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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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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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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가장 중시하는 사상으로, 19세기 이래 근대 국가 형성의 기본 원리가 되었으며, 분열되어 있는 민족의 정치적 통일을 목표로 하는 형태와 외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나 독립을 목표로하는 형태로 크게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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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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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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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과 주장이 있기에 한 가지로 정리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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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영국]] 기원론, [[프랑스]] 기원론과 함께 최근에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크레올]](Creole)로부터 출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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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Eric J. Hobsbawm)은 19세기 말 이후 시민권 확산 등과 같은 동질화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민족주의가 확산되었다고 주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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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18세기 남미 크레올에 의해 민족됨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기 시작한 반면 유럽은 19세기 들어와서야 민족주의가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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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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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민족]]과 민족주의가 수용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20세기 초반으로 여겨진다. 초창기에는 ‘nation’과 민족이 서로 대칭되지 않는 등 일정한 혼란이 있었지만 1910년대 이후로 ‘nation’의 번역어로 민족이 고정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은 [[중국]]과 [[일본]]에서 ‘nation’과 ‘nationalism’을 번역한 것인 바 당시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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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나타난 것은 [[식민화]] 경험을 통해서였다. 특히 1919년 [[3·1운동]]은 한국 민족주의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는데, [[3·1운동]]을 통해 비로소 전 주민 집단이 동등하고 단일한 민족 구성원으로 재현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 제국주의라는 이민족 지배자를 타자로 상정하고 그에 대립되는 주체로서 단일한 민족집단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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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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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한국에서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는 크게 보수적 우파와 좌파 사회주의 계열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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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우파는 주로 국내에서 [[단계론적]] 관점에서 [[계몽운동]], [[실력양성운동]]에 치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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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사회주의]] 계열은 노동자·농민에 기반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전위당]] 건설과 [[대중운동]], 그리고 [[무장투쟁]]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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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외에서도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는 대표적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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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근대적 [[공화국]] 형태를 취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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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열은 [[전위당]] 건설과 [[대중운동]], 그리고 [[무장투쟁]] 중심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유의어==
 
===내셔널리즘===
 
국가의 공동체적 이념을 강조하고 통일, 독립, 발전을 꾀하는 주의.
 
  
===민족 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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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저항 민족주의]]로 시작해 지배 권력의 동원이데올로기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가장 중시하는 사상. 민족주의와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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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일제 식민지기에 [[제국주의]] 반대라는 [[저항 민족주의]]를 출발했지만,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각각 지배권력의 체제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동원되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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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60년 [[4·19 혁명]] 이후로 민족주의가 지배 권력에 저항하는 [[담론]]으로 전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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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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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 민족주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혈통과 언어, 문화와 관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  
국민의 이익이나 권위를 지키고 확립하려는 태도나 경향.
 
  
==관련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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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저항 민족주의]]가 아닌 팽창적, 공격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점차 커진 상태이기도 하다.
===민족주의 문학===
 
민족의 번영과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08년~1919년 일제 침략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계몽과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민족주의 문학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광수]]와 [[최남선]]이 있다.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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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어==
===정치===
 
중국의 쑨원이 제창한 삼민주의 가운데 하나로, 국내 여러 민족의 평등과 외국의 압박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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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민요나 민속 춤곡 따위에 표현되어 있는, 자기 국가나 민족의 고유한 음계, 리듬, 형식을 사용하여 예술적인 음악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나 경향이다.
+
국가의 [[공동체]]적 이념을 강조하고 통일, 독립, 발전을 꾀하는 주의.
  
