>를 《조선일보》에 발표.
1935 장편 《흑풍》 연재.
1944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자택 심우장에서 사망.
1973 7월 《한용운전집》 간행.
1997 백담사에 만해기념관 건립.

작품세계

그의 작품세계에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담담하면서도 여성적인 어조를 통해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는 것에 있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당신'은 사랑하는 이를 표현함과 동시에 조국의 광복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떠한 어려움에 있어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꾸준히 기다리겠다는 '저항정신'과 '극복정신'을 보여준다.

대표작품

  • 님의 침묵
  • 나룻배와 행인
  • 당신을 보았습니다
  • 복종
  • 알 수 없어요
  • 이별은 미의 창조
  • 찬송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한용운 독립운동가 한용운독립운동가이다.
한용운 일제강점기 한용운일제강점기시대 때의 인물이다.
한용운 3.1운동 한용운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한용운 심우장 한용운심우장에서 일생을 보냈다.
한용운 님의 침묵 한용운님의 침묵을 썼다.

참고문헌 및 사진출처

네이버 인물검색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