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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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수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9일 (화) 10:56 판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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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덕(1915~1950)

생애

1915년 3월 인천에서 출생했다. 목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1929년 인천공립보통학교로 전학, 졸업했다. 1934년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한서방(日韓書房)에 입사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두었다. 이 무렵 유치진, 김소운 등과 교류하면서 극작법을 배웠다. 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희곡 「산허구리」로 등단했으며,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대회에 참가 「동승(童僧)」을 공연하여 극연좌상(劇硏座賞)을 받았다. 연이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해연(海燕)」이 당선되었으며, 「낙화암」,「오월의 아침」, 「동어(冬魚)의 끝」, 「서글픈 재능」, 「심원의 삽화」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1941년 3월 친일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창립회원, 조선극작가동호회 회원으로 참여했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전진좌(前進座) 연출부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극수업을 받았다. 1943년 친일희곡 「에밀레종」을 창작했다. 해방 후 발 빠르게 변신하여 좌익극단 낙랑극회(樂浪劇會)를 조직하고 창립공연으로 「산적」을 공연했다. 좌익계열 조선연극건설본부에 가담했으며, 조선연극동맹에 참여해 좌익문예 활동을 했다. 문예활동으로는 사회 비판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희곡 「기미년 3월 1일」, 「태백산맥」,「고목」, 「대통령」등을 발표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

활동 배경과 평가

  • 함세덕의 작품은 일제 말 친일작가요 월북작가로서 오랫동안 연구의 길이 막혀있었기 때문에 작품 경향이 외국 작품의 모방에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 해금 이후 그의 희곡들이 다시 읽혀지고 당 시대의 수준을 뛰어넘는 극작 기량이 인정되었다.
  • 모방작의 혐의를 받던 작품에 대해 창조성을 인정하고, 친일이나 좌익 등 이념의 색채를 띤 작품에서도 함세덕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다.
  • 함세덕은 시대상황에 따라 항일, 친일, 좌익 등 민감한 변화를 보이면서도 낭만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극의 집필에 몰두하였었다. 그는 특히 어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즐겨 썼는데, 이는 그의 성장지가 인천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어촌이야말로 자연의 서정성과 생존의 절박성을 뚜렷이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데 이유가 있다.

작품세계 (활동내역)

작품 및 저서

창작년도 작품 제목
1936 산허구리
1939 동승
1940 해연
1940 낙화암
1940 오월의 아침
1940 동어의 끝
1940 서글픈 재능
1941 심원의 삽화
1941 무의도기행
1941 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
1941 흑경정
1942 추장 이사베라
1943 에밀레종
1946 기미년 3월 1일
1947 고목
1947 산적
1947 태백산맥
1949 대통령
1949 산사람들

기타

  • 한국 전쟁 이전에 월북한 뒤 북조선연극동맹에 가담하여 남한의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한 「산사람들」, 이승만이 등장하는 풍자 희곡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친일 작품 수는 「추장 이사베라」 등 희곡 4편을 포함하여 총 6편이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및 기여자