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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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다. 나도향의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1902년 3월 30일 서울 청파동 1이 56번지에서 출생. 나성연(羅聖淵)과 김성녀(金姓女) 사이의 1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도향의 소설은 초기에는 백조파 특유의 감상적(感傷的)이고 환상적인 경향으로 흘렀으나, 「여이발사」 이후에 사소한 사건이라도 냉철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조명하였다.


생애

  • 1917년 공옥학교(攻玉學校)를 거쳐,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학비가 송달되지 않아서 귀국하였다.
  • 1919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 1926년 일본에 다시 건너가 수학의 뜻을 이루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926년 8월 26일 결핵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배재고보를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문학 수업을 위하여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그러나 조부가 학비를 보내지 않자, 되돌아와 1919년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1921년 『배재학보』에 「출향」을 발표하고, 뒤이어 『신민공론』에 단편 「추억」을 발표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했다. 1922년에는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 그리고 현진건(玄鎭健)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제2호에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을 발표했다. 또한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幻戱)」를 연재하여 소년 문사로 주목을 받았다.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1922), 「17원 50전」(1923), 「은화」(1923), 「춘성(春星)」(1923) 등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다가, 「여이발사」, 「행랑자식」 등을 발표하면서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한다. 1924년에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을 발표하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 등의 완숙한 작품을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


1926년에 수학(修學)의 뜻을 품고 일본에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후 폐병을 앓으면서 단편 「피 묻은 몇 장의 편지」, 「지형근」, 「화염에 싸인 원한」 등을 발표했다. 1926년 8월 26일 사망했다. 사후에 장편 「어머니」(1939)가 출간되었다. 그는 가통인 의술을 이으려는 조부의 고집으로 방랑과 낭만의 꿈이 짓밟혀 실연과 병과 가난 속에서 단편 20여 편과 장편 2편, 그리고 「그믐달」(1925) 등 수필 몇 편을 남기고 있다. 그의 소설은 초기에는 백조파 특유의 감상적(感傷的)이고 환상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여이발사」 이후에 사실적인 경향으로 변하여 사소한 사건이라도 냉철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인 「뽕」, 「물레방아」 같은 수작을 남겼으며, 탐미적 경향인 「벙어리 삼룡」으로 단편소설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작품목록

  • 출학
  • 젊은이의 시절
  • 추억
  •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 환희
  •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 십칠원 오십전
  • 은화 백동화
  • 행랑자식
  • 춘성
  • 여이발사
  • 진정
  • 자기를 찾기 전
  •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 J의사의 고백
  • 계집 하인
  • 벙어리 삼룡
  • 물레방아
  • 지형근
  • 피묻은 편지 몇 쪽
  • 화염에 싸인 원한
  • 청춘
  • 어머니
  • 젊은이의 봄


외부 링크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나도향 [羅稻香]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도향(羅稻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