==민족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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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지상주의]]===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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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가장 중시하는 사상. 민족주의와 같은 말.
한국의 근대사에서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으로 민족적 자주권이 상실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민족주의 운동은 강화도조약(1876)을 기점으로 싹트기 시작한다. 강화도조약은 일제의 무력에 의한 강압적 방법으로 한국을 점령하려는, 이전과 다른 현상이었고, 국내 일각에서 국가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를 보전하기 위한 민족적 움직임이 싹텄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두 가지 입장이 있었다. 외세를 배격하여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주장과 서구 선진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근대화를 통한 국력 배양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국가의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결국 모두 민족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주의 사상은 물리적 힘으로 외세를 배격하고 그에 대항하는 [[의병투쟁]]과 민중을 교육하고 계몽함으로써 독립을 지키려는 [[애국계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애국계몽운동은 국내 지식인에 의한 교육활동과 외국의 문물을 배워 온 신지식인의 활동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의 침략행위가 강화될수록 민족주의운동도 더욱 다양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외국과 연계한 대외활동, 언론운동, 친일파 대신과 외국 외교관, 일본 침략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공격 등의 민족운동이 계속되었고, 계속되는 일제의 착취와 탄압은 민족주의 정신을 민중 속으로 확산시켰다. 1919년 [[3.1운동]]으로 [[항일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었고, 민족주의 정신은 [[광복]]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민족주의 문학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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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의]]===
민족주의 문학 운동은 민족 문학파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족 문학파는 [[한글 운동]], [[농촌 계몽 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시조와 역사 소설 및 농촌 소설의 개척과 발전과 같은 창작을 통해서 민족주의 정신을 이끌었다. [[한글 운동]]의 중심은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이 모인 [[조선어연구회]]로, [[장지영]], [[권덕규]], [[이병기]], [[최두선]], [[신명균]], [[김윤경]] 등이 모여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하기 위해 조직된 연구회이다. 이들은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8주갑을 맞아 '가갸날'(오늘의 한글날)을 제정하였으며, 민족어의 전승 개발을 통하여 한국 문화와 정신사에 많은 공헌을 끼쳤다. 이후 [[조선어학회]]는 민족지인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광수]]가 브나로드 운동의 시범작으로 <[[흙]]>을 동아일보에 발표햇고, [[심훈]]의 <[[상록수]]> 또한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신의주 형무소에 수감 중인 채수반을 모델로 한 <[[흙]]>과, 곰보 처녀이지만 신앙과 봉사 정신으로 산 귀감이 되는 [[최용신]]을 주인공으로 한 <[[상록수]]>는 대표적인 한국 농촌 문학의 걸작이며 국민들에게 민족애를 고취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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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이익이나 권위를 지키고 확립하려는 태도나 경향.
민족주의 문학 운동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최남선]], [[이광수]], [[이병기]], [[조운]], [[이은상]]의 [[시조 부흥 운동]]이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주의]]의 복고적인 문학 형식으로 시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리하여 문학사상 [[시조]] 장르가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된다.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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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어휘==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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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문학]]===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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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번영과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08년~1919년 일제 침략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계몽]][[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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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S)]] || [[목적어(O)]] || A는 B를 ~하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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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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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문학]]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광수]]와 [[최남선]]이 있다.
*"민족주의".<네이버 국어사전>
 
*"민족지상주의".<네이버 국어사전>
 
*"국민주의".<네이버 국어사전>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 <네이버 국어사전>
 
  
 +
==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F%BC%EC%A1%B1%EC%A3%BC%EC%9D%98&ridx=0&tot=243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및 기여자==
+
==작성자==
[[한지원]]
+
[[조윤재]]
  
[[분류:개념/용어]] [[분류:민족주의]] [[분류:한지원]] [[분류:기여자이름]]
+
[[분류: 개념어]] [[분류: 정치]] [[분류: 근대]] [[분류: 민족]]

2022년 6월 15일 (수) 20:55 기준 최신판


정의

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


기원

민족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과 주장이 있기에 한 가지로 정리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대체적으로 영국 기원론, 프랑스 기원론과 함께 최근에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크레올(Creole)로부터 출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홉스봄(Eric J. Hobsbawm)은 19세기 말 이후 시민권 확산 등과 같은 동질화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민족주의가 확산되었다고 주장하며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18세기 남미 크레올에 의해 민족됨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기 시작한 반면 유럽은 19세기 들어와서야 민족주의가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민족주의

한국에 민족과 민족주의가 수용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20세기 초반으로 여겨진다. 초창기에는 ‘nation’과 민족이 서로 대칭되지 않는 등 일정한 혼란이 있었지만 1910년대 이후로 ‘nation’의 번역어로 민족이 고정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은 중국일본에서 ‘nation’과 ‘nationalism’을 번역한 것인 바 당시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나타난 것은 식민화 경험을 통해서였다. 특히 1919년 3·1운동은 한국 민족주의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는데, 3·1운동을 통해 비로소 전 주민 집단이 동등하고 단일한 민족 구성원으로 재현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 제국주의라는 이민족 지배자를 타자로 상정하고 그에 대립되는 주체로서 단일한 민족집단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1운동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제시기 한국에서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는 크게 보수적 우파와 좌파 사회주의 계열로 구분된다.


보수적 우파는 주로 국내에서 단계론적 관점에서 계몽운동, 실력양성운동에 치중하였다.

좌파 사회주의 계열은 노동자·농민에 기반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전위당 건설과 대중운동, 그리고 무장투쟁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한편 해외에서도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는 대표적 사례였다. 임시정부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근대적 공화국 형태를 취했으며 다양한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열은 전위당 건설과 대중운동, 그리고 무장투쟁 중심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 민족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저항 민족주의로 시작해 지배 권력의 동원이데올로기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즉 일제 식민지기에 제국주의 반대라는 저항 민족주의를 출발했지만,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각각 지배권력의 체제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동원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1960년 4·19 혁명 이후로 민족주의가 지배 권력에 저항하는 담론으로 전화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민족주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혈통과 언어, 문화와 관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저항 민족주의가 아닌 팽창적, 공격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점차 커진 상태이기도 하다.

유의어

내셔널리즘

국가의 공동체적 이념을 강조하고 통일, 독립, 발전을 꾀하는 주의.

민족 지상주의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가장 중시하는 사상. 민족주의와 같은 말.

국민주의

국민의 이익이나 권위를 지키고 확립하려는 태도나 경향.

관련 어휘

민족주의 문학

민족의 번영과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08년~1919년 일제 침략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계몽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민족주의 문학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광수최남선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조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